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12-28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청교도들은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만 더 주십시오.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믿음은 감사와 비례하고, 행복은 감사의 분량에 비례합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은 감사 지수가 높습니다. 그래서 우찌무라 간조는 성도들의 병중에 가장 무서운 병은 감사결핍증이고, 저주 중의 저주는 감사의 메마름이라고 했습니다. 과일의 존재 가치는 단맛에 있고, 크리스천의 존재 의미는 감사에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 미움과 절망,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본문을 통해 감사 충만, 기쁨 충만, 기도 충만하여 기쁨과 기도와 감사 바이러스를 우리 주위에 전파하는 주역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지도자를 귀히 여기고 인내하라(살전 5:12-15).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

교회에는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돕고 교회와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여러 가지로 수고합니다. 성도들은 이런 분들의 수고를 당연히 여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또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가장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귀히 여기라는 말은 존중히 여기라, 순종하라, 좋은 것으로 함께 하라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이들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그들의 설교와 훈계나 권면이 들리지 않습니다. 설교가 들리지 않고 권면과 훈계가 들리지 않으니 믿음이 자랄 리 없고, 믿음이 자라지 않으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이들을 귀히 여기는 사람은 설교와 권면이나 훈계가 들립니다. 설교가 들리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고, 말씀을 순종하니 믿음이 자라게 되고, 믿음이 자라니 비전과 소망이 생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은 교회에서 섬기는 이들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모든 사람에 오래 참으라고 했습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를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도 있고, 심약한 이도 있고, 힘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권면하고 마음이 약한 자는 격려하여 용기를 북돋아 주고, 힘이 없어서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이들은 손을 잡아 일으켜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것보다도 오래 참으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으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오래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쉽게 판단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절망하고 포기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래 참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5:4). 우리는 쉽게 노하는 사람을 성깔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은 오래 참습니다. 쉽게 분노하지 않습니다.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쉽게 미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 오래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자신을 모욕하는 자들을 오래 참으셨습니다(12:1-3).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키우실 때 오래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하는 가룟 유다까지 오래 참으셨습니다.

3초의 여유란 말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 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클랙슨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자.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리자. 그 사람의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른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주자. 그가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 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의 소식을 듣게 되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를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그가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다.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내가 화낼 일이 보잘 것 없지 않은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 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자.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그리할 것이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울상을 하고 있을 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자. 그 아이는 잘못을 뉘우치며 내 품으로 달려올지 모른다. 그녀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 짓고 들어주자. 그녀가 저녁엔 넉넉한 웃음으로 커피 한 잔을 정성스레 타줄지 모른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살 힘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요(5:22),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모든 사람을 선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속에는 아름다운 사랑도 엮어가지만 미움도 엮어집니다. 나를 반기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즐거울 때 함께 즐거워하고, 내가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를 핍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잘난 체 하는 교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선을 오히려 악으로 갚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수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피하고 싶고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 웃는 모습으로 대하는 사람, 이런 좋은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악의를 품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 교만한 사람과는 원만한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웃는 자에게는 웃는 모습으로, 미워하는 자에게는 미움으로 대하고, 빼앗기면 뺏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한결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 속담에 는 말이 고와야 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우리의 마음은 상대적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되로 받고 말로 준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보복의 심리가 잠겨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 성경은 누구에게든지, 우리를 해치고, 비방하고, 욕하고, 선을 악으로 갚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까지도 항상 선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윤리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악은 선으로 이기고, 미움은 사랑으로 이기고, 교만은 겸손으로 이기고, 자랑은 칭찬으로 이기고, 부정은 정결함으로, 거짓은 정직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목사님을 귀히 여기면 성도들끼리 화목하게 됩니다. 성도들끼리 화목하면 행복합니다. 성도들끼리 화목 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귀히 여기고, 마땅히 귀히 여길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가정이 화목하고, 학교가 정겹고, 사회가 평안하게 됩니다. 그러니 인내하게 되고 악을 선으로 갚게 됩니다.

둘째,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신앙의 성숙도는 얼마나 무엇을 기뻐하느냐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계획대로 잘 되고, 결과가 좋으면 기뻐합니다. 학생들은 성적이 오르고 장학금을 타면 기뻐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지혜롭고 총명하게 잘 자라면 기뻐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믿음이 잘 자라고 교회가 부흥이 되면 기쁩니다. 이런 기쁨도 우리의 삶에서 중요합니다. 이러한 기쁨은 삶의 활력을 주고 보람을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상대적이고 잠시 뿐입니다. 환경과 처지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부담을 주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쁨이 없는 메마른 신앙에서 기쁨이 충만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까? 답은 주 안에서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기쁨의 원인은 주 안입니다. ‘주 안에서주님의 사랑 안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할 때 우리에게 오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 밖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기쁨은 육신의 건강에도 좋고 미용에도 좋습니다. 기쁨은 생명의 광채가 나게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17:22)

F. J. Crosby여사는 어렸을 때에 오빠의 실수로 실명을 했습니다. 그는 생후 6개월 만에 이 세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원통하고 슬펐겠습니까? 무슨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그는 한없이 자신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빠를 원망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찬미와 찬양이 흘러 넘쳤습니다. 그의 심령에 넘치는 감사와 찬양과 기쁨으로 그의 생애 가운데 6,000곡의 찬송가를 작시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한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기를 기도합니다. 어떠한 고난과 환난과 슬픔이 닥친다 할지라도 항상 주안에서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에베소서에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6:18). 그리고 바울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4:2). 우리가 어떻게 항상, 쉬지 않고, 계속 깨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하면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장소에서 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란 장소를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영적인 호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 속에서 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버스와 전철 안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설거지를 하면서 주님, 나의 더러운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18:1).

