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고린도후서 12:1-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본문에 바울은 신령한 체험과 환상의 계시를 보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이 이를 언급하는 것은 환상과 체험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교회는 특히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지혜와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방언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육체의 만성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이 질병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기도를 응답해주시지 않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이 말씀을 듣고 약할 때에 강함이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과론적으로 약한 것은 약하고 강한 것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지고, 약함에서 강해집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약함에서 온전해짐과 강함의 진리를 깨닫고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환상을 본 바울(고후 12:1-6)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후 12:1)

바울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받은 계시나 환상에 대해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환상이나 계시에 대해 가르친 적 또한 없었습니다. 특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부득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와 환상을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환상과 계시를 제 3자의 입장에서 전하였습니다. 14년 전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는 환상과 계시를 본 것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다고 했습니다. 셋째 하늘은 낙원이었습니다. 이 낙원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성으로, 하나님이 계신 영광스러운 곳이었습니다(21:2).

그런데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아니면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는 몸과 영혼이 다 함께 올라갔는지 영혼만 올라갔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체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신다며 두 번이나 언급하였습니다(고후 12:2-4). 그러나 바울은 이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고후 12:5).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 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고후 12:6)

바울은 듣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서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성경 말씀보다 바울의 말을 더 중히 여길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개인이 체험한 계시나 환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환상과 계시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입니다. 개인적인 계시나 환상을 앞세우고 강조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게 됩니다. 대개 이단들이나 사이비종교의 특징은 모두 개인적인 환상과 계시를 강조합니다. ‘나는 입신을 했다.’ ‘나는 주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직통 계시를 받는다.’ 그들은 개인적인 체험을 강조하여 자신의 말을 절대화하고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그래서 이단에 빠지면 그 집단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말씀 중심보다 사람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보다 그의 말을 절대시하게 됩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는가보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가에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신비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찾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영적인 초보자 또는 수준미달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을 강조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환상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그의 말이 진실한지 어떤 근거로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비적인 것들을 찾습니다. 뭔가 느끼고자 하고, 뭔가 보고자 원하고, 뭔가 뜨거운 체험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오감이 자극되는 감정의 충만함이 있어야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체험을 해야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환상이나 일시적 감정과 경험을 찾고 강조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신앙입니다. 신명기 말씀에 이에 대한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13:1-3)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이적과 기사를 보여준다 해도, 또는 그 예언이 맞는 것 같아 보인다 해도 우리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미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신비적인 체험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2:18-19)

골로새교회의 여러 사람들은 환상을 체험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그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란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자라도록 하심으로 자랍니다.

따라서 성도는 신비적인 체험을 찾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문자로 된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포되는 말씀만이 아니라 문자로 된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신앙을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합니다.

오래 전에 선교사가 한 예언의 은사를 받은 분이 당신은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1년 내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했다며 새벽에 낙담어린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그 때에 나는 확실히 네게 말한다. 1년 내에 영주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받은 말씀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 말을 믿을 것이냐 하니 목사님 말씀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파송하셨으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할 수 있도록 다 예비해 놓으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정확하게 1년 내에 영주권 받았습니다. 내가 봤다 들었다 체험하였다는 빙의와 유체이탈의 입신 등을 말하는 사람과는 아예 사귀지도 말고 그 근처에 가지도 마십시오.

요즘 한국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어떤 무당이 빙의로 누구의 꿈을 꾸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하여 우리나라 전체가 곤경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비적인 체험으로 믿음을 갖고 믿음을 자라게 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서 성경 말씀과 기도와 전도로 믿음이 자라도록 하는데 공을 들이기를 기도합니다.

2. 몸에 가시가 있는 바울(고후 12:7-10)

바울은 환상과 계시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번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해보다 더 빛난 영광의 빛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마게도냐 성에서 어떤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을 도와 달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a messenger of Satan)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가시를 주신 이유를 나를 쳐서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라고 주를 달았습니다.

우리는 그 가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시는 끊임없이 그를 찌르고 찔러 괴롭혔습니다. 가시가 그를 찌를 때마다 바울은 죽음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바울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No’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래도 바울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도 ‘No’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고통이 너무 괴로워 세 번째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사단의 가시를 제해 주십시오. 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No’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계속 세 번이나 계속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온전하다(perfect)’는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강자와 약자의 역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강함에서 강함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 빈틈없는 논리,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자 노력합니다. 지금도 권력을 쥔 이들은 광장의 촛불을 바람에 꺼질 촛불이라며 조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진정한 강함은 약함에 있고,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약한 촛불은 횃불보다 강합니다.

사실 가시와 같은 고통과 질병, 슬픔, 고독, 환난 등은 우리를 약해지게 만듭니다. 바울은 가시로 인해 약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은 도리어 그것으로 하여금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었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쇠가 불에 달구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대장장이라도 좋은 도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쇠가 불에 달구어졌을 때에 대장장이의 능력이 나타나서 좋은 도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토기장이도 토기를 만들 때에 흙이 곱고 부드러워야 온전한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반면에 흙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논어에 공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朽木不可彫也糞土之牆不可汚也(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썩은 나무로 조각을 만들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만든 담은 손질할 수 없다).”

