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 15 강(말씀, 6:1-7, 요절 6:3)

말씀과 기도에 전무한 사도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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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1절은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로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사도들이 옥에 갇히는 등 환난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 맞고 옥에 갇히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힘썼습니다(행5:42). 이로 인해 교회는 날로 부흥하였습니다. 교회는 새 신자들로 넘쳐났습니다. 사단은 집요한 공격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하여 힘찬 전진을 했습니다. 교회는 오히려 강건해지고 튼튼해졌습니다.

이제 사단은 박해라는 방법으로 교회를 공격했지만 박해가 통하지 않게 되자 내부적인 분열로 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6:1b절을 보겠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히브리 사람들이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던 유대인들이고, 헬라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즉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헬라 문화의 배경 하에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니까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서로 문화적 차이가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썼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썼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율법에 대해 아주 엄격한 보수적이었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개방적인 진보적이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유대인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내에 처음 일어난 내부적 분열상입니다. 그 이유는 구제에 있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망입니다. 원망은 어디에서 옵니까? 주는 자에게는 원망이 없습니다. 원망은 언제나 받는 쪽에 있습니다. 원망은 항상 받고자 하는 마음, 더 받고자 하는 마음, 칭찬을 받고자 하는 마음, 인기를 얻고자 하는 마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 더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니까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받고자 하는 노예근성과 거지 근성을 가진 사람들이 원망합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부부간에 사랑을 더 받고자 하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늘 원망이 쉬임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반면에 받고자 하기보다 내 명예와 내 생명, 내 마음을 다 주어 섬기고자 하면 원망보다는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이 말씀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진리입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디서든지 불평보다는 감사가 넘쳐나게 됩니다. 감사가 넘쳐나니 기쁨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니 얼굴이 밝고 얼굴이 밝으니 얼짱이 되고 얼짱이 되니 화장할 필요가 없게 되고 화장할 필요가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묵상하여 영성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지금 사단은 원망과 분열이란 도구를 가지고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초대 교회는 분열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부흥하고 성장하는 새 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라니라.” 그러니까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는 것은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초대 교회는 분열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 사도들은 교회의 선순위를 확실히 하였습니다. 교회는 3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케리그마(말씀 선포), 둘째는 코이노니아(교제), 셋째는 디아코니아(봉사)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우선수위, priority는 말씀 선포입니다. 말씀 선포 없는 교제는 동창회나 향우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복음 전파 없는 구제는 일반 봉사 활동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교회의 우선순위인 말씀 전파를 제쳐놓고 공궤에만 일삼았습니다. 보통 구제가 아니라 날마다 구제에 몰두했습니다. 말씀 전하는 것은 뒷전에다 놔두고 구제만 힘썼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금요일에 모금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리에 다니면서 북을 치며 구제를 위하여 모금을 하였습니다. 모금을 해가지고 저녁에 이것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매일 이런 구제를 했습니다. 그러니 언제 말씀을 가르치고, 언제 말씀을 전할 수 있고, 언제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말씀을 전하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주님을 바라보고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교회는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서로 마주 앉아 약점을 찾아 상처를 주고 원망하고 불평하여 문제만 일으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그들은 문제 자체에서 문제를 찾지 않고 본질문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공궤를 일삼는 것보다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사역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구제나 봉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말씀 전파임을 확인했습니다.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말씀 사역임을 확인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말씀이 있는 곳에 교회는 언제나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공궤만 일삼는 교회나 선교단체는 언제나 쇠퇴하고 망했습니다.

20세기에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선교단체는 SVM 운동이었습니다. 이 단체가 놀랍도록 성장하고 세계에 크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 위임보다 전도적 위임을 우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적 위임은 크게 사회봉사와 사회행동입니다. 그들은 이보다 전도적 위임을 앞세웠습니다. John Mott와 Robert Wilder는 ‘이 세대의 세계 복음화’라는 표어를 걸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SVM운동에 4만 명의 미국 대학생이 참여했고, 그 중에 2만 명이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1920년에는 한 해에 2,783명이나 가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1938년에 가서는 겨우 한 해에 25명이 가입했습니다. 그 원인은 전도적 위임보다 문화적 위임을 앞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인종차별 문제, 빈민문제, 전쟁문제, 고아문제, 낙태 문제 등 사회문제를 앞세웠습니다. 그 때에 SVM 운동은 쇠퇴하였습니다.

