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활절 요한복음 20:1-29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9)

우리의 삶에서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되는 중요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생()이요,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죽음, 곧 사()입니다. 그런데 생은 이미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고, 죽음은 장차 우리 앞에 당할 일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당면할 문제요 피할 수 없는 현실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지 3일 만에 살리심으로 우리의 당면한 현실 문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인 것과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이 아침은 예수님께서 두려움과 어두움의 권세, 절망과 슬픔을 가져다주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부활의 아침이요, 진리가 승리한 영광의 아침이었습니다. 동녘 해가 뜨기 전,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한 손에 향품을 들고 예수님이 묻힌 무덤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 여인은 과거에 일곱 귀신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정욕 귀신, 안일 귀신, 운명 귀신, 절망 귀신, 허무 귀신, 열등감과 교만 귀신, 탐욕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정욕귀신이 발작하면 밤거리를 헤매었습니다. 안일귀신이 발작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만 자는 잠순이가 되었습니다. 원망귀신이 발작하면 자기 자신과 가정과 사회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원순이가 되었습니다. 절망귀신이 발작하면 자신을 자학하는 절순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자기를 변화시키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커서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녀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너무 슬퍼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름으로 예수님께 마지막 사랑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무덤이 돌로 막혀 있고,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27:66). 이 여인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이런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드디어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누군가가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베드로보다 젊기 때문에 빨리 달려와서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막상 요한이 무덤에 먼저 도착했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세마포가 놓인 것만 확인했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요한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은 온 데 간 데 없고 세마포만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았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무덤 속은 사람이 잠을 자고 일어나 이불을 가지런히 정돈해 놓은 침실과 같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요한이 현장에서 목격하지 않고는 이렇게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의 기록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또 만일 누가 시체를 훔쳐갔다면 시체가 놓였던 무덤 안을 이렇게 정돈해 놓고 갈 리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둘째는 빈 무덤입니다. 세상의 모든 죽은 사람들에게는 무덤이 있습니다. 공자와 석가의 묘가 있어 그분들이 죽은 날에 묘 앞에서 성대하게 기념행사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이라는 사실을 목격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너무나 깊어서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서서 울면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횐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가 뉘였던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님을 어디에다가 옮겨 두었는지 알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향하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을 알고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알려 달라,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마리아야!” 부르셨습니다. 이 음성은 능력과 영광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신 살아 계신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은 슬픈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하여 주시는 선한 목자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은 더 이상 슬픈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다는 생명이요 부활이신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은 마리아의 현재의 입장과 심정을 아시고, 인격적으로 찾아주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마리아는 너무나 기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20:17).

사람들은 보고 체험하고 논리와 과학으로 입증되어야 믿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체험하고 논리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믿는 것은 아닙니다. 헬레니즘은 보는데 있고, 헤브라이즘은 듣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헬레니즘은 사실적인 실체를 강조하는 반면에 헤브라이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신앙은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믿고자 할 때 우리의 신앙은 안목을 즐기는 세상적인 가치관과 신사도 운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반면에 듣고 믿을 때 차원 높은 신앙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여기에 성경 말씀의 듣고 믿는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믿고자 하는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9) 우리가 보고서 믿고자 하는데서 성경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복된 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부활의 믿음을 믿는 사람들의 삶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로 믿지 않는 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는다면 부활도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 나무와 가지는 한 몸임을 말씀하셨습니다(15). 그리고 바울은 세례, 연합과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 비유를 들어 예수님과 우리는 한 몸임을 설명했습니다(6, 11).

우리가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는 순간 예수님과 나는 둘이 아니요 한 몸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서 몸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믿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3-34). 의를 행한다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6:9)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6:3, 4:8,11). 거룩하다는 것은 죄로부터 구별되다, 깨끗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섞이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별의 뜻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거의가 가정에서 아버지의 수저와 식기는 특별히 구별하여 좋은 것으로 장만해 놓고 그것은 자녀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똑같은 한 솥에서 나온 밥이지만 어른의 밥은 먼저 떠서 따로 구별하여 드립니다.

