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 1-17, 34-35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13장부터 21장까지는 유월절 전 날에 있었던 사건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13-1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체포되기 전 날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 중에 요한복음 13-16장은 다락방 강화로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경계, 미래에 대한 약속과 보장 등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유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1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 18장은 예수님의 체포, 19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20장은 예수님의 부활, 21장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체포되고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중대한 사건을 앞에 놓고 냄새 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13: 1-2)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내일이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던 제자들과 헤어져야 함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반역과 베드로의 배반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사람들이란 12제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조금 후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갈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배반할 것을 아시고도 사랑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배반은 그만두고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 때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란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랑 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것을 일컬어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짝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원수라도 사랑해서 그 원수가 나를 사랑할 때까지, 내 사랑의 본 뜻을 이해할 때까지 사랑하는 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요, 온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변치 않는 사랑이요,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약점을 받아주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합니다(13:8).

이 순간에 마귀가 가룟 유다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13:2) 마귀의 특징은 마음을 통해 접근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그리고 마귀의 특징은 사람의 약점을 틈타 접근합니다. 이는 병균이 우리의 연약한 점을 틈타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물질에 약한 사람은 물질로, 정에 약한 사람은 정으로, 안일에 약한 사람은 안일로, 불의에 잘 빠지는 사람은 불의로, 정욕에 약한 사람은 정욕으로, 불평과 원망을 잘 하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적인 생각으로 침투합니다.

가룟 유다는 물질에 약했습니다. 그는 물질을 사랑했습니다. 또 그는 예수님을 통해 지상 메시아 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를 이루지 못하자 예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지키고 자기의 약점을 알고 그 약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13: 2-11)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13:3)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뜻과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가심을 아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 앞에 허리를 굽히시고 앉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거룩한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과 발가락 사이사이를 씻어 주셨습니다. 마른 수건으로 발의 물기를 뽀송뽀송하게 닦아 주셨습니다. 무좀이 있는 사람은 드라이로 말려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만유의 주요,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엎드려 죄인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신발이 샌들이었습니다. 중동 지방에는 모래가 많고 먼지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 샌들을 신고 다니니 발이 더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은 다른 민족의 문화에 비해서 상당히 위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발을 씻었습니다. 특히 꼭 식사를 앞두고는 발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풍습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발을 씻지 않았습니다. 종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고, 제자는 스승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종이 없으면 서로 서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발을, 남편은 아내의 발을, 친구는 친구끼리 씻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배가 나와서 허리를 굽힐 수 없어 손이 발에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구 하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높아지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날에 예수님께서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헬라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부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견제하고 질투하고 시기했습니다.

사람이 권력에 마비되면 이성을 잃게 되고, 눈이 가려지고, 청력이 어둡게 됩니다. 그래서 마땅히 생각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고, 볼 것을 제대도 보지 못하게 되고, 들을 것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으러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려야 했고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높아지고자 하는 경쟁심 때문에 먼저 허리를 굽혀 발을 씻어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씻겨 주는 사람을 낮은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네가 먼저 내 발을 씻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베드로는 야고보가, 야고보는 베드로가, 요한은 안드레에게, 안드레는 요한에게 서로 네가 먼저 내 발을 씻어 주면 내가 네 발을 씻어 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더러운 발을 그대로 하고 상에 마주 앉았습니다. 얼마나 발 냄새가 났겠습니까? 좁은 다락방이기 때문에 더욱 더 발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양고기 냄새와 믹서가 되어 속이 뒤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코를 손으로 막고 참으며 유월절 음식인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훈계와 책망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장 서로 발을 씻고 식사를 하라고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그들의 종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교부 크리쏘스톰은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발을 제일 먼저 씻겼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할 때에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아가서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사랑하심으로 사랑을 창조하셨습니다.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13:6)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기 발을 씻어 주신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주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더럽고 냄새 나는 발을 예수님께 내어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완강히 거절한 것을 볼 때 그는 다른 제자들과는 다른 존재로 대우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제자인 자기가 예수님으로부터 씻음을 받으면 자기도 그렇게 해야 될 것만 같아 완강히 거절한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상관이 없다는 말은 분깃이 없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님께 충성하고 열심히 일한다 할지라도 예수님께 발을 씻음 받지 않게 되면 아무 분깃이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배와 그물을 버리고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좇았는데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 씻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존재로 특별한 사랑을 받고, 특별한 관계성을 맺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목욕한 자는 발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13:10) 여기에서 목욕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듭난 사람을 뜻합니다(6:5). 그리고 발을 씻는다는 것은 날마다 회개하여 성화에 이르는 삶을 말합니다. 목욕한 사람도 땅을 밟고 살기 때문에 먼지가 묻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을지라도 세상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매일 나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 들고 나아가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러운 발을 주님께 내어 놓고자 할 때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치 불구하고 숨은 죄를 주님께 들고 나가면 언제든지 크신 사랑으로 영접하여 주시고 정결하게 해 주십니다(요일 1:8-9). 우리의 정욕과 이기심과 시기심, 미움, 분노, 혈기, 안일, 의존심, 패배주의의 발을 주님께 내어 놓을 때 주님은 우리를 죄 없다고 인정하시고 정결하게 해주십니다.

유다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중요한 직책인 재무도 맡았고 예수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지 못하고 저주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매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 복된 자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3.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이신 예수님(12-17)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5) 여기에서 이란 예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를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시는 예를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져서 섬기신 이 모습을 보고 베드로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습니다(벧전 5:5). 이처럼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목적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 받도록 함이었습니다. 본을 보이는 삶은 아주 중요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본대로 행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부모 좋은 목자가 되려면 옳은 말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행함으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 주는 실제적인 본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약점을 감당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눈에 드러나게 약점이 많았습니다. 베드로는 천방지축이었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무대 체질이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야심이 많았습니다. 빌립은 계산적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답답했고, 도마는 회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시몬은 항상 핏대를 세우며 열혈당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에는 영웅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장점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열정과 요한과 야고보의 진심, 빌립의 합리성과 안드레의 믿음은 감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활하다가 보면 장점보다는 약점이 더 잘 드러나게 됩니다. 이 때 약점을 꼬집어 정죄하면 공동체는 금이 가고 깨어집니다. 약점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은혜가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토양이다.”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제자들은 위대한 목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옆의 동역자들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제자들의 무관심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무관심은 관계성을 소원하게 하고 오해와 불신을 낳게 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동역자들입니다. 우리는 동역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는 믿어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불신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한다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발을 씻어 주는 사랑을 가질 때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이때 행복하고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13:17).

4.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첫째, 사랑의 표준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문제가 많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할 수 없는 가룟 유다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표준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은 모세의 십계명과 대칭이 되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계명은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은 내 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몸이 아프고 불편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이념과 동지로 뭉쳐진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무조건적 사랑이요, 절대적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진리에 기초한 사랑이요, 구속의 은혜에 기초한 거룩한 사랑입니다.

둘째, 사랑의 방법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같은 동역자끼리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강조를 안 해도 잘 합니다. 그런데 같은 친구나 동역자끼리는 사랑하기보다는 경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동역자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랑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먼저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많이 받으면 남을 사랑하게 됩니다.

셋째, 사랑의 이유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유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제자들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견고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합심의 역사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는 사랑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면 어떤 복음을 대적하는 원수의 세력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후에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영접하고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요일 4:7). 베드로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영접하고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사랑은 기독교의 생명이요 하나님 역사의 원동력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서로 사랑할 때 막힌 담을 헐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약점을 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여 우리의 내면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주님의 명령을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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