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제 8 강 요한복음 3:4~15

거듭남과 영생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함량이 미달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남은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단회적입니다. 근본적이고 전인적인 변화,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입니다(2:5; 고후 5:17).

우리는 중생(거듭남)과 성화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중생은 단회적인 변화입니다. 반면에 성화는 점진적인 변화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계속 성화하여(sanctification) 영광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성화가 없는 성도는 성장이 없는 어린아이, 앉은뱅이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천국 백성입니다. 천국 시민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안과 희락입니다(14:28).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세적이고 미래적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서 현세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1. 거듭나는 길(3:4~8)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는가(3:4)? 반문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자손은 무조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유대인입니다. 거기다가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키려고 했던 바리새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나같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로 여겼는데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니고데모에게도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척하지만 속에는 각종 탐심과 죄악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체적으로 늙어서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물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니고데모는 거듭남(νωθεν)’위로부터 나다(born from above)’두 번째, 다시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위에서 태어나는 반대 개념입니다. 모태로 태어나는 것은 생물학적 출생입니다.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출생해도 육입니다.

은 세례 요한의 세례(1:4), 또는 기독교의 세례와 관련시키기도 하고, 자연적인 출생으로 보기도 합니다. 물은 깨끗하게 하는 상징으로 제사에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몸을 씻지 않고는 언약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엣세네파(Essenes)는 개종자를 받아들일 경우 물세례를 행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받기 위해 회개를 촉구했고, 죄를 회개한 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한편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은 물세례를 받기 전 이미 성령의 선물을 받았고(10:47~48), 에디오피아의 내시 또한 그러했습니다(8:26~39).

본문에서 물은 회개의 세례로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또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라고 했고, 또 야고보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는 나의 몫입니다. 그렇다고 내 의지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 진실하게 죄를 회개하면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디도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3:5)라고 했습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령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육의 탄생이 있듯이 영의 탄생도 있음을 말씀하였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3:6~7)

육에는 아름다운 육이 있고 추한 육도 있습니다. 육에는 세련의 육도 있고 촌스런 육도 있습니다. 육에는 문명의 육도 있고, 미개한 육도 있습니다. 육에는 고상한 육도 있고, 세속된 육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육은 세속된 육입니다. 반면에 니고데모의 육은 고상한 육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육은 육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육은 육입니다. 고상하게 보일 육도 죄악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고, 순종할 수 없습니다(8:7). 육은 육을 낳을 뿐, 영을 낳을 수 없습니다. 육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에 영은 영을 낳습니다. 영의 출생은 육의 출생과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이 육으로 태어나면 육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영으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가지고 출생합니다. 그 내면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떨어져 영의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8:4,9).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8:15).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성령의 역사를 좀 더 설명하기 위해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러하니라.”(3:8)

퓨뉴마(πνευμα)는 신약성경에 370번 나옵니다. 프뉴마는 영, 또는 성령의 뜻으로 사용되고 바람이라는 의미로는 구약성경(104:4)의 인용 구절이 히브리서에 한 번 등장합니다(1:7). 바람은 현대의 과학을 총동원 해도 바람이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향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바람은 불가항력이요 임의로 붑니다. 바람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소리와 그 결과로 실재(reality)를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곳에는 반드시 흔적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도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헤아릴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거듭난 사람의 실제 행실의 변화로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은 회리바람과 산들바람이 있습니다. 유혹의 바람이 있고 신바람과 치맛바람이 있습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가을의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역사해 그 변화가 눈에 거의 띄지 않습니다. 한편 사도 바울이나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드라마틱하게 역사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조용하게 변화되든 급진적으로 변화되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반드시 변화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를 반문했습니다(3:9). 그는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율법을 암송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20대에 성경박사가 되고 관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것은 다 육이므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에스겔서에 거듭남과 중생의 원리가 있습니다(36:25~28). 그런데도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17:1~8)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거듭남이 생소하게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셧습니다. 예수님의 니고데모에 대한 책망은 개인의 영적 무지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유대인 전체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특히 니고데모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는 성령의 의미와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구약성경에 있음에도 알지 못하고,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진리와 거짓을 판별하는 산헤드린의 한 회원이었으므로 더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는 거듭남을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거듭남을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정상에 오른 것처럼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거듭나면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힘들게 얻은 소유를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담 본성의 교만과 불순종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아담의 자기 밖에 모르는 자기 중심이 깨지고 아름다운 예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조각되고 빚어집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전의 죄악된 습성을 버립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5:22~23).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마음이 자기밖에 모르는 좁살 영감처럼 좁던 사람이 대양처럼 마음이 넓어집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희생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찐조기처럼 어듭고 심각하던 사람이 보름달처럼 환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매사 부정적인 사람이 하나님 편에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마음이 여리고 연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불순종하고 교만하던 사람이 겸손하고 순종의 사람이 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이 감사와 찬미와 기쁨이 넘칩니다. 자기 광을 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땅에 소망을 두던 사람이 위를 향합니다. 그래서 폘돈(Fenton)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기원과 운명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적 무지를 책망하시고 영생을 얻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2. 영생을 얻는 길(3:11~15)

