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4~52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우리 몸의 70~80%가 물입니다. 젊었을 때는 얼굴이 주름살이 없다가 나이가 들면 얼굴이 쪼글쪼글하게 되는 것은 수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배고픔을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목마름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40일간 금식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40일간 물을 마시지 않는 금음(禁飮)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목마름 문제는 심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몸의 목마름도 있지만, 지식에 대한 목마름, 사랑에 대한 목마름, 물질에 대한 목마름, 권세(대권)에 대한 목마름, 명예에 대한 목마름, 유행에 대한 목마름, 언론과 자유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미얀마와 같은 독재정권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 시는 김지하 씨가 지은 타는 목마름의 일부분으로, 1970년대 10월 유신이라는 군사 독재 정권의 강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시입니다.

목마름은 인간의 강한 욕구, 인간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런 욕망은 눈에 보이는 목마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니다(3:11).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 영혼이 충족되지 않은 세상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1:2,8)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다 보면 목이 마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예수님은 신분 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6:14~36)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명절 중간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7: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 행하려는 자세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단순히 호기심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머리만 있는 창백한 지식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 성경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세, 내 삶을 모두 맡기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려는 창백한 지식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논리와 이론으로 변증해도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순종하여 미웠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성경 말씀이 이해가 되고, 그 말씀이 진주와 같은 보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더 들겠습니다. 성경에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매달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과 드리지 않고 사는 삶의 결과를 볼 때, 드리지 않는 사람이 잘살 것 같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물질에 대한 청지기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에 돈을 함부로 헛되이 쓰지 않습니다. 자기에는 검소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행하고 지키려는 자세, 알고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는 데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행하고 순종할 때 힘이 있습니다.

둘째, 자기 영광을 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7:18)

사람들이 성경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자기 영광을 위해 사람은 늘 자기가 주어(主語)가 되어 자기 광()으로 시작하여 발광(發狂)으로 끝납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빛나는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거짓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거짓되고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참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참되고 불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끝나 하나님 영광의 빛을 발광(發光)합니다. 이런 사람은 좀 허물이 있고 실수가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참되며 불의가 없습니다.

셋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7:24)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비호감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감과 비호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대개가 외모와 조건을 보고 판단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얼짱, 몸짱 등의 신조어가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겉모양을 보지만 하나님은 내면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그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따라서 얼짱’, ‘몸짱보다도 마따녀마음이 따뜻한 여자, ‘봉조녀봉사활동을 좋아하는 여자, ‘맘짱’, 마음이 짱인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외모로 판단할 때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에 치중하게 됩니다. 신분 상승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게 되고, 허영에 들떠 진품이 비싸서 갖고 다닐 수 없으면 짝퉁이라도 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짝퉁 천국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요즘 백화점에서 루이비통 가방을 빌려준다고 하니 20,30대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렌트 가방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계급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섬김의 직임이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목사만 성직자이고, 일반 성도는 평범한 평직자가 아닙니다. 모두가 성직자입니다. 목사는 full time minister, 전임 사역자이고, 장로나 권사나 집사, 그리고 성도는 self-support minister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직분을 귀히 여기며 서로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평가할 때 공의를 보고 판단하십니다. 예수님은 내면의 동기와 목적과 정신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판단은 오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깊은 의중을 모르고 판단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7:28~29).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2:28).

예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으니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7:33~34). 그러자 사람들은 헬라인들에게 가려고 하는가? 아니면 애굽으로 이민 갈려고 하는가? 수군거렸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움직임을 수평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직,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입니다. 이제 하늘로 다시 올라가십니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은 땅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2. 생수의 강 예수님(7:37~52)

이제 초막절 끝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날은 명절의 절정으로 큰 날이라고 합니다. 이날에 사람들은 제단 주위를 일곱 번 돌며 종려나무 잎을 흔들며 호산나를 불렀습니다.

절기가 계속되는 7일 동안은 매일 아침 제사장이 실로암 못에 가서 금 항아리에 물을 길어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때 제사장들은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12:3) 노래를 불렀습니다. 백성은 시편 113,118편을 불렀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목말라 울부짖던 조상들에게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셔서 목마름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식입니다(17:6).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물항아리를 들고 오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그리스도요 샘물은 성령을 의미합니다(고전 10:4).

