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제 7(고전 7:1-40)

성경에 나타난 결혼 진리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생활양식도 변하고 풍속도 변하고 인정도 변하고 인심도 변합니다. 얼굴의 모양도 변하고 옷매무새도 변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법칙입니다. 물은 0도 되어야 얼고 100도가 되어야 끓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덥고, 가을이 되면 시원해지는 것 또한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 말고 변하지 않는 또 하나의 법칙이 있는 데 그것은 도덕법칙입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가정법칙입니다. 가정은 부부, 자녀, 부모 등으로 구성된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개인적으로 안식과 행복의 원천입니다. 장차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자라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볼 때 국가의 기본 단위로서 가정은 사회의 안정과 질서에 큰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큰 행복의 요소 중의 하나가 결혼을 통한 가정에서의 행복일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몇 시간 시달리다가 갈 곳이 없다면 퇴근해서 어디를 갈까?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이때부터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퇴근하고 또는 학교를 마치고 우리가 갈 곳이 있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가정은 사람을 안정시키고 상대방에게도 안정감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가정을 세우신 것은 놀라운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본문을 통해 결혼진리를 배워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결혼 진리(고전 7:1-7)

고린도교회 내에 극단적으로 이방인들에게도 없는 음행과 간음하는 자들이 있었던 반면에 금욕적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극단적인 쾌락주의와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낳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죄악시하여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경건한 삶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1-2) 바울은 그들의 생각이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결혼을 부정하고 독신생활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음행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하라고 했습니다.

금욕적인 삶은 표면적으로 볼 때에 고고한 학처럼 경건하고 순결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적인 욕망은 무한정 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세의 수도원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수도원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수도원의 마루장 밑에 수많은 사생아들의 뼈들이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약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한 남자마다 한 여자를 두고 한 여자마다 한 남자를 두라고 했습니다. 이는 일부일처를 말합니다.

이를 볼 때에 바울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나 독신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곳곳에서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 할 윤리를 말씀했습니다(5:22-23, 3:18-19). 그리고 디모데전서 43절에서 혼인을 금하는 이단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께로 향한 충성과 헌신과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의 원칙이 무엇입니까?

첫째, 남편과 아내는 각기 의무를 행해야 합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 7:3) 남편의 아내에 대한 의무와 아내의 남편에 대한 의무는 순종과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5:21,22,25)

그런데 여기에서 복종하라는 말씀은 명령형이 아니라 분사형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의 복종을 수식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만이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복종을 하는 사람만이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는 틀림없이 하나님께도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먼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 때 남편에게도 복종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주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면 아무리 악처라 할지라도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의 의무입니다.

둘째, 아내는 남편을 주장하고, 남편은 아내를 주장해야 합니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 7:4) 주장하다속하다는 뜻과 권리란 뜻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속해 있고, 아내는 남편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주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원하는 대로 하지 말고 서로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든 아내든 결혼 후에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리고 분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을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남편과 아내가 좀 다투었다고 짐 싸들고 친정에 가는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리고 말다툼을 하고 이불을 싸들고 딴 방으로 가서도 안 됩니다. 방이 하나이면 한 사람은 아랫목에서 자고, 한 사람은 윗목에서 자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돌아누워서 자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시험을 받을 위험한 행동입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분방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을 경우에 한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합의상 해야 합니다. 합의상 하더라도 얼마 동안 하고는 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기화되면 정욕을 참지 못해 사탄의 시험에 들어 외도를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해군들은 60일 단위로 작전을 하기 때문에 해군 부인들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고 합니다. 바울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가 사단에게 틈을 주지 말고 결혼하고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 행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에 결혼을 하고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킬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전 7:6-8) 바울은 이것이 명령이 아니라 허락이라고 했습니다. ‘허락이란 용서 양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으니 각 사람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독신 생활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독신으로 사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부르심에 순종하여 결혼을 하지 않고 주와 복음을 위해 온 마음으로 충성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19:11-12)

2. 독신과 이혼에 관한 진리(고전 7:8-16)

첫째, 독신

바울은 결혼에 대한 일반적인 진리를 끝내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8) 결혼하지 아니한 자는 남녀 모든 미혼 독신자를 가리킵니다. 과부와 홀아비도 포함합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자기와 같이 그냥 지낼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었습니다.

