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제6강믿음과복종

조회 수 3199 추천 수 0 2012.07.14 06:33:43
야고보서제 6강 4:1-10, 요절 4:7

믿음과 복종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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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숙한 인격, 성숙한 크리스천이란 단어를 많이 씁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성숙은 외적인 성장과 내적인 발달이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성숙하다, 미성숙하다는 말은 성장과 발달이 균형을 이루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이 외적으로는 성장해서 대학생인데 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유치하다면 미성숙한 대학생입니다. 크리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경력은 몇 십 년인 데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어린이처럼 유치한 말을 하고 유치한 생각을 하고 유치한 행동을 한다면 이는 미성숙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면 누가 성숙한 크리스천입니까? 야고보서 제 1장에서는 시련이 있을 때 인내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는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사람이 성숙한 크리스천입니다(약 2장). 야고보서 3장에서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성숙하다고 말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사상의 표현이요 행동하게 하는 동인입니다. 그러므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지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에서 성숙한 크리스천은 첫째로 다툼이 없어야 하고, 둘째로 남을 비방하지 말아야 하며, 셋째로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툼 대신 겸손하고, 비방 대신 서로 사랑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대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성숙한 크리스천입니다.

첫째, 다툼 대신에 겸손하라(1-6)

3장 18절을 보면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4장 1절을 보면 그들은 다투고 싸웠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나는 것이 아니냐?”

싸움은 전쟁 상태를 말하고, 다툼은 개인적인 논쟁을 말합니다. 세상은 전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어느 역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인류 역사에 큰 전쟁만 14,531번이나 일어났다고 합니다. 전쟁이 1년에 평균 2.6회씩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반목, 시기, 질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다툼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야고보서 4장 1후절을 보면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모든 싸움은 정욕으로부터 난다는 것입니다. 정욕은 영어로 desire, lust로 욕망, 관능적 탐욕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도 전쟁과 다툼이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왜 중동지방이 화약고가 됐습니까? 석유를 움켜쥐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미국이 세계경찰국가로 자처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쟁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계 평화를 위해 그럴까요? 뒤에는 이권이라는 탐욕 때문입니다. 루시안은 “인간에게 닥쳐오는 모든 악, 즉 전쟁과 학살은 욕망으로부터 솟아난다” 고 했습니다. 욕망은 가정이나 사회가 국가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시세로는 “개인 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망쳐버리는 것은 만족을 모르는 욕망이며 그것은 국가마저도 파멸시킨다”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이 전세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습니다. 9월이면 전세철이 시작됩니다. 전세철이 되면 집 없는 사람의 서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인천 개척하기 시작한 82년부터 92년까지 10년 동안 14번을 이사를 했습니다. 어떤 때는 1년에 3번을 이사한 적이 있습니다.

왜 전세 값이 미친듯이 오릅니까? 가진 자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주택 보급률이 101.9%입니다. 그런데 자가 보유율은 61.3%입니다. 지금 한국에 11채 이상의 아파트 가진 사람이 9,165명, 6-10채가 14,081명, 5채가 5,896명, 4채가 9,217명, 3채가 16,061명, 2채가 70,242명입니다. 저는 2채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3채 이상은 지나친 탐욕이고, 4채 이상은 미친 탐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천민자본주의, 탐욕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반드시 자신도 망하고 가정도 파멸하고 국가도 파멸에 이릅니다. 이것은 역사가 말해 줍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에게나 미친 욕망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야고보서 4장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나는 것이 아니냐?” 다툼과 싸움의 반대는 화평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고 양보합니다. ‘아우 먼저, 형님 먼저’ 양보합니다. 그리고 솔선수범하고 자기를 희생합니다. 마음이 대양처럼 넓고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것은 바로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을 화평케 하시고자 함입니다(엡2:14).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평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와 화목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5:18,19). 그런데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은 서로 싸우고 다투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화평이 없어 의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지체란 교회 내의 성도들(members: KJV)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의 신체 각 부분을 뜻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속사람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각 지체는 낡아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합니다.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릅니다. 눈은 사시로 변합니다. 각 지체는 속사람과 싸웁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로마서 7장 22,23절에서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내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옛 생활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죄의 낙을 사모하게 합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세상의 쾌락, 탐욕, 정욕이 나를 지배하게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도록 미혹합니다. 당시에는 죽을 지경이여서 기억하고 쉽지 않았던 일들을 좋은 추억으로 회고하게 합니다. 잊었다 싶었던 과거가 어느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노출시킵니다.

잠재의식 속에 깊이 숨어 있던 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좌우하고, 운명을 좌우하게 만듭니다. 이는 마치 우유를 먹여 키운 호랑이 새끼와 같습니다. 호랑이 새끼를 태어나자마자 곧 우유를 먹여 키우면 그 호랑이 새끼는 순하게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동족인 호랑이를 만나게 되면 그 순간 사나운 호랑이로 돌변합니다. 이와 같이 죽지 않은 낡은 지체는 어느 날 순간적으로 본성이 드러나 표독스러운 모습으로 변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지체는 무의식적으로 과거로 복귀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의식 가운데 돌아가면 자제하고 조절할 수 있지만 무의식은 우리가 control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프로이드는 의식이 1/3이고 무의식이 2/3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이는 의식의 세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십자가에 죽여야 합니다.

