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6-38(참조 살전 5:1-11)

안나의 기다림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2:37)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대강절이 시작됐습니다. 대강절은 1129일부터 성탄절 전까지 4주간입니다. 대강절은 대림절, 강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기간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기쁨과 간절함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위로와 희망을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인생은 한마디로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삶은 작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행렬 속에 기다림이 있습니다. 봄철에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속에는 가을의 수확을 바라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밤잠 설쳐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의 포부 속에는 내일의 소망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다림에는 설렘이 있습니다. 기다림에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우리가 살아야 할 동기를 제공해줍니다. 신앙은 한 마디로 기다림, 설렘, 그리움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끊임없는 두 가지의 기다림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향한 기다림이라면 신약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까? 가슴 절절한 그리움, 설렘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저희 어머니께서 큰 형님이 군에 갔을 때 우체국 아저씨를 그렇게 기다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오려니 하고 기다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기다림은 온 마음을 그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안나의 아름다운 모습과 또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주님을 기다리는 안나(2:36-40)

아셀 지파에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매우 많았습니다. 그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그녀의 나이 팔십사 세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몇 살에 결혼했는지 알 수 없지만, 20살에 결혼했다면 64년간 혼자 살았습니다. 그녀는 64년간 청상과부로 그 긴긴 시간 동안에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면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2:37)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주님과 교제하면서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이 기다림은 안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경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기다림 속에서 살았습니다. 주님에 대한 그녀의 기다림은 그녀를 경건한 삶으로 인도했습니다. 기다림은 그녀를 기도 자리로 인도했습니다. 기다림은 그녀를 성전으로 인도했습니다. 기다림은 그녀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간절한 기다림, 소망이 있습니까? 기다림이 있다면 그 기다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소망들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기다림의 어떤 것은 성취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다림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좌절시키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마태복음 24장이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셨을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하고 슬픈,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배척당하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다시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장사 지내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름 타시고 영광과 큰 능력으로 심판주가 되셔서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전 3:10)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형벌과 심판의 날입니다(살후 1:8). 반면에 믿는 자들에게는 승리와 영광의 날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을까요? 우리는 안나의 고백 속에 그 답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2:38) 그들은 메시아의 속량을 기다렸습니다. ‘속량은 당시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한 단어입니다. 노예는 스스로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군가 몸값을 지불해야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속량이라는 단어를 통해 인간이 노예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8:34) 인간은 죄의 종이 되어 죄가 시키는 대로 하며 지냈습니다. 정욕과 탐욕, 그리고 시기심과 미움, 교만 등 각종 죄의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한 번 죄의 사슬에 묶이면 누구도 스스로 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올가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피가 나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속량된 것은 은과 금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인함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녀는 그 긴 세월 동안 오실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속량할 주님이 오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그녀에게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녀를 경건하게 살게 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오실 주님의 기다림이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어쩌면 그녀는 방탕하게 살수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는 Pax Romana라는 슬로건아래 약소민족을 짓밟았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이방문화를 전 로마제국에 수출했습니다.

로마의 문화는 한마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은 12신을 섬겼고 그중에 제우스신을 우두머리 신으로 섬겼습니다. 우상은 쾌락과 탐닉에 빠지게 합니다. 이로 인해 안나도 이런 사상 풍조에 떠밀려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대개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매는 형제를 찾아 방방삼천리를 떠나고, 형제 또한 자매 찾아 방랑삼천리를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가 수없이 차이고 차이면서 상처 받고 상처 주고 만신창이 되어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는 삶의 공식입니다. 그러나 안나는 주님을 기다리며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금식한다는 것을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비워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기다리는 안나는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첫째, 안나는 감사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2:38).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감사는 기도와 섬김에서 나옵니다. 안나라는 이름은 구약 히브리 발음으로는 한나입니다. 사무엘상 1장을 보면 한나는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도로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안나는 은혜로 산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빈 공간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에 없으면 감사보다는 불평, 원망을 쏟아놓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이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지수가 높은 사람은 믿음지수가 높고 영성 지수가 높습니다.

둘째, 안나는 전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2:38). 안나는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해 말했습니다. ‘는 바로 오실 메시아를 뜻합니다. 그는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녀는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안나는 태어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그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오실 주님을 전하는 그녀의 마음에 주님 맞을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셋째, 안나는 성전을 중심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생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세상과 구별된 공간입니다. 성전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지성소입니다. 교회는 단지 건물만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별된 거룩한 장소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세상의 풍랑으로부터 지켜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우리로 세상 한복판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 그리고 시편 저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84:1)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왜 두렵고 불안해합니까? 이는 주의 전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공간 속에 있지만 그 공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채워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불안한 공간입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공간에 있으면 있는 만큼 불안이 가중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 안을 주님으로 채울 때 세상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성전을 중심으로 살 때에 불안한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2.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의 자세

바울은 재림의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쓸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살전 5:1-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재림의 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누구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날이 언제인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했습니다. 다만 성경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3-4)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인생을 즐기며 살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도둑 같이 오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의 징조가 어떠합니까?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여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여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합니다. 쾌락을 사랑하고 비방하여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질서가 깨져서 가정이 파괴됩니다. 감사가 없고 거룩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납고 거칠고 배신하고 모함하고 조급하며 한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 이웃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종말의 때요 어두운 밤입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 지금이 밤인 줄로 아는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고, 새벽이 오면 여명이 오고, 여명이 오면 아침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밤이 깊고 어둠이 짙을수록 주님이 오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기다리는 빛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살전 5:6-7) 깨어 있는 자녀들은 밤에 취하지 않습니다. 밤에 취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 산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취하게 되면 이성이 마비됩니다. 그래서 아무데서나 방료하고 피자를 만듭니다. 어둠에 사는 자들은 돈에 취하고, 명예에 취하고, 쾌락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드라마에 취하고, 게임에 취하고 한탕주의에 취하여 이성이 마비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에 취하여 살아갑니다. 성령에 취해 살게 되면 깨어서 근신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때를 따라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합니다. 안일에 빠지지 않고 힘써서 맡은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니 삶이 질서가 있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둘째,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세상의 악과의 싸움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어떤 전쟁이든 2등은 있을 수 없고, 오직 1등만이 승자가 됩니다. 인천 자유공원에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 동상에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승리에는 대체물이 없다(There is no substitute for victory).”

군인은 오직 승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특히 영적 전쟁에서 2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패배는 죽음뿐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와의 싸움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피 흘리기까지 마귀와 싸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에베소서 613-18을 보면 이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신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여야 합니다. 호심경이란 가슴과 배와 등까지 보호하는 것으로 칼이나 활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갑옷입니다. 가슴과 배 주위에 중요한 기관인 심장 폐장 위장 등이 다 있습니다. 이곳을 보호하지 않으면 적으로부터 치명상을 입습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믿음과 사랑의 방탄조끼를 붙여야 합니다. 에베소서에는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과 사랑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변함이 없습니다. 구원은 취소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분명한 하나님의 의를 가져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란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성화에 이르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야 됩니다. 이때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투구의 역할은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소망의 투구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현재적이며 미래적입니다. 우리의 영은 구원을 받았지만 육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는 육이 구원을 받아 영화롭게 될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래적입니다. 우리가 소망이 없게 되면 낙심하고 포기하고 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롭게 될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질 때 마귀의 궤계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의 귀중한 이 있습니다. 그것은 황금’ ‘소금’ ‘지금입니다. 여러분은 세 가지 중에 가장 귀하고 중요한 금이 무엇입니까? ‘현금’ ‘입금입니까?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오실지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기다림과 깨어 있는 신앙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오서 오십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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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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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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