개척 초기에 한 자매는 일생 동안 자기는 독신으로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죄 많은 세상에 육신의 자식을 나서 고생을 시킬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고 영적인 자녀를 나서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론은 아주 영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독신으로 살고자 함은 영적인 것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불행한 삶을 보고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자매는 주와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기피증, 결혼 공포증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매가 결혼하고 아기까지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샤르트르의 영향을 받아 계약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 보고 남편이 괜찮다 싶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겠다는 것입니다. 또 독신으로 살고자 하는 분들은 한 남편과 한 아내 두기를 거부하고 여러 아내와 여러 남편을 두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병든 사상으로 병들고 비정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병든 죄악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남편의 한 아내, 한 아내의 한 남편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이혼

고린도전서 710-16절을 보면 이혼에 대한 진리가 나옵니다. 바울은 먼저 예수를 믿는 부부는 절대로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바울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 7:10-11)

주님은 마태복음 53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이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19:4-6)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은 절대로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대못을 박으셨습니다. 만약 별거를 하더라도 혼자 살든지 다시 합하라고 했습니다. 이혼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 가운데 짝 지워주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큰 죄악입니다. 결혼은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한 몸이 두 몸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한 몸이 둘로 나뉘니 피차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이는 정상적인 삶이 아닙니다. 이혼은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큰 상처와 아픔이 됩니다. 거기에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자녀들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안 믿는 아내나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믿는 형제와 믿지 않는 자매일 경우와 믿는 자매와 믿지 않는 형제일 경우를 말씀합니다(고전 7:12-16). 이 때 예수님을 믿는 하나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믿지 않는 남편과 이혼하고 잘 믿는 남편을 만나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이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이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개 핍박하는 남편은 함께 살기를 원하는 강렬한 열망 때문에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핍박도 안 합니다. 그러므로 핍박받는 사람은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의 기도와 섬김과 선한 영향력에 감동을 받아 거룩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7:14).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매일 밤 술을 먹고 들어왔습니다. 그 여인은 매일 남편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도 남편은 술을 먹고 들어와 골아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술에 깨어 눈을 떠보니 옆에서 부인이 기도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저주하거나 욕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는 척하고 들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인은 감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술을 먹는 남편이라도 있어서 과부 소리를 듣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술을 먹고도 집에 들어 와서 자니 감사합니다.”하며 계속 감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다음 날부터 술을 끊고 교회를 나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약해진 아내나 남편이 있다면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고 이혼하기로 결정했으면 이혼하라고 했습니다. 꼭 그 사람에게 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화평하여 함께 살도록 힘쓰라고 했습니다. 아내 된 자가 남편을 구원할지, 남편 된 자가 아내를 구원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있다면 끝까지 품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구원해야 합니다. 아내들이여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벧전 3:1-2)

바울은 여러 상황에 처하여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권고 속에는 문제 해결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자인 경우, 불신자이나 함께 살기를 원하는 경우, 떠나는 경우 등 다양한 교훈을 따라 각자는 하나님이 주신 입장대로, 또한 부르심을 받은 상태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고전 7:17). 남편의 아내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믿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지위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의 역사입니다.

고린도전서 718-20절을 보면 유대인이 신자가 되면 유대인 신자로서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이방인이 신자가 되었다면 유대인 신자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할례를 받은 것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키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자는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721-24절을 보면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바울은 자유인이 될 수만 있으면 자유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노예의 신분으로 믿는 이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노예로 있지만 영혼만큼은 참 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용자로부터 고용되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매여서는 안 됩니다. 눈치를 보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3. 미혼 남녀의 결혼에 대한 진리(고전 7:25-40)

고린도 교인들 중에 딸을 가진 부모가 자기 딸을 결혼시켜야 할 것인지, 그냥 지내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처녀의 결혼에 대해서는 주께 받은 계명이 없다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자비하심을 받은 자로서 권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세 가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바울은 임박한 환난을 말미암아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고전 7:26). 여기에서 임박한 환난은 고린도에 핍박과 박해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에 따른 심판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재림의 때가 가까올 때에 극한 환난이 따를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라 하셨습니다(24:19-22).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며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라 결혼에 따른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7:28). 바울은 결혼 후에 그들이 당할 육체적인 고통을 생각하며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단축하여지기 때문에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고전 7:29-31). 결혼을 하고 안 하는 것은 자유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결혼이라든지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은 다 지나가는 외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고파는 일, 세상 물건을 쓰는 일, 울고 웃는 일, 가정을 꾸미는 일 등은 결국 다 지나갑니다. 그런 일로 인해 주님의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 해야 하고, 아내도 남편에 대한 의무를 다 행해야 합니다. 또 세상을 살아가려면 쇼핑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지나쳐서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고린도전서 732-35절은 바울이 이제 결혼 후에 빠지기 쉬운 문제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생각에는 이런 저런 일에 시달리며 주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해지는 것보다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라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736-40절은 약혼녀 혼기가 지난 딸과 과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약혼녀에 대해 결혼을 시키는 것도 죄가 아니며 잘 하는 것이고, 두게 하는 것도 잘한 일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과부들은 결혼을 한다면 주 안에서 재혼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지내는 것은 더욱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나혼인에 참석하여 넘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죄악시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안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도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결혼을 해도 됩니다. 또 결혼을 한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에게 매이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결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든지 부르심을 받은 그 상태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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