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8:1-29, 29:1-24, 30:1-33, 31:1-13

구원을 얻는 길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본문은 에브라임과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특히 본문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국제정세는 앗수르가 세계를 재패하고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남진하여 남유다를 침략하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남유다는 이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였고, 애굽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자 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지도자들이 교만의 면류관을 쓰고, 술에 취해 비틀거렸습니다. 그들은 술에 취해 불의하게 판결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에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길이 무엇입니까?

1.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 진저(28:1-13)

이사야서 281-6절은 북이스라엘과 사마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28:1). 북이스라엘은 야곱의 열지파로 구성된 나라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였습니다. 크고 강할수록 연약한 사람들을 돕고 섬겨야 합니다. 강자는 약자에 대해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연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은 쿠테타를 일으켜 남북을 분열시켰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바알을 섬겼으며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북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예배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애굽에서 우리를 구원한 신이라며 섬기게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교만한 면류관이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성은 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성은 기름진 골짜기의 꼭대기에 세운 도시로 비옥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부유했습니다. 부유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부유하게 될 때 사치와 방탕과 방종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을 가지고 사치하고 향락에 빠져 방탕과 방종으로 흘러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281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가 두 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사치와 방종과 방탕에 빠지고 술에 취한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화가 임했을 때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사마리아성이 쇠잔해가는 꽃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28:2).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힘 있는 앗수르로 하여금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의 넘침 같이 교만의 면류관을 땅에 던지게 하시고, 술에 취하던 교만한 면류관을 발로 밟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28:3).

그리고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처음 익은 무화과를 보는 자가 얼른 따서 먹는 것처럼 된다고 했습니다(28:4). 무화과는 8-10월에 수확하는데, 6월 쯤에 숙성되어 나오는 무화과가 있습니다. 이 무화과는 희귀하고 또 맛이 있어서 보는 사람이 얼른 따서 먹었습니다(24:2, 9:10, 7:1 3:12). 여기에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앗수르는 기름진 사마리아 도성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앗수르는 B.C. 721년에 사마리아를 공략하고, B.C. 722년에는 사마리아성을 초토화시켜 멸망시켰습니다(왕하 18:9-10). 그후로 북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만과 방종과 방탕, 그리고 사치와 술취함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알게 됩니다. 한국은 알콜 소비량이 12.31리터로 아시아에서 1, 세계로는 11위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독주를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술문화가 저급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대학생들은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지성과 낭만이 있어야 할 축제가 주점문화로 전락했습니다. 여학생들은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품위를 잃어버리고 술에 취해 카트에 끌려가고 남학생에게 업혀갑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눈앞에 왔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중에도 남은 귀한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28:5).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고 아름다운 화관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날에 재판석에 앉은 자들에게 판결하는 영이 되셨습니다.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 힘이 되셨습니다(28:6).

사마리아성은 부와 권력, 사치와 술취함이 그들의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교만과 술취함의 저질스러운 문화에서 남은 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면류관과 화관을 나타내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족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화로운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면류관과 화관을 드러내어 캠퍼스와 그리고 직장의 저질스러운 술문화와 쾌락문화를 기독교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유다 사람들 또한 에브라임 사람들 못지않게 독주를 마셨습니다(28:7). 그들은 옆걸음질하고 또 갈지자() 걸음을 걸을 만큼 술에 빠져있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정확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공평과 정의롭게 재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술 취해 죄 없는 자를 죄 있는 자로 판결하고, 죄 있는 자를 죄 없는 자로 판결했습니다. 흰 것을 검다하고, 검은 것을 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도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으로 가득했고 깨끗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28:8). 그 뿐입니까? 이사야서 289절을 보면 그들은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감히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감히 누구에게 하나님의 도를 깨닫게 하려는가? 그런 것들은 모두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나 가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듣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조롱했습니다(28:10).

창세기 1914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롯의 사위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도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 때 그들은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조롱하는 자들의 말로는 이처럼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말씀을 경홀히 여길 때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대하리라고 하셨습니다(28:11). 이는 앗수르로 하여금 그들을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2812-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빈정댄 그 빈정댐으로 심판받게 됩니다. 그때 뒤로 넘어져 부러지게 되고 걸리며 잡히게 됩니다. 유다는 이 말씀대로 아홉 번에 걸쳐 침략을 받았습니다.

