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40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18:37)

 

본문은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체포당하시고, 대제사장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는 사건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예수님의 행하심과 베드로의 행동이 대조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빌라도와도 대조가 됩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진리에 속한 사람이 되어 진리의 왕 되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의 시인, 베드로의 부인(18:1-18, 25-27)

예수님은 성전에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이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자주 가셔서 기도하셨고 제자들도 아는 장소였습니다. 물론 가룟 유다도 이곳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후면 가룟 유다가 로마의 군대를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올 것을 아셨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도 그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이 때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얻은 아래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위축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앞으로 나가서 그들을 향해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당하게 내가 그니라(I am He).”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의 영적인 권세에 압도되어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재차 물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자, 다시 내가 그니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안위보다 제자들을 안전하게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고,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크리스천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당당하게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신자요, 대학마을교회 성도라는 신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도 누가 보든 안보든 자발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마치 봄에 사람이 억지로 짜지 않아도 수액을 내뿜는 지리산의 고로쇠나무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역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앞세워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위급한 상황에서 구심점이 자기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식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하려고 하기보다 본능적으로 자식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성숙한다는 것은 아기자기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보살피고 사랑하고 섬겨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이에 칼을 가지고 있던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습니다. 그가 왜 말고의 귀를 잘랐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목을 치려다가 무서워서 귀를 쳤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베드로의 인간성과 의리와 용기는 대단합니다. 베드로의 당돌한 행동으로 순식간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벌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18:11).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22:5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어루만져 주심으로 낫게 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칼은 칼집에 꽂고 잔을 마셔야 됩니다. 칼은 혈기와 감정으로 이는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반면에 잔은 십자가의 잔, 고난의 잔으로 하나님의 역사방법입니다. 칼은 멸망의 원인이라면 잔은 승리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잔보다 칼을 듭니다. 이는 칼은 단번에 효과가 나타나지만 잔은 자기가 깨지는 아픔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혈기와 끓어오르는 감정의 칼을 꽂고 고난의 잔, 인내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권위적인 칼과 자존심의 칼을 꽂고 섬김과 기도의 잔, 온유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잔을 마실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 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결박하여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었습니다. 가야바는 교활하여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다른 제자는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과 아는 관계이므로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이를 안 요한은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집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때에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I am not).”(18:17)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는 부인하고 군중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밤이 깊어 추워지자 베드로는 아랫사람들이 피워놓은 모닥불가로 다가가 눈치를 살피며 불을 쬐었습니다.

사람들이 조마조마하며 하속들 곁에서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에게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18:25). 그런데 바로 그곳에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말고의 친척이 있었습니다. 그가 베드로를 알아보고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다그쳤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또 다시 부인했습니다. 그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14:71).

이 때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에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22:61). 이 예수님의 눈길은 원망의 눈길이 아니었습니다. 이 눈길은 사랑과 자비의 눈길, 연민과 슬픔의 눈길, 용서와 이해의 눈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에 그의 심령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온 몸을 쥐어짜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베드로가 자신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을 더 신뢰하고 의지했습니다. 그는 육체의 팔을 의지했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하셨지만 깨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성실을 믿고 의지할 때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깨어 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11:4). 그리고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고 했습니다(고전 10:12).

둘째는 그가 엉거주춤한 상태로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의 요건 중 하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선을 긋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단은 항상 어정쩡한 사람에게 접근합니다. 확신 있게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중간은 없습니다. 의의 종이 아니면 불의의 종이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습니다. 희면 희고 검으면 검지, 회색 신앙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폭적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셋째는 그가 고난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고난 받는 것을 보자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때만큼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하셨습니다(8:38).

그가 예수님을 부끄러워했던 것은 십자가의 비밀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3). 영광과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후에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게 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벧전 4:13). 그리고 그는 거꾸로 십자가를 지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2. 진리의 왕 예수님, 세상의 통치자 빌라도(18:19-40)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해 심문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제자양성과 복음전파였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말씀을 전파하시되 드러내놓고 회당과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18:20)

이단들의 특징은 은밀히 자기들끼리만 가르치고 전수합니다. 그들이 은밀히 하는 것은 자기들이 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밀히 행하는 자들은 어둠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화장실만 빼놓고 모두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열려 있고, 가정이 열려 있고, 교회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열린사회는 결코 부패하지 않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TV를 보는 열린 가정은 타락하지 않습니다. 자기 방에서 혼자 은밀히 숨어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열린 가정, 열린 교회, 열린사회,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열린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길 가실 때나 식사하실 때나 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밤 이 늦도록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를 배우고 디모데에게 이렇게 전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바울은 밀레도 고별 메시지에서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20:20)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말씀을 전파하도록 함에 있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불법 집회를 통해 예수님을 사형 판결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예수를 유대 총독의 관정으로 끌고 갔지만 유월절 잔치를 먹기 위해 관정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집에 갔다 오면 불결하다 하여 옷을 빨곤 했습니다. 그들은 겉은 깨끗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더럽고 추했습니다.

빌라도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 기분이 나빠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였느냐며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긴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집행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손에 넘겨 채찍질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10:33-34).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 심문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8:33) 예수님은 빌라도가 스스로 한 말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네가 한 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사무적이고 객관적인 질문보다 인격적으로 예수님께 묻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예수님이 왕이라고 하니까, 덩달아서 물어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객관적이고 지적인 탐구나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인격적으로 믿어야 할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여전히 사무적이고 객관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18:36)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는 총칼로 다스리는 눈에 보이는 정치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여전히 세상 나라의 정치가로 권력과 돈과 명예만을 찾고 추구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빌라도는 예수님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18:37). 예수님이 왕이심을 밝히셨습니다(I am a king).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18:37) 예수님은 만민을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를 건설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영적인 나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적은 로마제국이 아니라 공중권세 잡은 사탄입니다. 아담의 범죄이후 사탄은 인류 위에 왕노릇해 왔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사탄의 통치아래 있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세상은 음란과 폭력, 거짓과 위선, 미움과 시기심, 절망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의 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짓눌려 고통하는 병든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원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 진리를 증언하시기 위해 오신 진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진리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 죄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왕이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적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희생의 왕, 사랑의 왕, 섬김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최대 원수인 죽음을 파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왕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항상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탄은 죄와 사망의 법으로 다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다스리십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다스리는 곳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가득합니다. 부활의 산 소망이 넘쳐납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지배하는 나라는 장소나 환경이나 지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지배하는 나라는 모든 환경을 초월해서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진리의 왕 되심을 증언하는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힘이 곧 진리였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힘이 없고 소수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직 힘만이 최고였습니다.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싸워서 이기면 정의요, 진리요 패배하면 불의요 역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역사는 승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빌라도에게 예수님께서 진리의 왕이심을 증언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는 빌라도에게 비친 예수님은 초라하게만 보였습니다. 이는 그가 진리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진리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의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쳐 심판과 멸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잔을 마시기 때문에 진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다스리시는 진리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돈과 권력과 쾌락의 거짓 왕들로부터 지배받는 삶에서 진리의 왕 예수님을 모시고 진리의 인도함을 받는 삶, 진리의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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