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영성

조회 수 3241 추천 수 0 2012.07.11 02:24:28
열왕기하 22:8-20(요절 23:25)

요시야의 영성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23:25).”

Hi, Bible Lover!

역대 정권 치고 나라를 개혁하려고 하지 않은 정권은 하나도 없습니다. 5공화국 정권에서는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부정과 부패로부터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서는 금융 실명제를 실시함으로 경제를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는 많은 것을 개혁하려고 하다가 개혁 피로증에 빠지기고 했습니다. 참여정부에 들어서서는 혁신부서가 생길 만큼 개혁을 하고자 시도하지만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역대 정권들이 개혁의 손을 댄 것은 공통적으로 교육의 제도였습니다. 참여정부는 대학교육을 경제 논리로 생각하여 경쟁력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시대마다 교육 제도를 고쳐서 그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지만 변화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죄가 더 만연하여 곳곳에서 병리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다의 역대 왕 중에 선왕이 3명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다윗이었고, 다른 한 명은 히스기야이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요시야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나라의 근간을 세웠다면 히스기야는 하나님만을 굳게 붙들고 의지함으로 그 시대를 바로 세웠습니다. 또한 요시야는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하고 지켜 행함으로 무너진 국가를 굳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 시대를 어떻게 바르게 할 수 있습니까? 제도를 고치고 교육의 틀을 고친다고 사회가 바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제도를 만들고 교육의 틀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변하지 않고 제도나 교육의 틀이 바르게 될 수 없습니다. 나란 존재는 어떤 존재입니까? 이기적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희생을 싫어하고 고난을 싫어하고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의 내면을 잘 살펴보세요. 얼마나 자기를 사랑합니까?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이 제도를 고치고 교육의 틀을 고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만들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제도나 틀을 혁신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혁신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종교 개혁을 앞장섰던 마르틴 루터의 3대 모토 중 첫 번째가 sola fide(믿음), 두 번째가 sola scriptura(성경), 세 번째는 sola gratia(은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말씀 앞에 회개하고 순종할 때 나 자신이 변하게 됩니다. 나 자신이 변하면 가정이 변하고 직장이 변하고 캠퍼스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국가와 민족이 변합니다. 요시야 한 사람이 변하자 국가와 민족이 변했습니다. 요시야는 어떤 왕이었습니까?

첫째, 그는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도록 했습니다(3-7).

요시야는 어린 여덟 살에 왕이 되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는 사울의 길을 따르지 않고 다윗의 길을 걸었습니다(1,2). 그는 왕이 된지 18년에 서기관 사반을 시켜 여호와 전을 수리토록 지시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26세였습니다. 26살이라면 아직 청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때입니다. 그 나이 쯤 되면 다른 많은 것에 야망과 관심을 쏟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에 눈을 돌려 성전이 퇴락한 것을 보고 보수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성전을 보수하고자 한 것을 보면 평소에 하나님 전에 가서 기도하고, 성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전에 갈 때마다 성전이 퇴락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전이 퇴락해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제사장도 있었고, 종교지도자들도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을 때 전이 퇴락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이는 마치 교회가 지저분해도 관심이 없으면 치우거나 청소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요시야는 성전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관심을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스타일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0개는 0밖에 안 보인다.’ 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관심은 곧 인격입니다. 그래서 저속한 사람은 저속한 것에 관심을 갖고, 고상한 삶을 사는 사람은 고상한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사람들은 돈에 관심을 갖고, 육신적인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 풍조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습니다. 까마귀는 썩은 고기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썩은 고기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졸장부는 관심의 폭이 좁고, 자기중심적이고 그 생각이 천박합니다. 그러나 대장부는 관심은 폭이 넓고 웅장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서 시대와 민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내일을 열어갈 지도자들을 키우고 섬기는데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졸장부는 강아지처럼 주인이 먹다 남은 생선 대가리를 어떻게 하면 얻어먹을까에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대장부는 산야를 포효하는 호랑이와 같이 웅장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높은 기상과 이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미래를 꿈꾸며 내일에 펼쳐질 그림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질과 쾌락이 춤을 추고, 불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큰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시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둘째, 그는 율법 책을 듣고 옷을 찢고 통곡했습니다(8-20)
.
성전을 수리하다가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 책을 발견하여 사반에게 주었습니다. 사반은 요시야 왕 앞에 가서 율법 책을 읽었습니다. 그 때 요시야 왕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11,19).” 요시야는 율법 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회개를 말합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말씀은 요시야로 하여금 통회하고 자복하게 했습니다. 말씀은 그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말씀은 그의 심령을 회개토록 했습니다. 자신과 백성들을 말씀에 비춰 볼 때 죄악이 너무나 커서 엉엉 울었습니다. “우리 열조가 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13b)!”

