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한복음 8:21~59

진리와 자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요즘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민주주의냐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민주주의와 대비가 전체주의이고, 자유의 대비되는 단어가 독재입니다. 자유와 함께 추구하는 것이 평등입니다. 보수는 자유를 강조하고, 진보는 평등을 강조하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며 서로 함께 가야 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UN헌장이나 미국 독립선언문이나 우리나라 헌법에도 자유와 평등을 귀한 가치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진리와 자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자유와 진리가 무엇입니까? 자유는 풀림이고, 반대는 매임입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매이게 되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진리란 참된 이치입니다. 진리는 거짓과 허위에 대비됩니다. 그래서 진리에는 이란 형용사가 붙습니다. “이 그림은 진짜 원본이다.” “이 사람은 진짜 진실한 사람이다.” “이 말은 진짜 옳은 말이다.”

자유와 진리 또한 인류가 추구하여야 할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그래서 학문의 상아탑이라고 일컫는 대학교의 교훈에는 거의 진리와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인하대학교의 교훈도 ()’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정욕에 매여 현장에서 음행하다 잡힌 여자의 죄를 용서하셨을 때, 이 여자는 죄의 매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죄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내 말에 거하면 참된 제자가 되고(8:21~31)

첫째, 내 말에 거하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8:31)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거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말씀 안에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거한다는 것은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한다는 의미를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을 뜻합니다. ‘연합하다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배가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다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닻을 내리지 않으면 작은 파도에도 떠내려갑니다. 반면에 닻을 내린 배는 어떤 풍랑에도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악의 파도가 이는 흉흉한 바다와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말씀을 굳게 붙들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죄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 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2:1)라고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닻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생명을 걸고 말씀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에 닻을 내렸으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은 계속해서 말씀에 뿌리를 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6-7)

뿌리를 박는다(ἐῤῥιζωμνι)’는 뜻은 헬라어로 완료 분사입니다. 주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는 것은 이미 완료된 기정사실이고, 이제부터는 계속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비바람에도 넘어지거나 뽑히지 않습니다. 나무의 높이는 뿌리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신앙의 성숙 또한 말씀의 뿌리 깊이와 비례합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되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1:3).

다음은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세움을 받다(ἐποικοδομομενοι)’란 헬라어로 현재 분사형입니다. 이 말은 터 위에 계속 지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다면 예수님의 기초 위에 계속 집을 지어야 합니다.

집을 짓되 집의 재료가 중요합니다. 집을 금과 은, 그리고 각양 보석으로 지을 수 있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고전 3:10~13). 사람들은 값싼 재료로 집을 짓기를 좋아합니다. 값싼 재료는 구하기 쉽고, 또 쉽게 집을 지을 수 있지만, 보석으로 지으려면 자재가 비싸고 구하기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시련을 만날 때입니다. 불 심판을 받을 때 값싼 재료인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순식간에 타버립니다. 그러나 은과 금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은 쉽게 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금과 은, 그리고 보석은 순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금과 은이나 보석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번 용광로에 제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용광로에 많은 연단을 받은 보석일수록 불순물이 제거되어 순도가 높고 빛 또한 영롱합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자기 본성이 온전히 깨져 새롭게 다져진 믿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다가 보면 여러 역경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시련으로 형성된 믿음은 어떤 어려움에도 역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내 참 제자가 되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닻을 내리고 예수님 안에 거하여 뿌리를 내리고 예수님의 터 위에 집을 지으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라고 한 것을 보면 참 제자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다이아몬드를 물에 넣어보면 진짜는 영롱하고 가짜는 빛을 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허수아비와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참새들이 몰려올 때 소리를 내며 좇느냐 침묵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각종 시련과 역경을 만났을 때 이기면 진짜 크리스천이고 주저앉으면 허수아비 성도입니다. 진짜와 가짜 신자는 역경을 만났을 때 드러납니다.

참 제자는 예수님과 늘 동행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 인격과 삶을 본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본받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신자, 제자, 형제, 또는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자들을 크리스천(imitation of christ)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불리운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심장과 온 몸으로 닮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에게 크리스천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화 과정으로 작은 예수가 됩니다.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에 머리로 아는 교리적인 믿음과 지식의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2:17). 죽은 믿음은 냄새가 역겹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합니까?

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8:32)

첫째,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참 된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저마다 진리를 이야기했습니다.

진리란 헬라어로 알레데이아(ἀλήθεια)와 알레디노스(ἀληθινός)가 있습니다. ‘알레데이아(ἀλήθεια)’는 거짓의 반대로 참(true)이란 뜻이고, ‘알레디노스(ἀληθινός)’는 허구의 반대로 사실(real)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진리는 참과 사실을 모두 포함합니다.

