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16~33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누가 승리자입니까? 최후에 승리한 사람이 승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박해와 고난을 받으시고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보고 슬퍼했습니다. 반면에 세상은 이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침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긴 승리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나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면류관은 나의 면류관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세상에 대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긴 승리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승리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아멘.

1.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16:16~24)

첫째, 조금 있으면(16:16~1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신 후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16). ‘조금이라는 단어가 7번 나옵니다. 제자들은 조금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묻는 내용을 설명해주시지 않고 계속해서 조금 있으면 못 보고, 조금 있으면 보리라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모든 것을 제자들이 알기에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리라는 앞으로 약 9시간이 지나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보리라는 말씀은 3일 후에는 부활하심으로 보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9시간 후의 시간도 조금’, 3일 후의 시간도 조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은 잠깐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시간으로 보면 9시간도 잠깐이고, 3일도 잠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시는 고통은 비록 6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은 우리의 일생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긴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부르짖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고통을 잠깐이라고 하셨습니다.

잠깐이라는 말은 시간으로 짧다는 의미와 반드시 끝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슬픈 일도 잠깐이고 기쁨도 잠깐입니다.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끝이 있습니다. 코로나19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고통도 끝이 있습니다. 끝은 새로움의 시작입니다. 새로움은 하나님 나라의 입성입니다. ‘잠깐은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쿼버디스 영화를 보면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꼭 껴안고 순교자의 대열에 서 있습니다. 저쪽에서는 굶주린 사자들이 입을 벌리고 성도들을 향해 달려옵니다. 어린아이가 무서워서 울며 어머니 가슴으로 얼굴을 묻습니다. 어머니가 조용히 타이릅니다. “얘야, 잠깐만 참아라. 곧 밝아질 것이다.” 사자가 물어뜯는 순간 참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그 순간 잠깐 지나면,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이고 주님의 영접을 받을 것이니 잠깐만 참으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길지 않은 잠깐이란 뜻입니다. 벌써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어제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입니다. 우리는 잠깐 왔다가 가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물에 떠 있는 풀, 부초와 같은 인생, 새벽이슬, 안개 같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세상의 보이는 명예와 권력과 물질에 집착합니다. 묘지를 구해야 할 노인이 소유에 집착하여 부동산 투자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짧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세상 역사는 새벽이슬과 같지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것은 영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안개처럼 사라질 것들을 붙들고 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거룩한 순례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둔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새찬송가 330)

둘째, 근심이 기쁨이 되리라(16:20~24)

요한복음 16:20~24절에 근심이 4번 나오고, 기쁨이라는 단어가 5번 비교해서 반복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16:20)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근심과 기쁨을 비교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 제자들은 슬퍼서 울게 됩니다. 그러나 사탄과 마귀의 지배를 받는 세상은 기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슬픔도 잠시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기쁨도 잠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승리의 기쁨이고, 세상은 영원한 패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에게 십자가의 죽음이 근심이겠지만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자성어에 전화위복(轉禍爲福),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행복으로 연결된 슬픔, 기쁨으로 연결된 근심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18절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해산하는 여자의 고통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16:21)

임신한 여자들은 해산날이 가까워지면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저는 해산한 경험이 없기에 해산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16절에서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라는 말씀을 볼 때, 세상에 아프고 아픈 것이 많겠지만 해산의 고통만큼은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이 고통은 의미가 있고, 복된 고통, 값진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의 과정이 끝나면 생명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생명은 최고의 기쁨입니다. 제가 다윗과 조은이가 태어나고, 온유와 아람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해산의 고통은 잠깐입니다. 만일 해산의 고통이 영원히 지속하게 된다면 또 아기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산모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귀한 생명을 품에 안는 순간에 고통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이 기쁨을 누구도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16:22)

사도 바울은 성도의 영적인 생명, 영생에 대한 기쁨은 칼이나 기근이나 굴욕이나 죽음까지도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8:31~3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다른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도 응답의 기쁨입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은 기쁜이 충만한 일입니다.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3~24)

그리고 기도는 제자들의 특권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은 우리의 특권이자 기쁨입니다. 저는 70여 년을 살면서 몇 가지를 빼놓고는 기도의 응답을 모두 받았습니다. 앞으로 몇 가지도 주님의 뜻대로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고난은 잠깐이요 기쁨은 영원합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잠깐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세상의 역사는 잠깐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구속 역상에 쓰임 받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잠깐 왔다가 가는 삶의 여정에서 바람만 불면 금시 사라질 눈에 보이는 세상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특권을 잘 누려야 합니다.

2.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16:25~33)

지금까지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로하시며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16:26)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고, 저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들은 야웨라고 이름을 쓰고도 부르기는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지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노의 관계였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미움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 심판주의 관계에서 구주의 관계가 되셨습니다. 이보다 놀라운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20:17)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15~16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런데 근심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누가복음 1110~13절에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잇대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근심하고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16:27)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자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믿음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누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누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오신 구주이심을 믿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기도의 응답은 비례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영접하고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환난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평안하셨습니다. 평안은 일절 자유로운 삶입니다. 죽음까지도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평안하실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제 갈 길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순간에 하나님도 외면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혼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보면 고독의 절정에 계셨습니다. 이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절대 평안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다시 말해 세상으로 고독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안해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는 만큼 불안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왔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습니다(16:28). 요한복음 1018절에서도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스스로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기에 평안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기쁨으로 마음으로 자발로 하면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노예는 무슨 일을 해도 기쁨과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디에서나 주어진 일을 마음으로 기쁨으로 할 때 평안함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었기에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자들이 배반하겠지만, 예수님은 먼 훗날 제자들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기초를 세울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제자들이 신앙 고백하기까지 도우셨습니다(16:30).

제자들은 예수님을 혼자 두고 흩어질 때가 다가왔습니다. 이런 정황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I have overcome the world)에서 이겼다는 단어는 시제가 과거입니다. 헬라어 문법에서 결정적인 사건에는 과거시제입니다(반복적인 이야기는 현재시제). 그리고 시제에 상관없이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 한 번밖에 없는 단회적인 사건이나 확실한 일은 과거시제로 표현합니다.

세상을 이겼노라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고난을 합해서 단번에 이겼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이겼는데 앞으로 닥칠 고난은 두고 봐야 알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겼노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고난을 이겼다는 선포입니다. “세상을 이겼노라.” 여기에서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영원한 보장된 승리입니다. 이 승리는 나의 승리요,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여 승리를 주십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크고 작은 네 개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보이다가 갑자기 작은 발자국이 사라졌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어머니와 어린아이가 해변 모래사장을 걷다가 힘들어하는 어린아이를 업고 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약할 때는 손 잡고 가시지만, 쓰러지면 업고 가십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여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부활로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담대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은 세상의 근심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나의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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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