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요한복음 5:10~47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예수님은 베데스다, 진정한 자비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38년이나 오래된 환자의 자비의 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낫고자 하는 소원을 심고, 말씀으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말씀을 듣고 믿어 순종했을 때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재창조 역사에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해주고, 그를 일으켜 걷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일어나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일하시므로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심판과 사망에서 영생과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어 심판과 사망에서 영생과 생명을 얻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깨닫고 말씀을 듣고 믿어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0~18)

첫째, 보라 네가 나았으니(5:9~15)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새 생명을 얻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율법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사람이 나아서 일어난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안식일 법에는 금지율이 39234장이나 되었습니다. 한가지 예로 안식일에는 위급한 환자라도 죽지 않을 만큼 치료하여 놓고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유대인들은 그에게 누가 너를 고쳐 주었느냐?” 추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미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이 모이므로 그 자리를 피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자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5:14)

보라 네가 나았으니예수님은 그에게 과거 자기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는가를 기억하고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항상 기억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과거의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고 현재 모습만 보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럴 때 감사가 없어집니다. 감사가 없으니 은혜와 기쁨이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늘 자신의 과거가 어떠했는가를 상기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이 과거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죄를 지은 죄인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도보다 작은 자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 15:10). 후에 그는 핍박자, 죄인의 괴수라고 간증했습니다. 그랬을 때,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대한 은혜와 감사가 컸습니다. 구원을 받은 감사와 은혜가 크니 더욱더 주님께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오래된 병에서 나음을 입었기에,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율법과 사회와 전통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다시 누워버리면 더 심한 병에 걸려 육신의 병보다 더 심각한 죄로 죽음과 심판과 영원한 형벌이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죄사함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은 죄사함을 받은 후 적극적으로 빛 가운데 거하지 않으면 귀신이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거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2426). 따라서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망각의 곡선에 따라 사람이 은혜를 기억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은혜를 잊지 않도록 말씀과 동시에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감사에 비례합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죄사함의 복음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둘째, 나도 일한다(5:16~18)

세상사는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칭찬은 그만두고 왜곡해서 비난합니다. 비난하고자 하는 사람의 입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요즘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고 걱정합니다.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것은 보편 복지입니다. 이미 한국은 사회주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65세 이상의 지하철 무료 카드 발급, 노인 수당, 아동 지원, 실업자 수당, 건강 보험등은 사회주의 제도입니다. 노인 수당은 소위 말하는 좌파 정부라고 매도하는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혜택을 받으며 좌파정권,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매도합니다.

문제는 반대하고 매도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대개 의기소침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좌절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박해에 조금도 의기소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5:17)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창조와 창조된 세계를 주관하는 섭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열심히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으시고 창조한 역사를 주관하는 섭리(providence) 역사를 쉬지 않고 계속하십니다.

안식일에도 해는 뜨고 지며 태양은 빛납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며 강물은 계속 흐릅니다. 안식일에도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계속됩니다. 태양이 매일 운행하다가 피곤하여 안식일이라고 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속 일하시지 않으면 창조하신 세계가 보존될 수 없고 인간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돌보시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구원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망 상황에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시고 구원 역사를 계속 이어가셨습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약속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살리는 구속 역사에는 쉬지 않으십니다. 사탄은 안식일도 없고 밤도 없습니다. 따라서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쟁에는 휴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안식은 소생(refresh)입니다. 세상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와의 교제를 나누며 이웃을 돌보며 영혼을 소생하게 하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따라서 주일에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더욱 하나님 사랑의 역사, 긍휼의 역사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더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다 맞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옳고 정당하면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부족함이 노출되면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화를 낸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데 있습니다(5:18).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만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신성 모독죄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분명히 증언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요한복음 5:19~23절입니다.

2.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5:19~23)

유대인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았다고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점에서 하나가 됩니까?

첫째, 예수님은 아버지께 하시는 일을 그대로 행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5:19)

이 말씀은 성자 예수님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성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존재론적으로 하나가 아니라 계시론적인 관점에서 하나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알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5:20)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남편과 아내 모르게 비자금을 가지고 있습니까? 비밀을 감추려고 해도 사랑 앞에서는 감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시므로 아들에게 다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인격과 인격을 하나로 만듭니다. 사랑하면 내 마음이 그의 마음이 되고,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됩니다. 내 슬픔이 그의 슬픔이 되고, 내 기쁨이 그의 기쁨이 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의 마음입니다. 아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마음과 뜻과 생각이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순종하게 합니다. 순종은 하나로 만듭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둘이 되고, 순종하면 하나가 됩니다. 성경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순종하면 같은 운명체가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가 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예수님께 생명을 맡기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5:20)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은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역사, 새로운 피조물로의 재창조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고 살리는 데서 하나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예수님께 심판을 맡기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5:22~23)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다 위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고 은혜가 충만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세상 끝날에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고후 5:10).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심판의 대권을 맡기신 목적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도록 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고 섬기도록 함에 있습니다.

