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님이시다.

조회 수 2473 추천 수 0 2012.07.11 06:17:05
마가복음 12:28-34(요절 12:29)

하나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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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수학여행 대신 장애인을 손수 돌본 기특한 여중생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경기도 안양 서여중 2학년 372명은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2박3일 일정으로 꽃동네의 사랑을 통한 행복 찾기 연수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장애인들의 병수발을 들고 함께 어울리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학교 측은 관광에만 초점이 맞춰진 판에 박힌 수학여행에서 벗어나 이웃 사랑을 길러주자는 뜻으로 꽃동네 방문을 계획했습니다. 수학여행대신 이웃 사랑을 체험한 안솔빈 학생은 “눈도 잘 안 보이고 거기다가 중풍으로 몸 절반이 마비된 할아버지께 식사를 떠드리고 책도 읽어 드렸는데 떠날 시간이 되자 할아버지께서 다음에 또 오라”고 어렵에 말씀하실 때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정소현 학생은 두 팔이 없는 어린이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봉사는 주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받는 것이 더 많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수학여행에 가서 한참 놀고 싶은 중학교 2학년생들의 이웃 사랑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없을 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현재 무엇을 사랑합니까? 돈입니까? 명예와 권세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이웃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느 정도 사랑합니까? 이웃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사랑합니까? 어느 오늘 말씀을 통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이스라엘아, 들으라(28,29).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28)?” 서기관은 당시 성경 선생 중 한 사람으로 성경을 양피에 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암송하고 연구했습니다. 특히 계명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10계명과 613개의 규례가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이런 많은 법 조항 중에 어느 조항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특히 613개의 규례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생활이요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삶의 방향을 잡을 때나 어떤 가치를 정할 때에 율법을 따라 정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가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은 곧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하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첫째가 되는 것을 놓칠 때에 상대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혼돈과 공허와 어둔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첫째 되는 계명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첫째 되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날그날 기분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싸우고, 별것 아닌 것에 마음과 시간과 정열을 쏟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중요하고 첫째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은 자기 꿈을 이루고, 자기만족을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잔재미를 좇아 살아갑니다. 어떤 분은 첫째가 공부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결혼과 가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학문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학문과 예술이 첫째가 되고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는 것이 첫째라고 합니다. 돈 버는 것이 첫째라며 돈 버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시간과 물질과 자기의 삶을 투자했는데 그것이 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인생을 허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유일한 주님시라는 것입니다. 2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40년간의 광야 훈련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들으라’는 히브리어로 ‘쉐마’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키고 영접하여야 할 신앙의 근본이요, 신앙의 신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이 유일한 주님이심을 상기시켰을까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각종 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신은 농경신인 ‘바알’과 여신인 ‘아세라 목상’, 그리고 풍요의 여신인 ‘아스다롯’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곧 그들을 따라 그들의 신들을 섬길 우려가 있음을 아셨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런 신들을 섬기면서도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의식은 화려한 축제 행사였습니다. 그들은 종교기간 동안 먹고 마시고 괴성을 부르고 춤추는 글자 그대로 육신의 축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들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었고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예배의식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양을 잡아 피를 제단에 드리고 죄를 회개하는 예배의식이 준엄했습니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의 신을 섬기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주님이심을 신앙의 근본 원리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하면서 힘들 때가 있는데 그것은 믿는 자보다 믿지 않는 자들이 더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놀면서 승진도 빠르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갈등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역사적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인류를 그 주권 속에서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천지가 변한다 할지라도 변개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이십니다. 아멘.

