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추수감사절(합3:17-19, 요절3:17,18)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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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제 2경전인 탈무드에 랍비 “아키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키바는 존경받는 랍비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책을 보기 위한 등잔과 시간을 알리는 수탉, 그리고 먼 길을 위한 나귀와 토라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가 여행 중 날이 저물어 한 마을에 들어가 잠을 청하니 모두가 거절했습니다. 언제나 감사만 하는 그는 “모든 것을 좋게 하시는 좋으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주실 것이야” 라며 오히려 감사하며 마을 어귀 노상에서 잠을 잤습니다. 길에서 노숙하려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앉아서 토라를 읽으려고 등불을 켰니 바람이 등잔불을 꺼버렸습니다. 아키바는 “좋으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거야” 하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다시 잠을 자려고 잠을 청했더니 여우의 울음소리에 나귀가 놀라 멀리 도망갔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불평했을 텐데 그는 “좋으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 것야” 하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나귀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수탉도 놀라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토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키바는 “좋으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 거야”라며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날이 밝아 마을에 들어가 보니 전날 밤 도적 떼가 그 마을을 습격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좋으시는 하나님은 그 위험 속에서 전천후 감사하는 아키바를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선지자 하바국의 찬송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가 1,2장에서 간구하고, 호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여전히 무성치 못했습니다.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밭에 식물도 없었습니다. 우리에 양도 없었고, 외양간에 소도 없었습니다. 없다고 한 말이 6번이나 반복됩니다. 그야말로 nothing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없다고 열거하는 것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아닙니다. 여기에 열거하는 것들은 반드시 있어야 할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먹는 과일이고, 포도주는 음료수이고,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것이고, 밭의 식물은 하루 세끼의 양식이고, 양은 털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고, 소는 농사를 짓는 수단인 동시에 양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하는 제물입니다.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생활필수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감사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18).” 우리가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는 신앙입니다(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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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18a)”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즐거움을 삼지 않고 하나님만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즐거움의 근원으로 삼는 순수한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것에 울고 웃었습니다. 눈에 보이면 기뻤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으면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자체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재 안고 있는 당면한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대 역전드라마를 능히 연출하시는, 全無를 全部로 바꾸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으로 인해 즐거워합니까? 그리고 언제 즐거워합니까?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상황이 17절과 정반대로 될 때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풍성하고, 밭에 식물이 가득하고, 우리에 살찐 양이 많고, 외양간에 소가 송아지까지 낳아서 젖을 먹이고 있을 때 즐겁습니다. 우리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1등’이라고 적힌 성적표를 가져오고, 수능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즐겁습니다. 중간고사를 봤는데 신기하게도 공부한데서만 문제가 나와 예상외로 좋은 학점이 나오면 즐겁습니다. 우리가 하는 사업이 잘 되고, 직장에서 승진이 되고, 자녀가 잘 자라고, 시험을 보았다 하면 합격하여 일류 기업에 취직이 되면 즐겁습니다. 그리고 보너스와 성과금을 받아 통장이 두둑해지면 즐겁습니다. 그런 날에는 기쁨으로 한턱 쏩니다. 반면에 반대로 일이 잘 안 풀리고, 하는 일마다 꼬이고, 환난이 닥치고, 뼈아픈 상실의 고통이 찾아오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소유에 따라 기쁨과 감사가 달라집니다. 기쁨이 원망으로, 감사가 불평으로 변합니다.