이 율법 책은 요시야가 세상에 태어나기 700여 년 전에 기록된 모세 5경입니다. 그동안 많은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 율법 책에 흥미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 하나 율법 책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은 성경 없는 나날을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헬라어로 ‘케논’이라고 하는데, 이는 표준, 척도, 측량자란 뜻입니다. 성경 말씀은 모든 삶의 기준이요, 신앙생활의 표본이 됩니다. 선과 악, 구원과 심판의 척도가 됩니다. 성경 말씀은 죄를 깨닫게 하고 거듭나게 합니다. 성경 말씀은 무지를 깨닫게 하고, 믿음을 갖도록 합니다(벧전1:23, 대하34:14-33, 약1:18, 시119:130, 롬10:17). 성경은 신앙의 거울로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 없이 살았기 때문에 선악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절대적인 표준과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가치관과 정욕을 쫓아 살았습니다. 요시야가 말씀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혼이 죽었느냐 살았느냐는 겉으로 볼 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감동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감동이 있으면 나의 영혼이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메시지가 선포될 때 메시지가 들리고 감동이 있으면 나의 영혼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어도 맹송맹송하다면 나의 영혼은 잠들어 있고 죽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성경을 읽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주에 우리 선배들은 평양에서 겨울에 사경회를 한다 하면 남쪽에서는 전남 무안에서, 북쪽에서는 삭주에서까지 쌀을 지고 왔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실로 뜨거웠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지하 교회에서는 다 헤어진 성경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자 백성들은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 외쳤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메시지가 들립니까? 지금 성경을 읽고 메시지를 들어도 감동이 없다면, 졸음이 온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 말씀이 시대에 맞지 않아서일까요? 성경 말씀이 약해져서일까요? 성경 말씀이 낡은 고리타분한 책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변질되었고, 우리의 양심이 변질되었고, 우리의 생활이 변질되었고, 우리의 심령이 잠들었고,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심령이 교만하고 완악하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고 말씀을 들어도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병들고 잠들고 죽어있다면 치유되고 일깨우고 살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저와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디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죄를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심령이 애통하게 합니다. 성령은 죄를 자복하게 하고, 성령은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고, 우리의 심령을 뜨겁게 합니다.

요시야는 성경을 읽고 자기만 은혜를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는 모든 백성들을 여호와의 전에 모이도록 하고 백성들에게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23:1-3). 그런 후에 요시야는 하나님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23:3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이 말씀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훈이요, 핵심이요, 요체요, 전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워 있을 때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이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했습니다(신6:6-9).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자 세상의 좋은 것에 마음을 빼앗겨 우상을 섬기고 물질을 섬기고 쾌락을 섬겼습니다. 요시야는 이런 백성들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모든 율법을 지키도록 언약을 세웠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아멘’했습니다. 그들의 잠자던 영혼이 깨어났고, 죽은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아멘.

요시야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습니다(24-26). 23:25절을 보겠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요시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자세가 바로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가르칠 뿐만 아니라 친히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했습니다. 이는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습니다.

말씀을 온전히 준행하는 삶의 표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입니다. 마가복음 12:29-31절은 보면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키고 영접하여야 할 신앙의 근본이요, 신앙의 신조입니다. ‘다한다’는 것은 아낌없이, 남김이 없이, 자기 생명을 불태워서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곧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도록 말씀합니다.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른 것에 뺏기지 않도록 힘써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는 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 고 했습니다(잠언16:32). 한마디로 신앙생활이란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했습니다. 사랑이란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성경은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 했습니다. 이는 자발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했습니다. 사랑의 표현은 열정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말씀을 준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배려요 섬김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이웃을 섬기는 것이요 배려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이기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기고 배려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곧 행복과 기쁨의 근원입니다. 사랑은 힘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어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십자가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셋째, 요시야는 우상을 제거하고 유월절을 회복했습니다(4-20).

요시야는 말씀을 읽고 심령이 새로워지자 우상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는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그 때까지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상, 그리고 하늘의 일월성신들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들을 끌어내어 불살랐습니다. 이어 그는 우상 숭배의 제사장들을 모조리 폐하였고, 각처에 흩어져 있던 신상들을 전부 가루로 빻아서 버렸습니다. 그리고 산당의 잔재들을 모조리 없애 버렸습니다. 힌놈의 골짜기에서 자행되었던 자녀들을 불살라 바치는 몰록 숭배의 제사 행위를 말끔히 일소시켜 버렸습니다. 또 그는 태양 숭배의 도구들인 말과 수레들을 불살랐고 솔로몬의 우상 숭배의 잔재까지 모조리 없앴습니다. 나아가서 요시야는 이미 멸망한 북이스라엘까지 모든 우상을 없어버렸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사였습니다. 요시야가 우상을 철저하게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의 힘으로 인함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를 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로마서 1:17절 말씀으로 인한 힘이었습니다. 말씀은 여러분의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여러분의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고,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고, 직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시대를 살릴 수 있고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새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는 유월절을 회복했습니다(23:21-23).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출애굽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최대의 명절입니다(출12:14). 하나님은 유월절을 대대로 지키도록 명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함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때까지 지켜지다가 사사시대 이후부터는 약 700년 동안 유월절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요시야는 성전 구석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다 듣고 나서 유월절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구원의 감격,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을 되찾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요시야의 개혁은 제 2의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월절을 지킨다는 것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위해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기 때문입니다(고전5:7). 이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기쁨이 없게 됩니다. 피곤하고 피해의식에 빠지며 헛생각을 하게 되고, 두마음을 품게 됩니다. 안일해지고 옛 생활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강하라고 권면했습니다(딤후2:1).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첫 사랑,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시야의 개혁도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은 너무 거세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이 油田이라면 요시야의 개혁은 한 양동이 물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을 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에게 진노의 불길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회개하고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관심보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로 인해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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