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제 1강 시련의 인내

조회 수 3332 추천 수 0 2012.07.14 06:32:40
2011년 야고보서 1:1-18
시련과 인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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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아름다운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시련과 유혹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시련은 하나님의 훈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함이라면 유혹은 사단의 공격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인격을 파괴시켜 사단의 노예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지금 한국은 여러모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특히 남북문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청년 실업자 문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에게도 각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앞에 절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어제는 사랑하시고 오늘은 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중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 속에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는 줄 압니다. 본문에는 시련의 의미와 또 시련에 대한 자세, 그리고 유혹을 이기는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험을 만날 때 기쁘게 여겨라(2).

2절을 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가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납니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란 헬라어로 여러 가지 색깔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은 색상이 단조롭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그림을 보면 여러 가지 색으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수많은 시련과 역경과 고통이 엮어져서 우리의 생애가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풍성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빚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쓰시는데 그 재료가 바로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의 재료들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조각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체념하고 도중에 그만 두게 되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조각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련이 닥칠 때 온전히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기라는 것은 count(K.J.V.), 평가하라는 뜻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련을 만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우리는 시련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굉장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시련과 역경이 물러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불신자의 삶과 마찬가지로 온갖 종류의 시련과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고 고통과 역경이 없을 것으로 알고 믿는다면 그런 생각을 포기하십시오.

불신자들은 시련이 닥칠 때 어떻게 합니까? 시련이 닥치면 도피합니다. 잊고자 합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요즘 운명이라는 책만 내면 베스트 셀라가 됩니다. 그리고 반항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찾아오는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합니다. 바로 욥의 아내가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평안이란 환난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을 면제시켜 주는 데서 오는 것 또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환난과 시련과 역경 중에도 누릴 수 있는 평안, 상황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평안, 환경이 변질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평안을 말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환난 속에서의 승리입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을 보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고 했습니다.

환난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아니지만 성도들이 받는 환난에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욥은 많은 시련을 받았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욥2:9). 그 때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그는 환난과 시련이 인격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빛나고 아름다운 순금처럼 되어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시련 중에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련의 인내를 통해 복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욥42:10-17). 그러므로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련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둘째, 시련이 인내를 만드는 줄로 알라(3).

3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우리가 시련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4절에서 인내를 원인의 위치에 두었습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했습니다(롬5:4).

그러나 야고보는 인내를 시련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즉 시련이 주는 결과가 인내라는 것입니다. 인내는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한 부분이요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은 곳곳에 하나님의 인격을 오래 참으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로마서 2장 4절을 보면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b절에서는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인내란 헬라어로 휘포모네(ὐπομονἠ), 단순히 상황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적극적인 태도를 가리킵니다. 인내는 많은 제련을 통해 얻어지는 순금과 같습니다. 인내는 연단의 결정체입니다. 금광석이 몇 백도의 제련의 과정에서 힘들다고 인내하지 못하고 나와 버리면 순금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인내는 역경을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입니다. 인내가 있을 때 장애물이 있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실의에도 좌절하지 않고, 무시를 받을 때도 화를 내지 않고 견디게 합니다. 외적인 장애물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참고 목적지에 이르게 합니다.

셋째, 인내를 이루라(4).

4절을 보겠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을 볼 때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나는 뒷짐 지고 하나님께서 다 아셔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란 내가 혼자 하는 것도 또한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하고, 어떤 사람은 인간의 책임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릴 때 기독교 운명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인내를 통해 얻어지는

축복은 첫째는 온전하게 됩니다. 온전하다는 뜻은 성숙하다란 뜻입니다. 성숙의 척도는 인내입니다. 시련을 얼마나 인내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숙이 드러납니다.

둘째는 구비하게 됩니다. 구비하다란 뜻은 하나님 앞에 어떤 제물을 드릴 때 상처나 흠이 없는 제물을 말합니다. 인내를 통해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제물이 됩니다.

셋째는 부족함이 없게 합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인격을 말합니다. 인내는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품성을 갖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많은 시련을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애굽의 궁중에서 궁중교육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연후 하나님은 모세가 열정은 있지만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음을 아시고 모세를 광야에 던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쓰시기 위해 40년간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감정과 혈기를 죽이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독을 이기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부르심의 훈련을 하셨습니다.

그는 40년간 처가의 양똥을 치면서 묵묵히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그는 훈련을 통해 어떤 시련과 역경 중에도 인내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 빚어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를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시련을 주심으로 온전하게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시련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조각되게 합니다.

