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제4강

조회 수 3036 추천 수 0 2012.07.11 02:17:19
사도행전 제 4 강(말씀, 2:1-13, 요절 : 2:2,3)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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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날이 이르렀습니까(1)? 오순절은 어떤 날입니까?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2. 성령이 어떤 모양으로 제자들에게 임했습니까(2,3)? 이런 모습으로 임한 성령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3. 그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을 때 어떤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까(4)? 그 때에 예루살렘과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5-7)?

4. 하나님께서 방언을 하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8-13)? 오순절의 방언과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과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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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 진리는 크게 여섯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육신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까지 낮아지신 겸손입니다. 둘째는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십자가는 아픔과 고독, 고통,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평과 이웃과의 화해입니다. 셋째는 부활의 진리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죽음의 역사가 아니라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 생명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승천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만왕의 왕으로서의 선포입니다. 다섯째는 오순절의 성령강림입니다. 이는 교회의 탄생으로, 복음의 증인된 삶, 그리고 세계선교와 부흥의 역사입니다. 여섯째는 재림입니다. 이는 마지막 승리로, 미래의 승리와 영광스러운 환희입니다. 이 여섯 가지 중에 하나만 없어도 구원역사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다섯째 부분인 오순절의 성령 강림에 대해 묵상하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켜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순절이 없는 부활절, 부활절이 없는 오순절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없는 부활절은 단순히 역사적이고 객관적 사실로 남게 되고, 오순절이 없는 부활절은 우리에게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하나의 지식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500여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걷고, 함께 대화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무려 40일 동안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신기하게 여길 뿐, 그들의 마음속에 부활의 기쁨과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가슴이 싸늘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증거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지식이 신앙화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있은 후 그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의 객관적이고 지식적인 신앙이 주관적인 신앙, 체험적 신앙으로 바뀌어져 생명과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부활을 목격하고도 두려워 골방에 숨어있던 그들이 오순절 성령을 체험한 후, 그들은 복음의 원수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성경의 진리, 복음 속에 담겨진 계시 하나 하나가 새롭게 느껴지고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순절을 떼어 놓고 성경 진리를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 한 번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또한 되풀이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그 효력이 영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순절의 기적 또한 역사적으로 되풀이될 수 없는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오순절은 지금도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우리의 죄악을 주님 앞에 자복하고 토설한다면, 만일 우리가 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일어선다면, 오순절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곳에,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을 갖는 곳에, 언제나 오순절의 기적은 일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4:29-31, 8:15,16, 10:44-48)을 보면 많은 무리가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들이 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1905년에 영국의 웨일즈에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죄를 토설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1907년에 평양에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74년에 엑스포 74에서 또 한번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74년 여름에 뜨거운 뙤약볕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이 작열하는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 성도가 모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합심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도록 울부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이후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1,000만 성도로 부흥하였습니다. 이 역사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 기록될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침체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환경요인을 찾아 이를 극복하고자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이 침체 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우리 모두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토설하여 한 마음 한 뜻. 한 목표, 한 방향을 가지고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오순절의 역사는 다시 한국 교회, 바로 우리 교회, 우리 CMI에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우리 속에 강력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오순절 날이 이르매(1). 1절을 읽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들은 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1장 14절을 보면 그들은 한 장소에 모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같이했습니다. 한 목표를 가지고 공통의 꿈을 꾸며, 한 공통의 비전을 갖고 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동상이몽이 아닌 같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같이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행2:47). 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면서 찬양했을 때,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위대한 전도의 기적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함께 모여야 합니다. 함께 모였지만 생각이 따로따로 놀면 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하나의 꿈,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때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고,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그동안 한 목표를 향하여, 한 비전과 한 방향을 놓고,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같이하여 기도했는가? 나는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았는가? 만일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면 회개하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의 지상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찬양하며 회개하는, 이런 곳에 임합니다. 여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둘째, 홀연히 하늘로부터(2,3). 오순절은 유월절과 장막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로, 누룩없는 떡을 떼며 절기를 지킵니다. 장막절은 집에서 나와 일주일간 광야에 텐트를 치고 쓴 나물을 먹으며 조상들의 광야 40년간의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반면에 오순절은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이 날은 맥추절과 겹쳐 있기 때문에 맥추절, 혹은 칠칠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날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에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순절은 금식하고 고행하는 절기가 아니라 즐겁고 기쁜 절기입니다. 바로 이 날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감사와 기쁨과 찬양의 사역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질질 짜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찬양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오순절에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할 때 세 가지 초자연적인 표적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바람, 또 하나는 불, 또 다른 하나는 말, 방언이었습니다.
