사도행전제21강빌립의 사마리아전도

조회 수 2671 추천 수 0 2012.07.12 07:18:38
사도행전 제 21 강(말씀, 8:1-25, 요절 8:5)

빌립의 사마리아 지역 전도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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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인 D. L. Moody 목사님은 “당신은 자신을 믿어보라. 반드시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갈라놓을 것이다. 명예나 돈을 믿어보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믿어보라.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생의 축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집사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배경과 복음 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스데반의 순교 후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시작되자 사도들 외에 제자들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빌립은 예루살렘의 핍박으로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사마리아로 가야 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빌립과 같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루살렘 핍박을 통한 사마리아 전도(8:1-8).

1a절을 보면 사울이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습니다. ‘잔멸’이라는 단어는 멧돼지가 포도원을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멧돼지가 닥치는 대로 포도원을 망치는 것처럼 사울은 닥치는 대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교인을 잡아들이고, 닥치는 대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들 외에 제자들은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유대와 사마리아로 간 것이 아닙니다. 빌립이 자원해서 사마리아러 간 것 또한 아닙니다. 그는 핍박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사마리아가 어떤 땅입니까? 유대인들이 지독히 싫어한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북쪽의 갈릴리, 중앙에 사마리아, 남쪽의 유대입니다. 사마리아는 위치적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의 사이에 있습니다. 이들 사이의 적대감은 1천년이 지속되었습니다. BC 10세기경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개 지파가 사마리아를 수도로 북왕국을 세웠습니다. 그 후 북왕국과 남 왕국은 늘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B.C. 722년에 북왕국이 앗수르에 멸망을 했습니다. 북왕국을 점령한 앗수르는 이주정책과 혼혈정책을 써서 북왕국 백성들을 혼혈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00년 후에 남왕국 유대가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은 혼혈정책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포로로 데려다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인력으로 사용했습니다. 70년 후인 BC 6세기에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재건에 참여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B.C.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그리심산에 성전을 별도로 세우고 모세오경을 제외한 모든 구약 성경을 거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잡종, 이교도라고 멸시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9절에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상종하지 않았다”고했습니다. 그들은 북방 갈릴리를 갈 때에 직선거리인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예루살렘 우측의 요단강을 건너 요단강 줄기를 타고 올라가다가 다시 요단강을 건너 갈릴리로 갔습니다.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그들이 이런 사마리아지방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강력한 핍박과 환난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핍박을 피해 각기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 사마리아로 흩어졌지만 이것이 세계 선교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이 전해졌고, 주님의 명령인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에 평신도 선교사의 문이 연린 것은 1968년 독일로 떠난 간호사들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한국은 가난했습니다. 1950년대 국민소득이 67불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1,2위를 차지하는 나라였습니다. 1968년에는 국민 소득이 169 불로, 하루 세 끼를 먹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공장도 없고 기술도 없었습니다. 겨우 소량의 지하자원을 수출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중에 서독에서 광부와 간호사를 뽑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외화를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였습니다. 모집광고가 나자 명문대 출신들이 파독 지원을 했습니다. 그들은 외화 벌이를 위해, 가난한 환경으로 어쩔 수 없이 서독에 간호사로 광부로 지원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몇 십대의 경쟁율을 뚫고 파독되었습니다. 그들의 파독은 돈을 벌기 위한 운명의 파독이요 떠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평신도 선교사 서막을 여는 장이요, 한국이 세계 선교의 서막을 여는 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역경을 들어 당신의 신비한 역사를 이루나가십니다.

