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이사야서 6:1-13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6:8).

본문은 네 가지 극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첫째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만나 주시는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만나주시고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사건입니다. 세 번째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네 번째는 만군의 여호와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건입니다.

본문을 통해 이사야를 부르셔서 세상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크신 구속역사에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이로 인해 이 시대에 은혜의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에디오피아 선교사로 파송받으시는 이억 섭목사님과 사모님께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6:1-4)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6:1).

웃시야 왕은 유다의 10대 왕으로 16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52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웃시야란 여호와는 강하시다란 뜻입니다. 그는 그의 이름대로 유다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중농정책을 써서 식량 문제를 해결하여 자급자족하도록 했습니다. 성을 건축하고 방패와 갑옷과 활 등 신무기를 만들어 국방을 튼튼히 하여 외세의 침략을 막았습니다. 더 나아가 강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기도 했습니다(대하 26:1-15).

외적으로 볼 때 유다는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유다는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웃시야왕이 성전에서 분향하다가 나병이 든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왕은 아무리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할지라도 성전에 가면 제사장들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많은 충신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성전에 나가 분향했습니다. 분향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는 교만하여 자기 위치를 이탈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게 됩니다. 천사장이 사탄으로 전락한 것도 자기 위치를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건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첫 사람 아담이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 되고자 하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에덴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도 교만하여 못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16:18).

반면에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했습니다(15:33, 18:12). 그래서 성경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습니다(벧전 5:5). 사람이 특히 무슨 일이 잘 된다 싶을 때에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렵고 힘들 때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무엇이 되는 듯싶으면 교만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잘 지켜야 합니다.

이제 웃시야 왕이 죽자 나라는 점점 기울어갔습니다. 열강들은 유다를 넘보기 시작했습니다. 북쪽에서는 앗수르가 고개를 들고 동쪽에서는 신흥제국 바벨론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애굽이 호시탐탐 유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번영과 영광은 웃시야 왕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대는 한마디로 흑암과 고난이요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웠습니다(5:30).

이사야는 그 시대를 보고 절망하여 탄식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영원히 버리셨단 말인가?” 사람들은 대개 세상이 어둡고 장래가 불안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으면 술을 마시고 점쟁이와 신접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절망의 때에 만군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에 이사야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우리 또한 무슨 일이 잘 안되고 힘들고 절망적일 때 만군의 여호와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가 기도할 때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보좌는 왕이 앉는 자리로 통치권을 뜻합니다. ‘높이 들린 보좌는 그 통치와 왕권의 존귀함과 영광을 말합니다.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뜻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스랍들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었습니다. 스랍들은 여섯 날개를 가졌는데, 그 둘은 자신의 얼굴을 가렸고, 그 둘은 발을 가렸고, 둘은 날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개의 날개로 날면서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6:4).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6:3).

한쪽에서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화답했습니다. 요한은 이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4:8).

그들이 얼마나 찬양을 열심히 했는지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연기가 충만했습니다(6:4). ‘연기가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19:18). 이처럼 찬양은 예배당의 문지방이 들썩들썩할 때까지, 하나님이 임재하시기까지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찬양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붕어 입처럼 입만 벌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사야에게 이런 이상을 보여 주셨을까요? 지금까지 이사야는 웃시야가 통치하고, 세계는 열강들이 다스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약소국인 유다를 바라볼 때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한 것이 아니라 실업자가 온 땅에 충만하고, 바탄과 원망이 충만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찬양이 나올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랍들은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이는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세계 만민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하신 계획대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개인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되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다는 뜻은 분리되었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과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천사들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해 계십니다. ‘거룩하다란 뜻은 도덕적으로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도덕적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정결함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날마다 내주하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보배로운 피로 주홍같고 진홍같은 죄를 눈과 같이 양털 같이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2.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6:5).

이사야는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뵙자 압도당하여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바라보니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6:5).

지금까지 이사야는 그래도 자신은 이 시대에 의식이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자기 자신의 입술이 부정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자기 자신이 잘난 것같이 생각되고, 거룩한 것 같이 생각되고, 아주 괜찮은 사람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가를 알게 됩니다. 이게 참된 자기 발견입니다.

오늘 선교사로 파송 받으시는 이 목사님은 인간적으로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목사님은 사모님과 결혼하여 40년 사는 동안 한 번도 싸운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동안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우월의식으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골몰히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습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며, 중간자이다라고 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한계내의 존재라고 했고, 샤르트르는 인간은 소욕의 이리(wolf)라고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토인비는 인간은 무한히 잔악해질 수 있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마틴 부버는 인간은 대화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일부분을 얘기할 뿐이지 인간의 참된 실존을 말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했습니다(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3:23). 이것이 인간에 대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우리가 나와 너 사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면 좀 의롭고 거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께 나갈 때 인간은 모두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에 시몬 베드로가 나옵니다. 그는 성실하고 또 열심히 일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룩하신 예수님을 뵈었을 때 죄인으로서의 자기모습을 발견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5:8).

