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20-36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보통 사람들의 영광은 큰 것, 잘되는 것, 높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밀알 하나에서 영광을 보셨습니다. 밀알 하나는 가치로 따진다면 정말 미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가이사의 권좌에 비하면 얼마나 미미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밀알이 주는 영적인 원리 때문에 대단한 가치로 평가하십니다. 세상은 떡 명예 세상의 영광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와 삶의 원리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예수님은 누룩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셨습니다. 누룩은 밀가루 속에서 형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세상을 움직이시는 원리를 보셨습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 제일 작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겨자씨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적인 원칙들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스스로 녹아 맛을 내는 소금 속에 담긴 진리를 발견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손에 쥐는 잃고 얻는 물질적인 것들에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차원의 가치와 원리들에서 기뻐하셨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서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는데 있습니다. 완전한 세상이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한 알의 밀에 담긴 생명의 진리, 낮아짐의 진리, 죽음의 진리를 배워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도다(12:20-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들은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뵙고자 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며 논리적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헬라 사람들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들은 음란했습니다. 그래서 헬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보다 유대교로 귀의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전향했지만 형식을 강조하는 유대교에서 참된 진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죽음을 해결하시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헬라 사람들을 보시자마자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동문서답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들에게 주신 적합한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인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죽음과 희생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좋아하지만 행동하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희생하기보다는 남이 희생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손 안대고 코 풀기를 즐겨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고 어려워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수고하지 않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공짜심리 때문입니다. 우리는 땀과 희생과 노력 없이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을 졸부라고 합니다. 졸부들은 땀과 수고 없이 돈을 벌었기 때문에 사치와 유흥비로 탕진합니다. 한국은 이들로 인해 더욱더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권좌에 오르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로비하고, 쉽게 논문 실적을 올리기 위해 남의 논문을 표절합니다.

이런 심리는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쉽게 영광을 얻고 쉽게 열매를 맺고자 합니다. 그리고 기도 몇 마디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고 나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하나님을 불신합니다. 이런 신앙은 무당신앙입니다. 무당신앙은 무당을 불러 굿 한번 하고나서 모든 생사화복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희생과 헌신과 손해 보지 않고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 인자란 성경에 90회 이상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영광이란 십자가의 죽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장 십자가를 지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십자가를 내일로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곧 십자가를 지고자 결단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놓인 십자가를 사랑해야 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는 것이 어떻게 영광이 됩니까?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적으로 보면 저주요, 고통이요, 수치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패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 편에서 보셨습니다. 이 때 십자가는 수치나 패배가 아니라 영광이요 승리였습니다. 어리석고 무력한 것이 아니라 지혜이며 능력이었습니다. 조롱과 비웃음이 아니라 승리의 찬가였습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죽음을 이기고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십자가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이단으로 단정하고 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십자가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1:16, 고전 1:22-24)

바울이 깨달은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 능력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쓸모없는 삶을 가치있는 삶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분열을 통합으로, 갈등을 화해로 변화시키는 능력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공의와 사랑을 조화시키시고 인간의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극치였습니다.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지만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됩니다.

존 뉴턴은 노예를 파는 선장, 인신매매 두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 받았을 때 생명을 살리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사상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새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십자가는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된 후에 그 은혜가 놀랍고 감격하여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새 찬송가 305).

2.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첫째, 생명의 영광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알의 밀을 대수롭게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한 알의 밀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에서 생명을 보셨습니다. 작을지라도 죽어 땅에 심겨지면 30, 60, 100여개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보셨습니다. 또 이것들을 심으면 또 무수한 열매를 맺어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 예수님의 생명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얻을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곧 닥칠 죽음의 고통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날 생명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능력을 보시고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인류가 구원받는 영광을 보며 기뻐하셨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모두가 헛것입니다. 황금으로 뒤덮였던 솔로몬의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만들어진 작은 한 알 밀은 지금도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내 속에 생명이 있으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잃은 양을 구하고 기뻐하는 이유도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신비하고 무한한 생산의 능력이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대왕인 다리오스가 유럽 침략을 하면서 첫 번째 치렀던 전쟁이 알렉산더 대제가 거느리는 군대와의 대전이었습니다. 그때 다리오스는 알렉산더에게 병사 하나를 시켜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가 보낸 것은 참깨 한 부대였습니다. 이는 다리오스가 알렉산더에게 우리의 군대는 이렇게 많다. 그러니 손들고 항복하라. 너희들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받아본 알렉산더는 답장으로 작은 봉투에다 씨 하나를 넣어 다리오스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겨자씨였습니다. 그것은 이런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작다고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너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가 승리했습니까? 알렉산더가 승리했습니다. 전쟁은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를 들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작은 겨자씨 같다.” “만일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큰 능력을 행하는 것도 결국 생명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하러 갔다가 귀신들도 예수의 이름에 항복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돌아와 보고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10:19-20). 하나님은 큰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아주 미약한 존재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슨”, “나 같은 존재가 이런 자조 섞인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요즘 흙수저라고 자신을 비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이 있다는 것, 구원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생명은 돈이나 금수저로도 비교가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소유의 유무로 자신을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소유의 다소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는 이건희씨는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고 생명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내게 있는 생명은 세계 최고의 갑부보다도 값지고 귀하고 소중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낮아짐의 영광