작품은 전적으로 재료에 달려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성이 강하고 교만하면 그 능력을 나타내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온유해졌을 때에 그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모세는 혈기와 감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40년 동안 혹독한 광야훈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40년간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면서 감정과 혈기로 뭉쳐 있던 그가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는데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나타내시지 않고 겸손한 자에게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57:15)

하나님은 교만한 사울을 버리시고 겸손한 다윗에게 능력을 나타내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그렇다고 가시 자체가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오히려 이 가시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하여 더 타락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백혈병으로 어린 딸을 잃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큰 가시었습니다. 그 가시는 그를 몹시 힘들게 했습니다. 그 가시는 사람들이 딸을 도와주지 않아 딸이 죽었다며 몇 십 년이 된 지금도 쓴 뿌리를 품고 살아갑니다.

반면에 어떤 이에게는 이 가시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킨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Uncle Tom's Cabin의 저자인 해리엣 비처 스토가 그러합니다. 그녀에게는 귀한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딸을 어릴 때에 잃었습니다. 그녀는 딸 생각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딸로 인해 슬퍼하다가 문득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슬픈 여인이 또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 그녀는 노예들의 형편을 보았습니다. 흑인의 어머니들은 아들딸들이 죽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는 생이별 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나는 내 딸이 죽어서 영원한 이별을 하였다지만 노예들의 어머니는 살아서 이렇게 생이별을 하다니 그 흑인들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얼마나 아플까? 하는 심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심정을 소설에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이 책의 출간은 사람들의 마음에 노예 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 노예 해방의 물결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가시가 없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먹구름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청명한 날씨가 계속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청명한 날씨만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청년들은 직장을 잡지 못해 어둠에 갇혀있고 한국의 정세는 검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은 오히려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여는 기회가 되고, 아침의 밝은 빛으로 가는 밝은 여명이 됩니다.

바울은 약할 때에 강함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니라.”(고후 12:10)

영국의 청교도 존 번연은 복음을 전하다가 12년 동안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활동적인 그에게 감옥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그는 그 옥에서 기도하다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세 번 들었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족한 은혜를 주심을 깨닫고 낙망과 슬픔과 고독을 넘어서 기쁨으로 옥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2년 동안의 옥중생활에서 신령한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성경 다음으로 읽혀지는 그 유명한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그 유명한 돌아온 탕자를 그린 렘브란트는 첫째 부인 사스키아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티투스와 딸을 낳은 둘째 부인인 헤드리케도 잃었습니다. 그리고 외아들인 티투스와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가산까지 다 잃었습니다.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느냐면 첫째 부인의 묘까지 팔아야 했습니다. 이런 불행들은 렘브란트에게 견디기 힘든 가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그 유명한 돌아온 탕자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약한 데서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가장 강했던 시절은 환난과 핍박 중에 있을 때였습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바티칸 성당이 지어졌을 때가 아니라 고난을 피해 카타콤에 숨어 지낼 때였습니다. 주후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는 순간에 기독교의 생명은 상실되었습니다. 한 교황이 교회에 이제 금과 은이 없는 가난한 시대도 지났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실패와 궁핍 속에서 온전히 나타납니다. 등이 따습고 배가 부를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진주는 조개 속으로 모래가 들어가 만들어집니다. 조개 속으로 모래가 들어가면 얼마나 아리고 아프겠습니까? 이 때 조개는 즙을 짜서 모래알을 감싸고 감쌉니다. 이를 1, 2, 4, 5년 계속하게 되면 마지막에 영롱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가시는 오히려 진주와 같은 보배로운 믿음과 인격이 형성됩니다. 약하고 고독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약할 때에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시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십니다(35:3).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십니다(40:29).

우리에게는 여러 모양의 가시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난이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인간 조건이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질병이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가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 문제와 취업 문제가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슬퍼하고 낙망하고 낙심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원망하거나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근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 자신을 맡기십시오. 주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강한 척 하지 마십시오. 강하다는 위선을 깨십시오. 자신의 연약함을 주님께 진실하게 아뢰고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지고, 약한 데서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움의 손을 내밀면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넘어진 사람은 일으켜 세우시고, 약한 자에게는 힘이 되어주시고,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는 위로자가 되시고, 보호가 필요한 자에게는 보호자가 되시고, 소망이 필요한 자에게는 소망이 되어주십니다. 신앙의 성숙은 좋은 환경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역경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꽃인 에델바이스는 추운 눈 속에서 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겸손과 온유와 같이 약함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일을 당한 때에도 족한 은혜를 주시고, 극히 고단할지라도 족한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데서 온전하게 하시고 약한 데서 강함이 되십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극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새찬송가 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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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예배 안내

  • 주일 오전 예배 - 오전 11:00
  • 주일 오후 예배 - 오후 3:30
  • 어린이 예배 - 오전 11:00

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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