이사야는 지금까지 시대 문제를 놓고 고민했지만 이제 자신의 죄 문제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입술이 부정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입으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 시대 지도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입만 열면 남을 비판하고 상처주고, 그리고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한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이는 이사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성경은 세치 밖에 안되는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시인은 말 한마디란 주제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파괴한다. 쓰다란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끈다. 반면에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하게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한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 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안겨준다.”

또 성경은 말의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3:2). 말은 인격과 사상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격에 따라서 말의 표현도 달라집니다. 은혜로운 사람들은 은혜로운 말을 합니다. 복수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말의 표현이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용서와 사랑이 있는 사람들은 용서와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하려면 인격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백성이 돼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 나라의 천상의 언어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언어가 달라져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은혜가 필요한 사람에게 은혜를, 믿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6:6-7).

이사야는 자기 죄를 발견하고 마음으로 회개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스랍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입술에 대며 말했습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6:7).

핀 숯은 죄를 소멸하고 태우는 성령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불로 이사야의 악과 죄를 태우시고 정결하게 해주셨습니다. ‘입술에 핀 숯을 대었다는 것은 입만을 구원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모든 인격을 구원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히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먼저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능력이 많고, 많은 것을 안다 할지라도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그 능력을 가지고 죄 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죄가 있으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능력은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이 용서의 사랑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지혜롭고, 약해 보이지만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아야 시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안일, 시기심, 정욕, 미움, 질투, 불신, 원망, 부정적인 생각, 악한 생각 등의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4. 내가 여기 있나이다(6:8).

이사야는 죄 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바로 앞에 두고 간절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6:8).

이는 이사야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란 성 3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힘들다 할지라고 시대마다 사람을 부르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가득한 시대에 노아를 부르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가 가득하던 시대에 아브라함 한사람을 부르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말씀이 없어 자기 본성대로 사는 사사 시대에 기드온을 부르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시대에 이사야를 부르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 말씀은 죄로 죽어가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세상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선교사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꾼을 찾으실 때 일방적으로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격적입니다. 세상에는 구원할 사람은 많은 데 이들을 도울 사명자가 적습니다. 추수할 곡식은 희어져 있는데 거둘 일군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9:37-38).

이 때 이사야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6:8).

이사야는 본래 왕족 출신입니다. 이사야의 아버지는 웃시야 왕과 형제요,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과 친구입니다. 그는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심을 순종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기 의나 불의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가정형편과 장래 등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악 된 시대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했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그의 순종은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는 결단이요, 사명자로 살고자 하는 위대한 결단입니다. 그가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캠퍼스로 갈꼬?” “누가 우리를 위하여 세상으로 갈꼬?” 이 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어 주소서.”

이억섭 목사님은 미국의 명문대학인 워싱턴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학위만 받으면 행복의 여신이 반겨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공부를 마치고 학위증서 한 장을 받아드는 순간 ,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교회를 찾아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중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고 주님을 위해 살고자하는 인생의 목적을 갖게 되셨습니다. 인하대학교 CMI 지도교수와 교직자 신우회장으로 인하대 복음화를 위해 기도로 섬기셨습니다.

이제 은퇴하시고 자녀들과 재롱을 떠는 손주들이 있는 미국에 가서 아기자기하게 사실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지 중의 오지인 에디오피아 선교사로 나가십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오지 선교사로 나가게 했을까요?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애타게 찾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자신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올해 68세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제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지요, 저기 젊은 사람을 보내시지요하고 못들은 척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마음에 아,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영접하고 215일에 출국하십니다.

이사야서 69-10절은 이사야가 전해야 할 메시지 내용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되 귀에 간지러운 말만 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은혜, 축복 등의 메시지만 즐겨 듣습니다. 회개의 메시지나 십자가의 메시지는 귀를 닫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습니다. 이사야는 어느 때까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성읍이 황폐하여 주민이 멀리 옮길 때까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심판은 예외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겨놓으십니다.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입니다. 이 거룩한 씨는 하나님께서 남겨 놓은 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환난과 연단 가운데서도 중심을 지킨 정금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소망의 싹들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 역사합니다.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할지라도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 7,000명이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12명의 예수님이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시는 거룩한 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대마다 남은 자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역사는 남은 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민을 통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 일꾼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세계 만민 구원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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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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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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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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