2.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28:14-29)

이사야서 2814-16절을 보면 하나님은 거짓과 허위를 기초로 삼은 건물과 시온의 돌을 기초로 삼은 건물을 비교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허위아래 숨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을 때 애굽은 거짓의 피난처요, 허위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시온에 한 돌을 두어 기초를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이 기촛돌은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입니다. ‘시험한 돌이란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을 수 있는 검증된 돌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촛돌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입니다.

집을 짓는데 기촛돌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촛돌의 크기에 따라서 그 건물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 돌은 길이가 11m이고, 그 무게는 무려 100ton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웅장한 성전이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기촛돌이 튼튼하냐 튼튼하지 않느냐는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환난과 재난의 때에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홍수가 나고 비바람이 칠 때 기초가 튼튼한 집은 끄떡하지 않고, 기초가 약한 집은 금새 무너져 없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환난과 재앙의 때에 쉽게 좌절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기초가 튼튼하면 어떤 재난과 역경과 환난의 때에도 굴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재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히브리 사상과 율법에 능통했습니다(22:3). 그는 동서학문을 두루 섭렵한 사상가요,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한 때 그는 율법과 사상에다가 인생의 기촛돌을 놓고자 했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혈기가 가득했습니다. 내면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죄의식과 정죄와 죽음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인생의 기촛돌을 놓았을 때 하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거짓소망에서 참된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0-1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도 다시 닦을 수 없는 유일한 터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4:11-12).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14: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죄와 사망 권세를 완전히 파하신 유일한 신앙의 기촛돌이 되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다 인생의 기초를 놓고 있습니까? 철학이나 사상 위에 집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 위에다 집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이상 위에다가 집을 지을 수 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위에다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분들은 결혼이란 이상 위에다 기초를 놓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정이나 칭찬 위에 기초를 놓을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와 같이 인간 위에 기초를 놓으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과 명예와 권세가 튼튼한 인생의 기촛돌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국을 우리를 확실하게 안전보장을 책임져 줄 나라로 생각합니다. 이런 꿈을 깨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우리의 기촛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기만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언젠가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이런 것에 기초를 놓은 분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이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기초석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기초를 놓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촛돌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불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이를 일컬어 개인 신앙이라고 합니다. 개인 신앙이 있을 때 세상이 변하고 천지가 변해도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의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환난과 극한 시련 중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불심판을 받을 때도 남게 됩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아서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고 물이 그 숨는 곳을 넘치게 하십니다(28:17).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게 됩니다.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 그것에 밟히게 됩니다. 두려움과 침상이 짧아 능히 몸을 펴지 못하고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것처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28:22). 하나님은 오만과 교만을 제일 미워하십니다.

이사야서 2823-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가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사랑과 은혜로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안 유다 백성들은 만군의 여호와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28:29).

3. 돌이켜 잠잠하고 신뢰하라(30:1-17).

이사야서 301-5절은 유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앗수르의 침략을 받자 유다는 애굽의 그늘에 피하고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30:1-2). 하나님은 수차 강대국 애굽을 의지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애굽을 더 의지했습니다. 애굽에 가기만 하면 완전한 피난처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게 됩니다(30:3-7).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유대인은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고 서판에 기록하고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때 그들은 이사야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30:10).

그들은 참견하지 말라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의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가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에 간지러운 아첨하는 말을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한국의 초기와 60,70년대에는 교회의 강단에서 회개의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성도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애통하며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습니다. 이 때 교회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8,90년대 와서는 회개의 메시지가 사라지고 주로 성도의 귀를 간지럽게 하는 축복의 말씀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 교회는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귀에 듣기 좋은 말은 약이 아니라 독입니다. 그러나 듣기 싫은 회개의 메시는 독이 아니라 약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는 그들을 무섭게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심판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까?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30:15).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첫째로 돌이켜야 됩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강대국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을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당시 애굽을 의지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는 것은 고도의 외교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는 가장 큰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회개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로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조용히는 영어로 rest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rest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폭풍우 치는 상황에서도 rest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산을 옮겨 바다를 메꿀 수 있습니다.

셋째로 잠잠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잠잠하라는 것은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편에서 그 사건의 의미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 자체에 빠지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문제를 생각하면 길이 보이고,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게 되고, 구원의 길이 보입니다. 18-26절은 여호와의 구원과 27-30절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1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기초석인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얻습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기촛돌이요 믿음의 기촛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인생의 기초를 놓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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