교회는 문화적 위임, 봉사나 교제로 사역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말씀 전파를 통해서 확장됩니다. 말씀으로만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만이 사람들의 삶속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만이 그들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봉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봉사의 진정한 방법을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서만이 봉사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만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말씀은 교회의 가장 위대한 보화입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한 교회는 언제나 항상 전진하고 성정하고 부흥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 전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서 10:17절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쉬임 없이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개척할 때에 말씀을 영접하지 않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들을 떠나 말씀을 순수하게 영접하고 배우고자 하는 12명을 따로 세워서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란도 서원을 빌려 강의가 없는 빈 시간을 이용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2년 동안 이 일을 계속했습니다. 한 주간도 아니고 매일 2년 동안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울의 복음역사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에베소 교회 개척뿐 아니라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골 4:13) 등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계 1:11). 12명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말씀 역사를 섬겼을 때 복음역사의 불길은 점점 타 올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죄를 자복하고,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銀 오만원어치(약 20억)나 되는 마술 책을 불살랐습니다. 저자는 에베소에서의 말씀 역사를 이같이 코멘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20).” 에베소는 마술이 세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마술의 세력은 문화를 형성하여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생활을 지배했습니다. 마술 문화는 너무나 거대한 난공불락의 성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파되었을 때 말씀이 힘이 있어 이 모든 세력을 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히4:12).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 로마 선교의 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9:21절을 보겠습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는 말씀 역사에 대한 확신을 갖고 로마도 말씀으로 능히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바울이 품게 된 이 비전은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심령에 충만하게 되면 자연히 비전이 생기게 됩니다. 사무엘서 3:1절에 보면 말씀이 희귀할 때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잠29:18). 따라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까? 비전은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전파할 때에 하늘로부터 비전이 임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의 삶은 희망으로 불타게 됩니다.

사도행전 28:30,3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하여 셋집에서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바울은 그의 셋집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감옥소였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두란노 서원에서와 같이 2년 동안 자기에게 오는 자들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축복하셔서 313년 만250년 만에 로마가 복음으로 정복되었습니다. 바울의 셋집 역사는 아주 보잘 것 없고 미미했지만 복음은 힘이 있어서 대로마를 무너뜨렸습니다.

100년 전 한국은 온통 미신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병이 나거나 불의의 사고가 생길 때는 신이 노하여서 그렇게 되었다며 굿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못지않게 숱한 각종 신들이 있습니다. 산신, 고목나무신, 달걀귀신 등 각종 신들이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사고를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마약과 노름과 담배와 술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으로 병들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복음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와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권서들이 성경을 짊어지고 방방곡곡에 다니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였는지 선교사들이 미국 선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그들을 일컬어 Bible lover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경회를 일주일 동안 계속하였습니다. 1907년의 평양에서의 회개운동이 일어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포에서까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덮을 것을 이고 지고 천리 길을 마다하고 평양 사경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리했을 때 폭발적인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던 각종 미신의 세력을 몰아내고 새 사람 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이 전파되는 곳은 항상 새 역사가 전개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한국 교회에 자유주의가 들어와 말씀 전파를 게을리 하고 다른 것에 몰두했을 때 교회가 때 쇠퇴하기 시작하여 감소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온통 재테크에 관한 것으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돈에 울고 웃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음란 사이트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점이 판치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전집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하대 까르프에 가면 책상을 펼쳐놓고 점을 치고 있습니다. 저는 누가 점을 보는가 보았더니 젊은 미모의 여인들이 점을 보고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도 점집 안에, 도사집 안내가 도배질하고 있습니다. 몸짱 얼짱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또한 제가 말씀 전하는 것을 게을리 했을 때 교회에 각종 문제가 생기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세력들과 싸워서 아름다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런 세력들은 너무나 강하여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 이런 세력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역사하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말씀을 제쳐놓고 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맙니다. 말씀이 없는 교회의 갱신은 이루어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말씀만이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고, 캠퍼스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새롭게 할 수 있고, 사회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민족을 복음화 할 수 있고,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 없이 말씀이 살아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말씀이 살아서 영혼에 자극과 변화를 주며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둘째, 사도들은 7명의 집사를 세웠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사도들은 다섯가지 조건을 갗춘 사람을 봅도록 했습니다.

첫재는 남자(사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남자를 지칭)이어야 하고, 둘째는 신자이어야 하며(너희 가운데) 셋째는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하였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고결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였습니다. 넷째는 영성을 소유한 성령 충만한 사람이어야 하였습니다. 다섯재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여 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일곱의 수는 공회의에서 공공의 업무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인원수였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능한 재능이 있는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선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택하도록 한 것입니다. 집사는 식탁에서 수종드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다른 사람이 평안히 식탁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왔다갔다하며 수종드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집사는 어떤 감투가 아닙니다. 집사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도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온 무리가 이 해결책을 기뻐하였습니다. 이들 일곱 사람들의 이름은 헬라식 이름이었습니다. 이를 볼 때 사도들은 히브리파 사람들을 세우지 않고 불평하던 헬라파 사람들을 세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복음이 헬라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좋은 기초가 되었습니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6). 기도와 안수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안수는 고대 히브리 사람들이 특별한 직무를 위해 사람을 구분하는 방식이었습니다(민27:23,신34:9). 안수는 직분을 맡은 사람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이 도에 복종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이 도에 복종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핍박과 갈등을 겪으며 성장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외적인 환란을 겪은 후에 내적인 분열에 직면하였습니다. 사단은 내적인 분열을 일으켜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매일구제에 관여하던 일을 그치고 지혜롭고 충성된 일곱집사를 세워서 맡겼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였습니다. 사도들의 결단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더욱 든든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원망대신 서로 나누고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여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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