기도는 신앙과 비례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은 기도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 대신 싸우십니다.

모세는 기도의 비밀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수아를 전쟁터에 보내 놓고 자신은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의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17:10-11).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우리의 승리의 비결은 우리의 능력에 있지 않고 기도에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은 기도에 있습니다. 성공 또한 기도에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 또한 기도에 있습니다. 공부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집중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면 지혜와 집중력이 생깁니다.

기도의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기도의 손은 능력의 긴 손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손 위에 함께하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향력은 전 세계와 영원을 향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삼상 12:23).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고 피곤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바울은 범사(in everything)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축복의 때나, 궁핍의 때나, 환난의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풍족한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허쉬는 풍요의 역설의 가설을 들어 그렇지 않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경제 성장의 초반에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구성하는 물질경제의 확대로 만족감이 증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장이 진전될수록 교육과 주거, 환경, 교통 등을 둘러싼 불만이 증대하여 행복지수가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물량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차원에서 생각하느냐에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범죄 심리학자인 소퍼(Soper) 박사는 복역수와 수도사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한다. 그러나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똑같이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감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결정적인 의지(determined will)와 소원적인 의지(desired will)가 있습니다. 예정, 섭리, 능력, 지혜, 권능 등은 결정적인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의지입니다. 반면에 소원적인 의지는 개인적이고 자기 의지적입니다.

제가 손녀에게 온유란 이름을 지을 때 온유한 사람이 되어 많은 하나님의 기업을 얻도록 소원하여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람이는 아브라함의 준말이기도 하지만 높은 이상과 올리브와 같이 아름답고 수려함으로 펼치는 삶을 살도록 소원하여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게 소원적인 의지입니다. 이 소원적인 의지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정적인 소원은 환경과 조건을 초월합니다. 범사의 감사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소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전하고 정직했습니다. 그는 모든 악에서 떠났습니다.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중에 큰 자였고, 부자였습니다. 양이 칠천, 약대가 삼천, 소와 암나귀가 오백이었습니다. 아들들은 누이들을 초청하여 자기 집에서 아버지 생일잔치를 크게 벌렸습니다. 그런 날에 욥은 그들을 불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아들들이 범죄하지 않았을까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귀의 시기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습니다. 이 때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쓴 뿌리를 품었을 것입니다. “나같이 신앙이 좋고 주님께 충성하는 사람을 이렇게 하시다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쓴 뿌리를 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1:20-22)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했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 그의 친구들은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그의 삶을 갑절로 축복하셨습니다(41:12-17).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작은 것에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시각이 달라 가난해도 어려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기적은 작은 것을 감사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1918, 미국 미네소타 주 보베이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Eric Enstrom)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주 백발이 성성하고 세상사에 몹시 지쳐 보이는 야위고 남루한 한 노인이 보잘것없는 신발 털개를 팔러 왔습니다. 그 노인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습니다.

그는 몹시 시장했던지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 앞에 놓인 식단은 소박한 빵과 스프였습니다. 노인은 그것을 앞에 놓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진사 에릭은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는 작은 것에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초라한 그 노인이 거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노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노인은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갖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구나. 그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사진사 에릭은 비록 그 노인이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감사기도 속에서 그 노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고 노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 사진을 보고 에릭의 딸 로다 나이버그(Rhoda Nyberg)도 큰 감동을 받아 이 사진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감사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입니다.

당시 세계 제1차 대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았습니다. 사진사 에릭은 그런 사람들에게 아직 감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그림을 미네소타 사진전에 출품하였습니다. 마침내 이 그림은 미네소타 주의 사진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The Grace”, 또는 감사의 기도이었습니다.

우리가 감사가 없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삭빠른 계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할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감사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받으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이 노인은 빵 한조각과 보잘 것 없는 스프를 놓고 감사 기도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에 감사할 때 하나님은 그 소박한 감사를 통해 놀라운 은혜를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고 지냈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감사를 잊고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감사하고,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잘 자란 자녀들에게 감사하고,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교회에 대해 감사하고, 목사님에게 감사하고, 성도들에게 감사하였으면 합니다. 기적은 소박한 감사로부터 시작됩니다.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우리는 감사가 회복되어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범사에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함으로 연말을 맞고 성탄을 맞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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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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