첫째, 증언을 받아들여야 한다(3:11~1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3:11~12)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사람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1:5).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영생을 추상적인 지식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진리임을 선포했습니다. 신령한 지식은 성령의 조명으로 믿음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여기서 땅의 일이란 회개, 거듭남 등을 뜻하고, ‘하늘 일이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 등의 구속 계획의 완성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하늘 일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이 말씀은 민수기에 있는 말씀입니다(21:4~9).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나갈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이 험하고 물이 없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뱀(독사)을 내려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백성은 비로소 원망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믿고 쳐다보는 자는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제시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그런데 위를 쳐다본다는 것은 어리석게 보입니다.

뱀에 물리면 몸에 독이 퍼지기 전에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또한 물리지 않도록 땅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뱀잡기 운동을 벌여야 됩니다. 또 자기를 물은 뱀을 쳐다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유대 학자들은 하루 중 대부분을 모세오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의 말씀을 외웠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오경에서 인용한 놋뱀 사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뱀은 마귀 또는 사탄이라고 불리는 옛 뱀’(20:2)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장대에 높인 달린 놋뱀은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예표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설명하는 구원의 핵심 구절이고, ‘영생은 요한복음의 중심 주제입니다. ‘믿는다(belive, πιστεύων)’는 신약성경에 244번 나오는데, 현재 분사형으로서 계속의 행위를 뜻합니다. ‘영생은 영원의 생명을 뜻합니다. 영생은 미래와 현재를 모두 포합합니다.

요한복음에 생명영생을 상호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19, 영생은 17번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17:3). 영생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참 길이요(14:6), 살아있는 길이신 그리스도를 말미암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앎과 교제는 현재 땅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처소에서 이루어집니다(14:3).

세상은 불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불뱀으로 인격과 육신이 파괴되었습니다. 지금도 뱀에 물려 온 인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큰지, 인간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큽니까? 성경에 인간의 죄는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라”(2:2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강석 끝 철필로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17:1).

하나님은 누구든지 죄를 지을 때 죄단 뿔에 피를 뿌리면 그 피를 보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제단 뿔에 금강석 끝 철필로 유다의 죄가 새겨져 있어서 아무리 피를 발라도 죄가 용서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미 죄로 죽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2:3). 죄로 죽은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는 미워해도 죄인을 사랑하시기에 인간을 구원할 새로운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충족할 방법으로 하늘로부터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들리게 하신 다음에 하늘로 올리셔서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위로부터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때 웃옷을 벗기어 채찍으로 때립니다. 채찍의 끝에 뼛조각이나 납을 달아서 채찍질하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갑니다. 자기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까지 가면 처형 장소에서 죄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세워놓고 손에 못을 박는데 모든 신경이 몰려 있는 손목에 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왼발을 오른발 위에 올려놓고 오목한 부분에 못을 박고 몸이 아래로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엉덩이 받침대를 중심기둥에 놓습니다. 이것은 죄수가 처절하게 고통을 겪고 일찍 죽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처럼 참혹합니다. 유월절 어린양도 이보다는 자비롭게 도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에 목을 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비참하게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확증해 보이기 위함과 동시에 우리의 죄가 얼마나 비참하고 무거운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죄, 제단 뿔에 금강석 끝 철필로 새겨진 죄를 지우는 길은 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면 금강석 끝 철필로 마음에 새겨진 죄가 단번에 지워지고 죄명(罪名) 대신에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 새겨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경외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니다.

진정 거듭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뜨거운 열망이 내 안에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맡겨진 영적인 의무를 기쁘게 감당합니까?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인색함이 없습니까? 만약 이런 질문에 쉽게 라고 대답하지 못하면 어쩌면 위로부터 거듭나지 않은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나서 거듭났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거듭남을 지금 유지하고 있습니까? 거듭남을 유지한다는 것은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를 뜻합니다. 우리는 거듭남에 만족하지 말고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그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짝퉁 영생이 아니라 진짜 영생을 얻는 신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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