5절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12)” 빌립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집사입니다. 집사란 직분은 구제와 봉사를 하는 직분입니다. 인류 역사상 첫 선교사는 사도가 아니라 집사, 평신도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할 때에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첫 메시지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40일간 가르치신 내용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메시지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하면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한국 교인들의 형태가 하나님 중심이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개념은 헬라어로 ‘바실레이아’로 다스림, 통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인간 영혼과 육체를 포함한 전 존재, 자연환경과 국가와 사회, 온 인류역사, 하늘의 천군천사와 땅, 곧 만유를 다스림을 뜻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공의가 실현되고 사랑이 넘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그 나라가 임하였고 재림으로 완성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회개’란 U-turn입니다. 삶의 방향, 삶의 목적, 가치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중심으로 한 삶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기 위해서는 죄를 애통히 여기고, 뉘우치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거룩함과 성결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죄’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교만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롬1:18). 그런데 죄는 지독하여 금과 은을 요구하지 않고 오직 생명, 피를 요구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히9:22). 구약 시대에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짐승을 잡아 피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일시적이며 제한적이어서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양으로 삼으셔서 단번에 온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히9:11-15).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단순히 그 사실을 동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의를 넘어서서 조금도 의심치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와 믿음은 동시적입니다(행20:21). 회개하면 구원이요, 회개치 않으면 심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짓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봄바람에 눈 녹듯이 모든 죄가 사해집니다. 더럽고 추한 죄가 정결케 됩니다. 주홍 같이 붉은 죄라 할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병든 마음과 상처받은 마음이 치료됩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내 안에 알 수 없는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회개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전쟁으로 뺏는 것이 아니라 전도라는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전도는 웅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득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끈한 성격으로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빌립과 스데반을 보면 모두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전도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과 지혜로 복음을 전할 때에 능력 또한 나타났습니다.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무리들이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았습니다(6). 그들은 표적을 보고 감격했습니다(7,8).

둘째, 빌립의 전도와 시몬(9-25).

9절을 보면 사마리아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는 자칭 큰 자였습니다. 마술이란 영어로 magic인데, 이는 귀신의 능력, 혹은 초능력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적을 말합니다. 마술은 눈속임입니다. 마술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자기를 우러러보게 하고, 마지막에는 자기를 숭배하도록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몬의 마술에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이 행하는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었습니다(10). 사마리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시몬의 마술에 놀라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이제 시몬을 따르던 사람들이 빌립의 능력을 보고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12). 시몬도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놀라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권능을 보고 놀라니라.” 시몬은 자기가 하는 것이 거짓된 것인 반면에 빌립이 하는 것은 진짜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빌립의 표적을 보고 열심히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는 교인은 아닙니다. 요즘도 세례를 받았지만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세례만으로 안 되고 안수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믿고 물세례를 받은 것으로 안 되고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즉 불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베드로와 요한이 전해야지 집사, 평신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표적을 보았다는 말이 강조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의 표적에 매료되었습니다. 시몬 또한 빌립의 표적에 놀랐고, 그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따르는 동기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이 아니라 표적을 보고 따랐습니다. 특히 시몬은 빌립으로부터 한 수를 배우기 위해 세례도 받고 그를 따랐습니다. 시몬은 이적을 힘입기 위해서는 빌립이 무엇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능력만 받을 수 있다면, 철야 아니라 금식, 아니 세례를 100번도 받으라고 하면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술사 시몬을 따르던 그런 마음으로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외양상 예수님을 믿었지 내적으로는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굉장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뜨거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적을 보고 쫓는 신앙이었습니다.

세례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표시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하나의 표시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을 보면 참 믿음이 있어서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우선 세례를 받고 후에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번 받아 볼까 하여 받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의 간증이 없습니다. 믿음의 체험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보면 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고백을 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고백을 했으니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반면에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의미는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데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 말씀이 믿어집니다. 그 말씀으로 내게 다가와 믿어집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부딪칩니다. 말씀으로 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저들을 위해 기도하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18,19절을 보면 이제 시몬이 자기 본색이 드러났습니다. 두 사도가 저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임하는 것을 느낀 시몬은 돈 뭉치를 갖다놓고 그 능력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고 베드로와 요한은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의 은사는 돈으로 살고 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요즘도 시몬의 방식으로 은사를 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으로, 어떤 사람은 철야 기도로, 어떤 사람은 산 기도로, 어떤 사람은 고행으로, 어떤 사람은 봉사로, 어떤 사람은 어느 부흥 집회에 가서 능력을 얻고자 합니다. 이게 모두가 인위적인 노력입니다. 돈으로 살려고 했던 시몬만이 인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인위적으로 은사를 사려고 하는 자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예고합니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을 믿는 보든 자들에게 거저 주십니다. 그리고 은사를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21). 그 후 두 사도는 사마리아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25). 이로 인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핍박을 통해 복음의 불씨가 사마리아에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한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오직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복음입니다. 나를 변화시킨 십자가의 복음만을 믿으십시오. 어쩔 수 없는 상황 중에도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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