요즘 한국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회사들은 구조조정이 한창입니다. 언제 내가 회사에서 잘릴지 모릅니다. 주가는 2000포인트에서 1000포인트로 반 토막 났습니다. 금리가 올라 은행 융자로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아파트 값이 내려 가정이 파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수출은 안 되고, 내수도 잘 안 돼서 한국 경제가 침몰 위기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숨과 걱정과 원망과 불평이 쏟아집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면 즐겁고 기쁘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에릭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소유에 대한 집착의 위험성과 인간의 소유하고자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인한 불안 심리를 경고했습니다. 왜 사람이 소유에 집착합니까? 이는 불안심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소유하면 불안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에 소유하고 싶은 것을 다 소유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있을까요? 시편 127편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을 지었습니다. 세콤을 달아 집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밤에 단잠을 잘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반면에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단잠을 자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소유하는 만큼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행복할리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하박국 선지자에게 환경이 변하고 소원이 응답되어서 감사하고 기뻐합니까? 현재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가 어떻게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그것은 그의 눈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열매만을 보았습니다. 식물과 양과 소를 통해 만족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 때 그는 원망과 낙담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보는 눈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자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보였습니다. 경작할 밭이 보였습니다. 양을 키울 수 있는 우리가 보였습니다. 소를 키울 외양간이 보였습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이 협소하고, 박토라 늘 불평하다가 급기야는 부동산 중개소에 내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매물을 찾고자 광고지를 뒤적였습니다. 그때 ‘넓고 기름진 땅, 좋은 농가, 큰 곡식 창고, 이상적인 위치, 최신식 농기구를 갖춘 농장을 팝니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가 그 매물을 보자고 했습니다. 현장으로 안내된 농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자신이 내놓은 ‘자기 농장’으로 안내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그는 자기 농장의 가치를 깨닫고, 매물을 거두어들인 후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잘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내 떡보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는 욕심이 있습니다. 내가 갖지 않은 것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잊고 삽니다. 우리는 보통 컵에 물이 반쯤 있을 때 ‘물이 반밖에 없네.’ 혹은 ‘물이 반이나 있어.’ 똑같지만 정반대의 시각으로 봅니다. 우리는 절대 부정의 사고에서 ‘절대 긍정의 사고’, 절대 부정의 생각에서 ‘절대 긍정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 긍정의 신앙’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의 사람에게는 나머지 빈 잔이 채워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시23:5). 넘치는 은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긍정의 신앙, 절대 긍정의 사고, Yes, We can do.의 정신을 가질 때에 절망 중에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 긍정의 믿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우리의 빈공간의 ‘채워지심’이 됩니다. 파스칼은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절대공간’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박국은 바로 그 ‘절대공간’을 하나님으로 채웠습니다. 그 때 놀라운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6:10)”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래리 크랩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책은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축복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일깨움을 줍니다. 크리스천 모두는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복을 마땅히 주실 것이고 또한 주셔야 할 분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심부름꾼, 택배 아저씨로 전락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원하는 복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내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낙심하며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 인생이 왜 이렇죠? 아무리 애써도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왜 내 안에 만족감이 없죠? 더 이상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아요. 저 이제 지쳤어요.” 이런 우리들에게 레리는 크랩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가장 큰 복이 하나님 자신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감을 찾는 자의 삶을 ‘옛 생활의 길’ 이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먼저 거룩하다고 선포함을 받고, 그런 다음 거룩해지기를 원하며, 실재로 거룩해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로 나아온다. 무례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징징거리며 나아온다. 그는 매력이 없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그의 최고 소원이고 첫째 되는 갈망이기 때문에 은혜에 의존하며, 하나님을 원하고, 하나님이 그의 유일한 소망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청에 자동적으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자에게 가까이 찾아오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에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소 요리 문답의 제 1 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소유로 기뻐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 자체로 기뻐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더 좋아지도록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천박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헌신하고 의탁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이 슬퍼할 수밖에 없고,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고 이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신앙입니다(18b).

하박국 선지자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합니다. 18b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구원의 하나님’은 하박국 자신의 구원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의 구원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 바로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광야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모든 대적들과 위험들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사 시대에 기드온, 삼손, 사무엘과 같은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든 대적들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박국은 이 구원의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압제로부터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때 그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과거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사단의 종노릇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본성을 좇아 정욕과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죄와 사단의 종노릇하며 일생동안 죄 중에 살다가 심판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우리를 먹보다도 검은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영접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괴롭히던 사망 권세와 마귀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고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안과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사 몸도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놀라운 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감사하고 기뻐할 것은 바로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힘 되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신앙입니다(19).

하박국이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했을 때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가 자신의 힘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박국은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환난을 극복할 힘과 절망을 이길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슴의 발은 빠르고 지치지 않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처럼 힘 있게 하심으로, 앞으로 닥칠 고난을 이기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장차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높은 곳을 다닌다는 것은 장차 바벨론이 망하고 유다가 그 압제에서 벗어나는 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제 지금 날고 있습니다.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로 변했습니다(신32:10-12). 그는 의심의 골짜기에서 벗어나서 믿음의 높은 곳으로 날고 있습니다.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신 높은 곳을 날고 있습니다. 그는 불평과 원망에서 벗어나 기쁨과 찬양과 감사의 높은 곳을 행해 날고 있습니다.

감사 절기를 맞아 우리의 감사가 ‘전천후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예화를 들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화란의 코리텐붐의 ‘피난처’란 책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치 독일의 수용소는 음식도 나쁘고, 잠자리도 나쁘고, 그야말로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닌데 특히 가장 어려운 것은 감방에 벼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벼룩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베시는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환한 얼굴로 자꾸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언니는 그 말이 이해가 안가서 어떻게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동생이 말하기를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 감방의 사람들이 “우리 시간이 많으니 성경공부 합시다.” 해서 다들 모여 앉아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독일군이 감시하려면 안하는 척 숨었다가 또 독일군이 물러가면 공부했습니다. 당시 감시가 점점 심해 성경공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어느 날부터 감시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감시자가 가까이 왔다가 그냥 가면서 혼잣말로 하는 말이 “어휴, 이 감방에 가까이 가기도 싫어, 벼룩이 너무 많아. 여기에만 왔다 가면 하루 종일 가렵다 말이야” 하더랍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성경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벼룩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땅의 더 높은 곳에 다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나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힘 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셔서 하나님 한 분으로 즐거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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