진리는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저자들의 마음에 자신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진리의 숨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으로 하나님과 호흡하고 교통할 수 있습니다. 성경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딤후 3:15~17). 성경은 지혜와 의의 영원한 원천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자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제자들이 경험한 사실에 기초한 기록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 여러 부활의 증인들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는 여종 앞에서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할 만큼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원수들 앞에서 담대하게 부활하신 예수님,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떡과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그 후 오백여 형제에게 동시에 보이셨습니다. 그 당시, 그중에 250명 이상의 증인들이 살아있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서 출세하도록 종용하던 사람이었습니다(7:1~5). 그런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예루살렘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었습니다(15:13). 그가 얼마나 기도했던지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같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성도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9:1~20).

성경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능력(power)입니다(1:16). 복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도덕이 아닙니다. 복음은 상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철학이 아닙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는 두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것을 죽이는 능력입니다. 죄를 죽입니다. 교만을 죽입니다. 위선을 죽입니다. 세속적인 욕망을 죽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모든 죄와 죄의 속성을 죽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존재가치를 알도록 합니다. 낮은 자존감을 높은 자존감으로 바꿉니다.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사람의 좋지 못한 생각과 사상과 습관, 가치관이 바뀝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은 인간이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국의 여러 대통령 중에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일컫는 링컨 대통령은 성경을 사랑하였습니다. 미국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은 링컨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링컨은 성경 한 권으로 그의 생애를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게 만든 사람이고 성경과 함께 걸어간 사람이다.” 링컨의 학교 교육은 겨우 1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가 어렸을 때 소유했던 것은 오직 성경 한 권뿐이었습니다.

링컨은 하루를 성경과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노예들이 해방의 기쁨에 감격하여 580달러의 거액을 모금하여 링컨에게 특별한 성경을 선물했습니다. 이 성경은 가죽에 금을 입히고 겉표지에는 흑인 노예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링컨의 모습을 금으로 새겼습니다. 링컨은 그들의 값진 선물에 감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남북 전쟁으로 어려움이 계속되는 동안 욥기를 수없이 읽으며 왜 의인이 고난받는지를 묵상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욥기는 저를 낙심과 좌절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리고 시편 말씀으로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둘째, 진리가 자유롭게(8:32)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일절 매임에서 놓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간이 부어 평소에 말을 잘하지 못하던 사람도 술에 취하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다음날 술을 깬 후 어제의 행동과 말을 후회합니다. 이건 참된 자유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사랑 안에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입니다. 무법한 자유가 아니라 진리에 이끌림을 받는 자유입니다. 특권의 자유가 아니라 섬기는 자유입니다.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참 자유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불평등합니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에도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왕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10대 독자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새신랑, 새신부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죽음 앞에 두려워합니까?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끊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결부되면 기쁘다가도 슬퍼집니다. 천하의 알렉산더 대제도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의 절대 권력에 비례하여 그에게 죽음은 슬픈 사건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어떤 것이 올지, 그 후에 있을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 대해 모든 정보를 다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며(6:23),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지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9:27), 심판의 부활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 심판은 제2의 죽음으로 유황불에 타는 못에 영원히 참여하게 됩니다(21:8).

그러나 성경에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6:23). 영생의 부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벧전 1:3~4).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합니다(2:6). 이곳은 슬픔도 죽음도 애통도 아픈 것도 어둠도 없습니다(21:1~4). 이보다 더 확실한 정보가 어디 있습니까?

이를 볼 때 두려움은 성경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무지에서 옵니다. 유명한 영화 올드 보이에서 “15년이라는 것만 알려줬어도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 큰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죽은 이후의 정보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죽음을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할렐루야 찬양하세....”(새찬송가 43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사망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와 죽음의 매임에서 벗어나 내면에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면에 성령의 열매를 맺고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두 종류의 자녀(8:33~59)

그들은 자유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자유케 되리라 고 하느냐며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 헬라 등 많은 나라로부터 지배받아 왔습니다. 현재도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 자부심 때문에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자유 하면 집회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등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유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의지라는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자유의지를 죄를 짓는 데 사용하여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죄를 지을 자유의지는 있으나 선을 행할 자유의지를 상실했습니다.

죄의 종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아들은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8:35).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나옵니다(8:37~59).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다, 귀신 들렸다며 무시했습니다(8:48~49). 예수님은 이에 개의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8:50). 예수님은 오히려 반발하고 무시하는 그들을 영생으로 초청하셨습니다(8:51).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모든 매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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