넷째, 지혜를 구하라(5-11).

이런 시련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대개 시련이 닥치면 ‘주여, 이 시련이 빨리 물러가게 하여 주십시오’ 외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지식은 분석하는 것이라면 지혜는 종합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정보를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지식을 선하게 사용하는 힘입니다.

오늘날 지식은 홍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선하게 사용하지 못해 이 시대는 각종 문제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고 있는 성경을 우리의 삶에 선하게 적용하는 지혜는 더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후히 주십니다. 여기에서 후히 주신다는 것은 풍성하게 주신다는 뜻도 있지만 주저하지 않고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건강을 구하면 건강을 주저하지 않고 주십니다. 능력을 구하면 주저하지 않고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구하면 주저하지 않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후히 주시는 것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도록 함에 있습니다. 그 이외에 다른 뜻이 없습니다.

‘꾸짖지 아니한다’는 것은 귀찮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가 도와 달라고 하면 몇 번은 도와줄 수 있지만 자꾸 도와 달라고 하면 귀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달라고 졸라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해야 합니까?

6-8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한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2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의심은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데 원수입니다. 믿음으로 큰일을 한 사람들은 모두 의심과 싸워서 승리한 분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의심이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저울질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양다리 걸친 삶입니다. 그러니 집중적으로 끈질기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자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요동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주께 무엇이든지 얻기를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정이 긍정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기도가 안 됩니다.

9-11절을 보겠습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신자가 된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반면에 부한 형제는 낮아진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는 사회적인 명성이나 명예나 미모, 그리고 재산은 뜨거운 해를 만난 풀의 꽃과 같이 시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다섯째, 시험을 참아라(12-18).

12절을 보겠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살다 보면 각종 시험을 만납니다. 이 때 참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tempted, 사단의 미혹을 말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니라.”

시련은 밖에서 오는 것이라면 미혹은 안에서 일어납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시험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시련의 궁극적인 목적이 연단이라면 사단의 유혹의 목적은 파괴입니다. 따라서 사단의 시험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26:41a).”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유혹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시련을 당할 때 잘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회의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로 죄의 결과를 바라보아라.

14,15절을 보십시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이 미혹받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미혹이란 낚시꾼이 고기를 잡을 때 미끼를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미끼는 보기에 아름답고 좋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것을 던져서 꾑니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나타납니다(고후11:14).

사단이 에덴에서 아담을 유혹할 때 어떻게 유혹했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침이 ‘꼴깍’ 삼켜지도록 유혹했습니다. 롯도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습니까?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이 아름다운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는 음란과 광란의 도시였습니다.

다윗이 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했습니까? 한 여인의 목욕하는 심히 아름다운 것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석양노을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다윗의 마음을 반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죄악의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가를 보여 주지 않고 쾌락만을 보여 줍니다. 사단은 쉽고 넓은 길을 가도록 미혹합니다. 여기에 사단의 덫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유혹이 있을 때 죄의 결과의 비참함을 상기해야 합니다.

죄는 우리에게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습니다. 죄에도 낙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죄의 낙이라 했습니다(히11:25). 모험, 스릴, 서스펜스가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담배를 몰래 피우는 것은 몰래 피우는 스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죄의 낙은 잠시 뿐, 죄의 결과는 사망을 가져옵니다.

모세는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여기에 바로 모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가 가져오는 궁극적인 결과가 사망이라는 것을 알면 결코 미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욕심과 건전한 욕망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먹고 싶은 욕망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탐식은 죄입니다. 잠을 자고 싶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게으름이 죄입니다. 젊은 청년이 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집착하고 소유하고자 하면 죄가 됩니다. 건전한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금욕주의입니다. 성경은 금욕주의를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건전한 욕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욕망을 성경의 원리로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욕망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욕망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사를 바라보아라.

17,18절을 보겠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신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탓을 합니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 반성문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시련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알 때 유혹에 말려들지 않습니다.

사단이 주는 것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최후의 승리요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욕심은 상처와 아픔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한 번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십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욕심의 노예가 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사를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사는 아름답고 귀합니다. 이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원하십니다. 모든 수확된 첫 곡식이 하나님께 바쳐지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첫 열매가 됩니다.

믿음은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인내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성품 중의 하나입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시련을 통해 인내의 열매를 맺어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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