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린도전서 13:1-13

사랑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린도전서 13장 한 장만 떼어서 읽게 되면 흔히 사랑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사랑을 말하게 되는 이유를 고린도전서 전 맥락에서 보게 되면 더욱 더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특히 교회가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 분쟁 때문에 서로서로 시비하고 비판하였습니다. 심지어 바울까지도 비난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 하나가 될 수 있고, 사랑이 있을 때에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은사 문제를 다루고 사랑을 말씀하였습니다. 이는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31절에서 은사를 열거하고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모든 은사는 아무 유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의미가 있고 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랑의 시편(the Psalm of love), 신약의 황금장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1. 사랑이 없으면(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 13:1) 사람의 방언이란 사람들이 사용하는 각 나라의 언어를 말합니다. 즉 외국어를 5,6개 말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말 잘하는 변사들이 최고 인기스타였습니다(고전1:19-20). 그래서 그들은 자기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은사를 사모하였고, 그런 은사가 없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방언의 은사 문제로 인해 시끄러웠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변사들이 출현하면 그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유창한 방언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천사의 말이란 영적이고 신령하고 고상한 아름다운 메시지를 말합니다. 우리도 5,6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신령하고 고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리 유창한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음악의 3대 요소는 리듬, 멜로디, 하모니입니다. 이런 요소를 갖춘 음악은 하루 종일 들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가 없는 음악은 듣는 것 자체가 고역입니다. 소리 나는 구리나 꽹과리는 음악 기구 중에 가장 저속한 악기입니다. 이런 악기는 마음을 피곤하게 하고 부담을 줍니다.

이처럼 아무리 논리정연하고 신령하고 영적이고 철학적이고 사상성이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꽹과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담긴 말 한 마디는 아무리 길고 크게 하더라도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는 계모의 말은 지겹고 잔소리로 들리지만 비록 눌변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담긴 엄마의 말은 듣고 들어도 지겹지 않습니다. 사랑이 담긴 한 마디는 탁월한 연주자의 바이올린 소리와 같아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설교라고 하지만 전에는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탁월한 예언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깨닫고 정확한 교리적인 지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완성이 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움직일 만한 큰 믿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이런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I am nothing)라고 했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으니 이는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설교는 말쟁이요, 사랑이 없는 믿음의 능력은 마술쟁이에 불과합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불쌍한 사람을 돕는 구제는 아름답습니다. 이는 행복의 4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재산을 모두 장학금으로 기증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매스컴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 자기 몸을 초개와 같이 불살라 남을 구원하고 돕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의사니 투사니 열사니 하여 존경하고 그 이름을 길이 빛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I gain nothing)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의 동기는 사랑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 동기가 사랑에 기초하지 않을 때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물질과 시간을 드려 주님과 주님의 사역을 섬깁니다. 선교사들은 이국 땅에서 많은 희생을 하며 눈물로 섬깁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이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자동차에 엔진 오일이 없으면 소리가 시끄럽고, 엔진이 마모되어 못쓰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이 없는 교회는 늘 시끄럽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인간문제로 힘들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곳은 웃음꽃이 피어나고 사랑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 아닌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요일 4:19).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로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요일 3:16). 또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5: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재능과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사랑으로 봉사하고,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을 때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신앙연륜이 길어짐에 따라 순수한 동기는 사라집니다. 자기 욕심과 영웅심, 자기 광을 내기 위하여 하기 쉽습니다. 의무감 때문에 마지못해 하기 쉽습니다. 또 자기 꿈의 실현을 위해 하기 쉽습니다. 체면과 경쟁심 때문에 하기 쉽습니다. 보상을 받기 위해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 때 신앙생활의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게 됩니다. 그 때 ‘I am nothing’이 아니라 ‘I am something’이 되고, ‘I gain nothing’이 아니라 ‘I gain something’이 됩니다. 사랑의 샘물이 넘쳐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에 기초한,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2. 사랑이란(고전 13:4-7)

바울은 지금까지 사랑이 없으면이란 가정법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사랑이 있어야 함을 말씀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괴테는 사랑을 눈물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꿈이라 했고, 어떤 시인은 사랑의 묘약, 사랑의 사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첫째,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고전 13:4).

오래 참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해 참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신경질 나게 하고, 노엽게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람을 참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들고 버릇없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중풍병자처럼 쉽게 드러눕는 사람, 신실하지 못한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참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참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 포기입니다.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 참는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인격이 성숙하다는 것은 참음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반 동안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원수들을 끝까지 참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23:34). 우리의 본성으로는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덧입을 때에 끝까지 참을 수 있습니다. 죄인들에 대해 끝까지 참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쉽게 포기하고 신경질내고 감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참고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은 온유한 것입니다(고전 13:4).