3.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4-3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이 말씀은 우리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붙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얻었다, 옮겼다는 시제가 과거완료입니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믿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듣고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듣고 믿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면 믿고, 믿으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영접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는 보통 영생하면 시간 면에서 오래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생은 질과 내용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섭던 진노의 관계에서 이제는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 영생입니다. 과거에는 주인과 종과의 관계였지만 이제는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불편한 관계가 평안의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회복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바른 관계로 회복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도 회복됩니다. 낮은 자존감에서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열등감에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질과의 관계도 바르게 회복됩니다. 자기만을 위해 쓰던 삶에서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주와 복음을 위해 드립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사망의 특징은 느낌과 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듣지 않으니 죄에 대한 찔림이 없고 애통함이 없고 회개가 없습니다. 회개가 없으니 거짓과 교만과 위선뿐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을 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거짓말과 면피와 변명과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회개하지 않는 순간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죄를 얼마나 지었는가보다 죄를 지었을 때 회개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망은 회개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영생과 심판. 사망과 생명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심판에서 영생, 사망에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이제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옵니다. 곧 이때입니다. 이때란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전파되고 성령의 감동되는 그 순간입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하는 순간, 말씀이 증언되는 순간, 말씀이 선포되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은 말씀이 들리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이 들립니까? 그렇다면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이 들려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데서 영생과 생명을 얻은 산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현재 생명을 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도 생명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5:26~27). 예수님은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마지막 날에는 선인이나 악인이나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각 그 행한 대로 상급을 받고 또 심판을 받습니다. 이때는 모든 것이 다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는가, 아니면 자기 유익을 구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시기 때문에 그 심판은 정확합니다. 그날에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듣는다는 말씀이 4번 반복됩니다(5:24~28).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누구로부터 말을 듣습니다. 시시각각으로 핸드폰으로 뉴스를 듣습니다. 유투브로 여러 소식을 듣습니다. 여러 소식을 듣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시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누구의 말을 듣는가는 중요합니다. 사탄의 말을 듣는 자는 영적 생명을 잃고 파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사망과 심판에서 벗어나 영생과 생명을 얻습니다.

사망과 심판의 세계는 율법과 정죄입니다. 여기에는 허무, 무의미, 운명, 패배, 불안, 두려움 등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이 가득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기쁨과 평강이 없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 중상모략, 살인, 강도, 강간 등 갖가지 죄악이 지배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영생의 세계는 사랑과 평화의 세계입니다. 기쁨과 희망의 세계입니다. 은혜의 세계입니다.

4. 예수님에 관한 증거(5:31~47)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도와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영접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여러 증거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5:31~32, 37~38)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증거하면 그 증거는 참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하는 이가 따로 계시는데 그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예수님께 대한 증거는 참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거짓이 없으신 분입니다(1:11, 9:7)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을 증언하시지만,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도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하지 아니하였습니다(5:37~38).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곧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둘째, 세례 요한의 증거(5:32~35)

당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삶과 회개의 메시지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관해서 증언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요한은 어두운 그 시대를 비추는 등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시지만, 그들이 세례 요한을 인정하기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 언급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역사(5:36)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힘으로서는 할 수 없는 수 많은 능력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기도 하시고, 38년 된 병자를 일으켜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더. 이런 역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인치는 명백한 증거입니다(20:30~31).

넷째, 성경의 증거(5:39~47)

성경은 저자와 저작 연대와 장소가 각각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탄생 방법, 탄생지, 그의 생애와 그의 어떠하심과 그가 받으실 고난과 부활 등 그리스도에 관해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도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취했습니다(5:41~47). 이런 그들을 고소할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모세입니다. 그들은 모세도 믿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모세를 믿었더라면 그가 증거한 예수님도 믿었을 것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듣고 믿어 사망과 심판에서 영생과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펼치고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끼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있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인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영존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7)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가 이 말씀을 듣고 영접했을 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철학자, 설교자, 인디언 원주민들의 선교사입니다. 그는 1703년에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171613세의 나이로 예일대에 입학, 172017세 때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하고, 17228월부터 뉴욕에 있는 장로교회의 목사로 사역을 시작했고, 1724~726년까지 예일대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740~1742년에 일어난 1차 대각성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의 후손은 지금도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는 10대 때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세가 되었을 때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편 81:10) 말씀으로 회심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하나님의 뜻과 여러 성도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많은 고아를 섬기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사망과 심판에서 영생과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이 겸손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사망에서 영생, 심판에서 생명을 얻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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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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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