지체를 죽이면 나의 생명의 주체가 바뀌게 됩니다. 전에는 자기가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생각과 생활과 나의 모든 것을 다스려 주십니다. 내 마음에 기쁨과 활력과 소원을 주십니다. 과거에는 죄악의 본성이 자랐지만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믿음, 사랑, 겸손, 온유, 신실, 소망입니다. 내 지체를 죽이면 이런 예수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조각되게 됩니다. 가치관과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이 때 다툼이 없고, 싸움이 없게 되어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의 특징은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더 많은 갈증과 부족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는 마치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퍼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옛 말에 벼 99섬 한 사람이 100섬 채우려고 한 섬 한 사람에게 달라고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탐욕을 더 채우기 위해 피가 터지도록 치고받습니다. 탐욕을 체위기 위해 남의 약점을 찾고 험담합니다. 있는 말 없는 말을 만들어내어 인격을 손상시키고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약점과 실수를 찾아내어 공격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탐욕스러움만이 드러납니다.

사람이 탐욕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설령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응답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응답하신다 하실지라도 그 후는 아주 비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기를 먹고 싶다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시어 입에서 고기 냄새가 나도록 먹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배가 불러서 살이 돼지처럼 쪘지만 그들의 영혼은 오히려 피폐하여 주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탐욕은 우리의 기도를 막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앞서 탐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시편 66장 18절을 보면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죠지 뮬러는 이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생애에 5만 번 이상 기도를 응답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는 회개를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가 잘 되지 않으면 나의 마음과 삶의 상태를 하나님 앞에서 진단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시기심, 미움, 원망, 불평, 이기심, 탐욕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십계명 중에 탐욕하지 말라는 계명은 마지막 계명이지만 모든 계명을 어기게 하는 동인이 됩니다.

왜 사람이 거짓말합니까? 왜 사람이 도둑질합니까? 왜 사람이 간음합니까? 이 모두가 탐욕 때문입니다. 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충신 우리아를 죽였습니까? 이는 탐욕 때문입니다. 그의 탐욕이 간음하도록 했습니다. 그의 탐욕이 거짓말 하도록 했습니다. 그의 탐욕이 살인하게 했습니다. 탐욕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지배합니다. 내가 하루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탐욕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깨어 있지 않으면 잠 잘 때에도 탐욕의 꿈을 꾸게 합니다. 욕망은 행동의 동기가 되는 감정을 싹트게 합니다. 욕망의 싹은 그 욕망을 손에 넣기 위하여 별별 상상력을 동원하여 계획을 짭니다. 그렇게 되면 가슴속에서 불타게 되고, 결국 행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범죄의 원인은 탐욕, 욕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욕망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약 1:15).

모든 탐욕은 나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잘못된 관계 때문입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거룩한 신부가 되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상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습니다(고후6:14-16).

간음한 여인이란 결혼한 부인이 옛 애인을 만나는 여인을 일컫습니다. 우리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면 영적으로 간음한 여인이 됩니다. 세상과 벗할 때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벗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롯은 세상과 짝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복의 샘이 되었지만 롯은 저주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세상과 벗한 사람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을 본받게 됩니다. 세상을 본받게 될 때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과 함께 정죄 받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2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야고보서는 영적인 음행을 경계합니다. 하나님만을 순결하게 섬기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벗할 때 육신적인 생각은 끊임없이 성령님과 갈등하게 합니다.

그래서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성령님은 우리를 영적인 평안과 거룩함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패한 본성을 쫓으려는 욕망이 있을 때 성령님께서 시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시샘입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교만한 자는 우월감에 빠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단의 본성은 교만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속성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하)고 하셨습니다. 잠언 6장 16-19절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중에 제일 처음에 오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벧전 5:6). 하나님은 전쟁을 하듯이 교만한 자를 대항하십니다. 반면에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잠3:34).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족하게 됩니다. 바울은 은혜에 족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둘째, 하나님께 복종해야 다툼을 이길 수 있습니다(7-10)

우리가 어떻게 탐욕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복종해야 합니다. 7하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복종은 군대 용어로 포로가 무조건 항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조건 교만을 마음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둘째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7하절을 보겠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우리는 마귀를 필요 이상으로 겁냅니다. 그러나 마귀는 겁낼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로마서 6장 6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우리의 옛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온전히, 영원히 새 생명이 되었습니다(히 9:11-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이유는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입니다. ‘멸하다’는 영어로 destroy, 무력화시키다, 효력이 없게 하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무력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도망갑니다. 마귀는 종이 호랑에 불과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가까이 하라’는 뜻은 대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쓰는 단어입니다(출19:22). 대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정결케 하고 나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돌격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할 때 우리를 막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는 손을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손을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서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손을 씻는 것이 외적인 행동이라면 마음을 성결하게 하는 것은 내적 성결을 뜻합니다. 시편 24장 3,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넷째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슬퍼한다. 애통한다, 울지어다는 모두 통회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통회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마 5:4).

다섯째로 주 앞에서 낮춰야 합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주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은 자신의 영적인 가난함에 대한 표현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탐욕은 모든 다툼과 싸움의 원흉입니다. 그리고 모든 죄를 짓은 동인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탐욕을 십자가에 날마다 못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친구 되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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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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