씨에는 생명이 있지만 저절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땅에 떨어져 묻혀 죽어야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결코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떨어짐, 낮아짐의 영광의 법칙입니다.

종교개혁자 쯔빙글리는 낮아짐의 진리를 염소들을 통해 알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스위스의 산자락을 걷다가 좁은 산길에서 두 마리의 염소를 보았습니다. 한 마리는 위로 올라가고자 하고, 또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좁은 길이라 두 마리가 오르고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두 마리는 서로 팽팽히 맞섰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올라가려던 염소가 길가에 누웠습니다. 그러자 내려가려고 하던 염소가 그 위를 밟고 내려갔습니다. 그런 다음에 누웠던 염소도 일어나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엎드려 낮아지는 사람만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은총을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인류가 구원 받는 은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짐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이는 낮아짐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에너지가 생기고,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할 때 바람의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고, 세상을 살리는 법칙입니다. 우리가 높은 데에서 낮아질수록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높은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낮아져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은 찾지 않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됩니다. 절박한 상황은 하나님의 호출이요 낮아짐은 은혜의 자리요 영광의 길, 하나님께 쓰임 받는 법칙입니다.

요즘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취직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학 출신이 중소기업에서 아무 일이나 막일을 할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존심을 깨고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는 낮아짐의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낮아짐은 십자가의 진리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낮아짐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며 희망이 없는 사람인지를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똑같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신데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교회에서 여러분을 섬기고, 설거지를 한다면 감동이 됩니다. 그와 반대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고개를 치켜세우면 어떻겠습니까? 똑같은 가을 들녘에 가라지는 꼿꼿하게 서있고 벼이삭은 숙여져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이것을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숙이는 낮아짐의 자리가 영광의 자리입니다.

셋째, 죽음의 영광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12:25)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생명을 포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아가 죽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삶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자기를 먼저 사랑하면 자기중심적인 사랑, 자기애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면 이타적인 사랑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현재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현재 사랑하게 되면 미래에 생명을 잃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면 자신의 생명이 보존하게 됩니다.

현재 자기를 사랑하다가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내일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기보다는 오늘 놀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현재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되면 우리의 육신의 건강과 정신 건강이 해롭습니다.

우리가 이기심을 포기할 때 영광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물질을 쓰고 주님을 위해 인색한 사람,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부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번 시험해보아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려보아라. 부해지는가. 망하는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돈 어디론가 다 새나갑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부해지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자기부인, 십자가의 길, 자기를 미워하는 길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이 스승으로 모시러 찾아오고, 유대인들이 왕으로 모시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고통스런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2:7-8).

예수님은 죽기 위해 태어나신 유일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5:2).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높이셔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로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희생이란 아름다운 것이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입니다. 역사 이래 희생이 없는 영광은 결코 없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의 삶은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하게 합니다.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나라가 든든히 서 있게 됩니다. 한국 교회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가져온 것도 믿음의 선배들의 순교의 피가 이 땅에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은 죽을 인생입니다. 병으로 죽든지, 사고로 죽든지, 늙어 죽든지 죽음의 고통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 누군가를 구원하기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죽는 순간에도 열매를 얻는 것이 얼마나 기쁩니까? 죽는 순간에 많은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밀알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희생하고 헌신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셨고 많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려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드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려네(새 찬송가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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