그런데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생수 되신 예수님이 옆에 계셔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의미를 모르고 행사만 하게 되면 행사 자체로 끝나게 되고, 행사 자체로 끝나게 되면 피곤하고 허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끝날에 서서 외쳐 말씀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은 제칠일 째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내게 와서 마시라, 그러면 누구든지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마치 광야와 같아서 누구에게나 목마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공통 목마름은 사랑의 목마름과 부의 목마름일 것입니다. 특히 20, 30세대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아파트의 목마름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끌이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갈은 양식과 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사람은 근원적으로 목마른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눈에 보이는 목마름 이상의 영혼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 영혼의 목마름은 눈에 보이는 목마름으로 채울 수 없고, 영혼의 목마름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 채워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더 갖고 싶고, 더 취하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기자가 록펠러에게 당신은 백만장자이니 부족함이 없겠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록펠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a litter more(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습니다. 바다를 메울 수는 있어도 인간의 욕망은 메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샘물은 우리의 심령과 영혼을 적시고, 흘러서 넘쳐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 배에서(within him)’란 심령 깊이에서란 뜻입니다. 이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을 말합니다(7:39). 그러면 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라고 했을까요? 이 말씀은 헤브라이즘의 세계관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지성은 머리, 감성은 가슴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슴이 뜨거운 남자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의 지성은 심장(καρδιά)있고, 감정은 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슴이 뜨거운 남자가 아니라 배가 뜨거운 남자가 됩니다.

배에서 솟아난다는 것은 배에서 끓어오르는 기쁨을 말합니다. 신앙이 지적으로 끝나면 끓어오르는 감격, 기쁨이 없고 냉랭하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을 때 끓어오르는 감격과 설렘이 있었습니다.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벅찬 감격과 뜨거움이 사라지고, 열정과 감격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배까지 가지 않고 심장, 아는데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배는 탐욕과 오물로 가득하여 더러운 배()신자가 되어 오물 튀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배가 똥배가 아니라 성령의 배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경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나하시더라.”(7:39)

여기에서 영광은 로마 황제의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자리입니다. 영광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에 죽지 않으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갈보리 십자가 언덕이 있어야 부활의 영광과 승천이 있고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고는 성령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8)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십자가의 은혜와 비례합니다. 십자가 은혜가 크면 성령 충만하게 되고 십자가 은혜가 희미하면 성령의 은혜도 희미하게 됩니다.

복음서에서 성령의 역할은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고백하도록 합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은 권능과 증거, 감격의 신앙생활로 이끕니다. 서신은 성령의 은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중심과 기초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에게 희열과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성령은 생명을 약동하게 합니다. 성령은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내면을 순결하고 진실하게 합니다. 성령은 죄와 싸워서 이기게 합니다. 성령은 벅찬 감격,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 소망이 넘치게 합니다. 이는 나로 끝나지 않고 가정, 친구, 캠퍼스, 민족, 더 나아가 열방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성령은 거룩의 영, 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세상과 거리를 두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로부터 우리를 분리하여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에 적응하며 적당히 사는 것은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령은 신비로워서 한번 맛보면 다음 날 계속하여 성령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또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사막에 낙타와 같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푸른 초장의 사슴과 같습니다. 낙타는 그 몸속에 물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으므로 아무리 메마른 사막을 지나가도 목이 타는 목마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슴은 푸른 초장에서도 그 몸에 물을 저장할 수 없으므로 금방 지쳐서 쓰러집니다. 사슴의 특징은 목마름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슴은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멋이 있습니다. 화려한 뿔, 보석처럼 박힌 꽃무늬들, 애수에 젖은 눈동자, 날렵한 동작, 사슴은 아름다운 동물입니다. 반면에 낙타는 못생겨도 한참 못생겼습니다. 키는 껑충하게 크고 몸에 난 털은 지저분합니다. 등에는 혹이 두 개나 있어서 볼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푸른 초장에서 사슴처럼 자신의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푸른 초장보다 광야와 같은 길을 걸을 때가 더 많습니다. 사슴과 같은 삶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정욕과 탐심과 욕심의 목마름에서 여지없이 쓰러집니다.

반면에 낙타와 같은 우리는 겉모양이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십자가로 성령의 생수가 흘러넘쳐 광야를 묵묵히 지나갈 수 있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썩고 오염된 탁류에 한눈팔지 않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고 달음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고 메마른 땅을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을 아는 데 그치겠습니까? 아니면 믿고 순종하시겠습니까? 자기 영광을 위해 겉모습을 가꾸는 삶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내면을 가꾸는 삶을 가꾸며 살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오물을 튀기는 삶을 살겠습니까? 사슴과 같은 모습으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사막의 낙타와 같은 모습으로 살겠습니까? 십자가를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성령 충만함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증언하여 그들도 기쁨이 넘치는 성령 충만한 삶으로 초대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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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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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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