첫째로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누가는 성령님을 바람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3:3에서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8).” 바람은 히브리말로 “루아크”, 그리고 헬라어로는 푸뉴마(πνευμα)입니다. 이는 영이란 뜻과 동일합니다. 바람의 종류는 회리바람과 산들바람이 있습니다. 유혹의 바람도 있고, 신바람과 치맛바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류열풍, 이 또한 바람의 일종입니다. 바람은 그 누구도, 어떤 첨단 과학도 바람의 방향과 진로를 막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불가항력이요 임의로 붑니다. 성령의 바람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이성으로 분석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람은 강한 힘이 있고,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나무 잎을 흔들고, 바다를 흉흉하게 만듭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위력은 대단하고, 소리 또한 엄청납니다. 쐐앵앵~ 이번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 허리케인 보세요. 한 도시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내륙을 강타하는 토네이도(tornado), 회리바람은 100년이 넘은 나무들과 집들을 쓸어버립니다. 이처럼 바람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바람은 옆에서 불어오는 동풍이나 서풍이 아니었습니다. 이 바람은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내려온 바람이었습니다. 이 바람은 급한 바람이었습니다. 바람 소리와도 같이 급하게 내려왔습니다. 이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불더니 집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급하고 강하게 내려온 바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 잘 생각해 보세요.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보통 바람은 스쳐지나 갑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급하고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움직이지 않고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한 사람에게 임한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역사하여 그 변화가 눈에 거의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바람은 강하고 급하게 각각 개인에게 인격적으로 동시에 드라마틱하게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강하게 임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기적이었던 사람들이 희생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심각하고 어둡고 부정적이었던 사람들 환하고 긍정적이고 힘찬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연약하던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불순종하고 교만하던 사람이 겸손하고 순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이 감사와 찬미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살던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땅에 코를 박고 살던 사람이 하늘을 오르는 독수리처럼 힘찬 삶을 살았습니다. 삶의 가치관과 역사관, 그리고 소망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족주의 그 이상을 넘지 못했던 그들이 대양처럼 마음이 넓어 원수의 나라, 로마,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둘째로 성령은 불과 같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불도 아니고 혀도 아니고 불의 혀 같은 것이 나타나 각 사람의 머리에 머물렀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고 계속하여 임하였습니다. 불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불은 태우며 정결케 합니다. 불은 뜨겁게 합니다. 성령을 불같은 것으로 비유한 것은 성령은 뜨겁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예레미야 20:9을 보면 “중심이 불붙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인간적인 수치와 조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전파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이상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불이 타올라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뜨거운 마음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뜨거운 마음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b).” 시편 39:3,4은 말씀합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져서 묵상할 때 화가 발하여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성령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넘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자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입으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입으로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유혹하고, 사람을 비방하고, 사람을 정죄하고, 거짓말하고, 아첨하고, 불신을 심고, 세상과 사람들을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입으로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입으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사야가 자신의 이런 죄를 회개했을 때에 스랍 하나가 단에서 취한 핀 숯을 가지고 와서 입에 대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의 악과 죄를 태우시고 정결케 하십니다. 찬송가 173장을 부르겠습니다. ♫불길 같은 성령이여,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 보여 줍소서 성신이여 임하사 내 영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합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합소서♫
셋째,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4-13). 4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모두가 방언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충만함은 구원이나 중생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충만함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케 하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도사역을 위한 필요한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충만함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은 외국어, 언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과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은 기도 방언입니다. 반면에 오순절의 방언은 이런 방언과는 질적으로 다른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말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고린도전서14장의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의 방언은 각기 자기 나라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은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방언인 반면,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방언이었습니다.
인류는 바벨탑 사건 이후 서로 각기 언어가 달라져서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서로 싸웁니까?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대화가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이라는 비극이 생겨났습니다. 민족과 민족이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의 비극이 나타났습니다. 동족끼리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동족상쟁의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분열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제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서로 말이 통하게 되었습니다. 메대인, 엘람인,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각 나라 사람들이 모였는데, 전부 자기 말로 들렸습니다. 로마 사람들에게는 로마 말로, 헬라 사람들에게는 헬라말로, 언어가 완전히 통했습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사 전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통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적대감이 해소되고, 적대감이 해소되면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말하고 듣는 기적, 이것이 대화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요?” 그들은 입이 방언을 한 것이 아니고, 귀가 방언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신령해서 들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어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서 통역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언을 하도록 하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11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그들은 무슨 사업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고,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합니다. 바로 방언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도 알아듣지 못하고 상대방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이후부터 제자들은 자기 문제를 갖고 시비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기심을 가지고 시비하지 않습니다. 자기 야심을 가지고 시비하지 않습니다. 자기 욕망을 가지고 시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불신과 교만과 편견과 고집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을 전하기 위하여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출발점입니다.
오순절은 말씀이 소통하는 역사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어떤 말씀을 듣든지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와서 믿어지고 의지하는 이게 바로 오순절 교회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이제 사람 말은 믿지 않기로 했어” 합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서로 대화가 통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교회가 시작됩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의 거룩한 환상을 갖습니다. 주님, 주님 없이 살고 있는 가족들, 이웃과 친구들, 그리고 멸망과 지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저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저의 사심을 버리고 욕망을 버립니다. 성령의 불로 나의 죄악을 태워 주옵소서! 주님, 나에게 오순절의 기적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 교회에 오순절의 기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성령 안에서 믿어지게 하시고 이해되게 하시고 받아들여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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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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