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1-15

성령의 바른 이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8)

 

본문을 성령의 장이라고 합니다. 신약에서 성령에 대한 말씀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의 성령론과 사도행전에서의 성령론, 그리고 서신에서의 성령론입니다. 복음서에서의 성령론이 개인 구원에 관한 것이라면 사도행전에서의 성령론은 선교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신에서의 성령론은 교회에 덕을 세우는 개인생활에 대한 적용입니다.

성도들이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본문을 통해 성령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16:1-4)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 때문에 미움과 박해를 당하고 출교를 당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출교는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을 말합니다. 회당에서 쫓겨나게 되면 유대공동체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연약하게 키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박해와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불사조로 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0-12)

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벧전 4:14) 그리고 핍박을 많이 받았던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우리는 박해를 통해 내가 세상에서 크리스천이 되었음을 입증하게 됩니다. 그리고 박해를 통해 믿음이 견고해지고 순수하게 됩니다(벧전 1:6-8).

그런데 이런 모든 일들은 불신자들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였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핍박하는 것은 영적인 무지 때문이었습니다(16:3). 유대인들의 영적인 무지는 아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를 일찍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실족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미리 실족하지 않도록 예고하신 것입니다(16:1). 더 나아가 제자들이 박해를 당할 때에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박해와 싸워서 이기도록 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는 시련은 시련 자체보다도 그 시련에 대한 자세 문제입니다. 바울은 시련이 닥칠 때마다 그 시련을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가 세상의 박해를 이긴 사람들입니다. 수천 년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어떤 박해도 이겨낸 사람들을 통해서였습니다.

로마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공은 그만두고 생명을 보존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박해와 차별도 초대 성도들의 믿음은 막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막아도 그들의 믿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할 수 없이 AD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겠다는 고백이고 선언입니다

2.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15:5-7)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가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14장에서는 어디로 가시느냐? 그 길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론가 떠나시고, 자기들만 남아 박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근심 걱정이 되어 누구 하나 예수님께 감히 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떠나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5:7) 어떤 점에서 유익합니까?

첫째,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곁에서 부른다란 합성어로 도움을 받기 위해 곁으로 부른다란 뜻입니다. 보혜사는 상담자(Counselor, 14:16, NIV), 진리의 영(14:17), 대언자(요일 2:1)가 되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14:26).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과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 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제자들과 거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이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해 주시고, 힘이 필요할 때 힘을 주시고,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를 주시고,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고 바른 신앙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떠나심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요 새로운 연합입니다.

둘째, 자립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인간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자립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신다니 앞이 캄캄하고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장차 예수님의 역사를 계승하고 이루어야할 사도들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지하였습니다.

사람이 자립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면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수동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도와주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의지할 때 자립적인 사람이 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은 연약하고 의존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을 받았을 때 원수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용사들로 변했고, 자립적이고 고난을 이기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물보다 진한 것은 피고, 피보다 진한 것은 돈이라며 돈을 의지합니다. 또 사람들은 권세와 세상 영광을 의지합니다. 요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권세를 잡기 위해 이전 투구하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사람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섬기고 사랑할 대상입니다. 물질은 정함이 없습니다. 돈이란 있다가도 있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돈입니다. 세상 영광과 권세는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은 우리가 결코 의지할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을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실패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의지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때 자립적인 사람이 되게 됩니다. 자립(independence)이란 ‘dependence in God’의 준말로 하나님 안에서의 자립을 뜻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영,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의지할 때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그가 와서(16:8-15)

첫째, 세상을 향한 성령의 역사(16:8-11)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6:8-9) 책망한다(convict)’는 단어는 유죄로 증명하다’, ‘적극적으로 확신시켜 준다’, ‘각성시킨다’, ‘판단한다’, ‘깨닫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세 가지 면에서 깨닫게 하고 확신시켜 줍니다.

첫째로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보통 죄의 개념을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좀 양심적으로 살면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반문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이 모든 죄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32절을 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고 감사하지 않았을 때 개인 윤리, 가정 윤리, 사회 윤리가 붕괴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았습니다(딤후 2:17).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이 말이 정치권에 실감이 납니다.

그런데 세상에 각종 전문병원이 있는데 사람을 망하게 하는 혀, 설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설과가 있습니다. 그 설과는 바로 야고보서입니다. 말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야고보서를 읽으면 치료가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베드로에게 임하셨을 때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리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2:36-37)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우리가 어찌할꼬?” 외쳤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회개했을 때에 성령을 받았고 3,000명이 회개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하여 회개하게 합니다.

죤 뉴톤은 깡패 두목으로 2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허랑방탕했으며, 폭력을 일삼으며 노예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번은 런던에 갔다가 술에 취해 장난삼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예배드리고 있는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배당의 맨 뒷좌석 구석에 앉아 무심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던 그가 숙연해지면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거만했던 그의 고개는 깊숙이 숙여지고, 드디어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그가 들은 설교는 단순히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 말씀이 그의 심령에 부딪혀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속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날 이후 새사람이 되었고, 육체로 살다가 회개하고, 영으로 살다가 일생을 마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부르는 유명한 찬송가 Amazing grace를 작사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둘째로 의를 깨우쳐 주신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6:10) 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의롭게 살기 위해 선행을 베풉니다. 성실하고 양심대로 살고자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기 의지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기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행위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천하에 자기 행위로 구원을 받을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장이 지워지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4:6)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하나님의 만이 참된 의가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새로운 살 길을 주셨습니다(10:20).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사람과 사람과도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은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마틴 루터는 수도원에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기 위해 철야기도와 성경읽기, 노동 등 수도원 규칙의 준수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이르기 위해 라테란 성당의 28개의 빌라도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에 그는 수도원의 탑에 있는 작은 방에서 성경을 묵상하다가 로마서 117절 말씀으로 의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것은 행위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그 순간, 행위를 통한 구원이라는 두꺼운 벽을 뚫고 수도원탑 창문으로 한 줄기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 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은혜의 빛이었습니다. 십자가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신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16:11). 이 세상 임금이란 사탄을 말합니다. 인간이 낙원을 상실한 것은 사탄이 여자를 유혹하여 교만을 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도록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과 불순종과 패배와 절망과 회의를 심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어 두렵게 합니다. 이를 볼 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사탄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이 아무리 꼬리를 흔들어 두려움을 심어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심판을 받아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사탄을 집행하십니다(벧후 2:9).

둘째, 사도들을 향한 성령의 역사(16:12-15)

제자들은 아직 어려서 성령께서 하실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세상에는 거짓 영과 우리를 진리의 길, 십자가의 길, 좁은 길에서 떠나도록 유혹하는 미혹의 영이 있습니다(요일 4:1-2). 그러므로 영이라고 다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8:31-32, 14:6).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진리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14:26). 죄와 거짓이 난무한 시대에 진리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장래를 생각할 때에 불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을 가리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가리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과 같습니다(13:21-22, 14:19-20). 그리고 성령은 좋은 성경 선생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장래 일을 알려 주십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 것인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천국에 대한 소망과 장차 임할 메시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현실을 넘어서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가장 좋은 인생의 안내자요 스승이요, 목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이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는 따로따로 맺히는 것이 아니라 단수로,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반드시 모두 맺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도 맺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기적이지만 내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 또한 기적입니다.

내 인격에, 내 성품에 이런 아름다운 열매가 없다면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내안에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죄로 깨우쳐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의임을 깨우쳐 줍니다. 성령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줍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할 때 어려운 현실 문제를 이기고 승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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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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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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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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