온유하다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온유한 사람의 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위로를 얻고, 쉼을 누리고, 힘을 얻습니다. 온유한 사람에게는 응석을 부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11:29) 본래부터 온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울 때에 온유하게 됩니다. 요한은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영접하지 않자 모두 불살라 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는 감정적이었습니다. 그의 별명은 우뢰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배웠을 때 온유한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유란 길들여진 말이란 뜻이 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말은 거칠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을 때 유용한 동물로 변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거칠고 사납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칠고 사나워도 훈련만 받으면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40년간 광야 훈련을 받았을 때 온유의 표상이 되었습니다(12:3). 그가 온유했을 때에 훈련되지 않은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가슴에 품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바람은 행인의 외투를 벗길 수 없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은 행인의 외투를 벗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온유로 대할 때 마음을 열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만이 땅을 기업으로 얻습니다(5:5).

셋째,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고전 13:4).

시기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합니다. 우리는 슬픈 일이 있을 때에는 함께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친척들이나 친구와 그 자녀들이 자기와 자기 자녀보다 잘 되는 것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머리가 아프고 속이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더 잘 되기를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넷째, 사랑은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고전 13:4).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과장하여 자기를 내세우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사랑은 배우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성장합니다. 성장하면 믿음의 꽃이 피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다섯째,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고전 13:5).

사랑은 나와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갖거나 오만한 자세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귀히 여기고 예의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특히 가깝고 친한 사람일수록 존경해야 합니다. 또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손해를 봅니다. 사랑은 자기의 불이익에 절대 감정으로 반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기록해 두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보다는 약점을 기억해 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베풀어 준 사랑이나 은혜는 쉽게 잊고, 자기에게 섭섭하게 대했던 일이나 자기에게 잘못 대해 주었던 일은 결코 잊지 않는 묘한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기억했다가 보복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악한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쁜 생각을 말끔히 씻게 합니다. 링컨은 그의 자서전에서 남의 친절은 잊지 않고 남의 잘못은 기억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좋은 것만 생각하고 은혜만을 기억하며 남의 약점과 잘못을 조금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섯째,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고전 13:6).

사랑은 불의를 묵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진리 편에 서기를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다 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불의를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징계와 책망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보고도 묵인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죄입니다. 사랑은 진리에 기초해야 하며, 징계가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잠언에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훈련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쓴 뿌리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일곱째,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딥니다(고전 13:7).

모든 것이란 단어가 4번 반복합니다. ‘모든 것(always)’은 항상, 늘이란 뜻입니다. 사랑은 늘 항상 참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죄를 범한 사람을 몇 번 용서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늘 항상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습니다(벧전 4:8).

그리고 사랑은 항상 늘 믿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한다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늘 항상 바랍니다. ‘바라다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꿈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신 소망을 한 번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형편에 따라 소망을 달리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늘 소망을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늘 항상 견디는 것입니다. ‘견디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끝까지 견디어 원수들을 정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대신에 라는 단어를 붙여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오래 참고, 나는 온유하며 ……우리는 스스로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때에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올 가을에 사랑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고전 13:8-13)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8-10) 예언은 성취되면 폐합니다.

우리가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폐하여집니다. 현재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폐해지게 됩니다. 아침 해가 돋으면 뭇별이 자취를 감추듯이, 그 때에는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것은 다 폐하여집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어린 아이의 생각과 행동은 유치합니다. 어린 아이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어린 아이는 사물에 대해 단편적입니다. 깊은 내면의 세계나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합니다.

이처럼 고린도 성도들은 방언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신비한 일에만 관심이 있지 더 깊은 믿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장성하지 못한 어린 아이와 같이 유치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 당시의 거울은 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희미합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얼굴과 얼굴로 대하는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예언이나 지식은 믿음의 능력이나 방언이나 이런 보이는 모든 것은 자랑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모두 다 영원합니다. 이 세 가지를 따로 떼어놓고 기독교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세 기둥입니다. 신앙생활의 세 수레바퀴와 같습니다(살전 1:3). 어느 한 쪽이 상실될 때에 온전한 신앙을 지탱하거나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믿음과 소망을 드러나게 합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의 근원입니다.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대한 자세요, 신앙적인 태도라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요일 4:8). 사랑은 신자의 덕목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4)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너희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성도의 8가지 덕목이 나오는데 제일 첫 단계가 믿음입니다. 믿음은 신자의 삶의 기초요 뿌리요 터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이단에 넘어갑니다. 이 믿음 위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우애,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형제우애는 필라델피아, 형제사랑,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신앙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우리가 이런 덕목을 세워나갈 때 우리의 신앙은 입체적이고 아름답게 됩니다. 이런 덕목이 있을 때 영적으로 아름답고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이 신앙생활에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서 사랑의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의 용광로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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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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