저는 품격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는지 아닌가를 아는 법 하나 있습니다. 식사를 한다든지 파티를 할 때에 어른에게 먼저 갖다 주는 사람은 품격 있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요, 반면에 자기나 자기 남편이나 자녀부터 갖다 주는 사람은 품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 모든 면에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에 있어서나 옷을 입는 것에 있어서나 행함에 있어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예배당은 세속과 유일하게 구별된 장소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별되게 여겨야 합니다. 특히 예배에 순서를 맡은 분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단정한 옷을 입고 참예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기구나 비품 또한 구별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의 어원은 무겁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겁다는 것은 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구별할 뿐 아니라 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부르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무거운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거룩한 삶을 살지 않아서 나쁜 영향력을 끼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됩니다. 불교 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해도 그들이 믿는 신을 모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욕합니다. “너 하나님 믿지. 그런데 왜 그렇게 행동해. 아니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래.”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고 했습니다(2:24).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의를 행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과 늘 함께 있어야 합니다. 폴란드의 음악가 쇼팽은 20살에 예술의 나라 불란서로 유학을 떠날 때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너는 폴란드의 자랑이 되어라.” 또한 쇼팽의 스승은 조그마한 은컵에다 폴란드의 흙을 넣어 그에게 주며 어디를 가든지 조국을 잊지 말라. 이 한 줌의 흙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공부하는 동안 힘들 때마다 나는 폴란드 사람이다. 나는 폴란드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된다.”며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폴란드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의 유언은 나의 폴란드 흙이 담긴 이 컵을 나의 무덤 속에 넣어주오.”라고 할 만큼 조국을 사랑하였고 그리워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내 마음 속에 각인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아버지께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4:23)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돈도 아닙니다. 지위와 명예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미국의 시간관리 전문가 마이클 포티너가 미국 사람들이 평균 72세를 산다고 가정하고 일생 동안 소모한 시간을 계산해보았습니다. 잠자는데 23, 직장에서 일하는데 20, 쉬면서 즐기는 데 7, 먹고 마시는데 6, 줄 서거나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5,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는데 3, 물건을 찾는데 남자 말고 여성들이 핸드백 뒤지는데 3, 가사 일에 4,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데 1년을 보낸다고 합니다. 아마 요즈음은 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10년 이상은 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시간은 일평생 다 합쳐서 16개월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만남이 소원하고 대화가 뜸하면 친밀감이 떨어집니다. 이게 사랑의 법칙입니다. 72년 생애에 16개월 남짓 예배시간을 드리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깊은 교제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늘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때 의를 행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이 임하시오며(The Kingdom come)”(6:10). 그 나라,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세우신 나라입니다. 그리고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 왕의 통치, 왕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이란 뜻으로, 공간 개념이 아니라 통치 개념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떤 나라의 시민이 되느냐, 누구의 통치를 받느냐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다시 말해 나라를 잘 만나는 것이 곧 행복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특권과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서 많은 불이익과 피해를 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왕국과 같은 메시아왕국을 사모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타락한 이래로 지금까지 세상은 사탄이 지배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상은 살인, 폭력, 행음, 시기, 미움, 질투, 간음, 분쟁, 거짓, 술수, 강포 등이 끊일 날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통치하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 자신에게는 기쁨,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은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은 자랍니다. 생명은 향기가 납니다. 생명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사랑과 자유, 그리고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파되고 계속 확장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면, 행사되는 것만큼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점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이 전파되는 만큼 확장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셋째,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나라는 희망이 없고 절망과 두려움이 지배합니다. 이로 인해 불안합니다. 운명적이고 낮은 자존감과 어두운 자화상을 하고 다닙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들을 심리적인 현상이라고 하고,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죽음이 가져다주는 죽음의 실체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으로 희망을 상실하고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금 신입생들에게는 야성, 낭만, 지성, 정치는 모두가 사치스러운 단어가 됐습니다. 그들의 오가는 대화는 일자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절망과 낙심을 단번에 날려 보내셨습니다. 부활은 생명과 구원, 그리고 희망입니다.

루이스(C. S. Lewis)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0대에 만난 무신론자인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대학에 갈 때까지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신론자로 옥스퍼드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어 저술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가장 존경하고 의지하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더욱 더 회의했습니다. 그는 이를 지적인 만족으로 그 영혼을 채웠습니다. 그러다가 1929년 어느 날에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그는 32년 동안 탁월한 지성과 학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어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믿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깨어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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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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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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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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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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