사람들은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물질이 나를 사람답게 하, 종교와 이념이 나를 위대하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북한을 한번 보세요. 북한은 김일성과 그 주체사상을 섬깁니다. 이념이 그들의 삶의 첫째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헐고 그곳에다 주체탑과 그 탑 위에 별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이 때 그들은 어떠합니까? 가난과 기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어떠합니까? 우리나라에 가톨릭 신도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종교 세력입니다. 가톨릭을 국교로 삼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가난과 질병과 쿠데타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중남미가 그러하고 필리핀이 그러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가톨릭은 하나님이 유일한 주님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모마리아도 믿고, 각종 성인들을 숭배합니다. 유럽의 성당을 가보면 성당 안에 각 방들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열두 사도들을 포함하여 각 성인들의 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가 염주를 돌리며 기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포용성이라는 미명아래 모든 것을 담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와 함께 예불도 드리고, 절에 가서 참배도 합니다. 신앙은 도그마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절대적인 도그마를 버렸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신본주의 신앙이 아니라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여기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남한은 포스트 모던이즘의 영향으로 인한 다원주의는 절대적인 신앙, 유일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안티 크리스천들은 인터넷으로 책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 서점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영향으로 인한 맘몬과 미의 여신이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각종 우상을 숭배할 때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상을 섬기는 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미국역사가 200년 좀 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천년 로마 왕국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이는 미국의 조상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대륙에 도착하여 혹독한 추위와 더위, 질병과 전염병, 그리고 맹수와 싸우며 마태복음 5장 14절을 기초로 하나님 왕국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보다 예배당을 먼저 지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보다 친교실과 교육관을 먼저 세웠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넘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한 나라 뿐만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과 쾌락을 우상으로 섬기는 가정은 반드시 비극으로 끝납니다.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가정은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주 곧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니라(The Lord is one. The Lord is our God.).” 하나님이 유일한 주이심을 믿고 사는 것이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둘째, 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30).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하라는 말씀이 네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다하다’는 아낌없이, 남김없이, 자기 생명을 불태워서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일부분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Love is blind)”라는 말처럼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은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물질에 마음을 두면 물질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께 마음을 두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32절은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는 열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신앙생활이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발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또 성경은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열정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교회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내 몸으로 사랑하고 헌신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사랑은 예배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은 말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경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는 10살 때에 벽돌공장에서 일하면서 1년 6개월의 일당을 모아서 성경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꿀 송이보다 더 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주야로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였습니다. 새벽을 깨어 성경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말씀을 사랑했습니다(시42:1). 그는 눈이 쇠하기까지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은 양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양들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성경에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실 때였습니다. 그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드는 인도 지방이나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향나무의 뿌리에서 추출되는 매우 비싼 향유입니다. 향유 한 옥합은 300데나리온으로, 약 3000만원이나 되는 거액입니다. 당시 옥합은 여인들의 결혼 지참금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한푼 두푼 돈을 모아 향유를 한 방울 두 방울 사서 옥합에 담았습니다. 향유 속에는 여인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진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눈물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옥합은 여인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이 소중하고 값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이 옥합을 깨어 한 방울도 향유도 남기지 않고 예수님의 머리에 다 쏟아 부어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식사를 하시다가 갑자기 향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여인의 모습을 보고 물질을 허비했다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준비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막14:8). 그녀는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도 전해지리라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님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선배님들이 성경말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외국의 선교사님들이 우리 선배님들을 일컬어 Bible lover, Bible Christianity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리고 권서라고 해서 성경을 팔라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경을 팔라 다녔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권서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한국을 이만큼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성경을 얼마나 읽고 묵상합니까? 교회를 사랑합니까?

한국 교회는 90년대 들어와서 하나님 사랑보다 자기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를 사랑하기보다 안일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희생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축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도 봉사하고 섬기기 위해 오는 것보다 섬김을 받기 위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사랑보다 자기 사랑, 하나님 중심 보다 자기중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중심은 아담 중심입니다. 아담 중심은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 사랑은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 원리대로 살아갈 때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중심은 생명입니다. 하나님 중심은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은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삶이요,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닌 희생의 삶이요, 받는 것보다 주는 삶이요, 시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이 아닌 축복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joyful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JOY’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할 때 임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셋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31).

둘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이웃 사랑입니다. 31절을 읽겠습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왜 눈이 옆에 있는지 아십니까? 옆을 보라고 눈이 옆에 있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경쟁의 대상으로 봅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들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요 교제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이웃을 어느 정도 사랑해야 됩니까?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몸을 대단히 사랑하고 무척 아낍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우리는 몸을 가꾸는데 열심을 다합니다. 점도 빼고 성형수술도 다이어트도 합니다. 이처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건강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웃은 내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웃 사랑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을 읽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절대적인 사랑이요, 진리에 기초한 사랑이요, 구속의 은혜에 기초한 거룩한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덧입을 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셨습니다(요13:35). 이웃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양방통행입니다. 이웃 사랑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사로 사랑하되 먼저 내가 이니시어티브를 가지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막힌 담이 헐리고, 약점을 품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 사랑할 때에 삭막한 우리의 내면과 교회와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과 사회가 새롭게 변화됩니다.

오늘날 심각한 문제는 이웃 사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낍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13:10). 그러면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32,33).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유일한 주로 믿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말씀 사랑이요, 교회 사랑이요, 이웃 사랑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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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