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27-54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5)

요즘 카톡이나 메일이나 전화, 그리고 zoomsns가 일상화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수업과 예배도 줌과 sns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인 전달은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명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으니 오해와 불신이 생깁니다. 인격과 인격,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대화할 때 진지해지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는 중에 사마리아 여자의 문제가 참된 예배의 대상을 찾지 못함에 있음을 아셨습니다. 예배는 제사를 뜻합니다. 제사는 속죄제를 말합니다. 속죄제는 죄의 용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신이 사마리아 여자가 그토록 찾는 예배의 대상, 죄를 사해 주시는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는 순간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첫째,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가서 메시아를 증언하는 사마리아 여자, 둘째, 참된 양식, 그리고 사마리아 한 사람의 변화를 보시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비전을 배울 수 있습니다.

.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27~29, 39~42)

첫째,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들어간 사마리아 여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거의 마칠 즈음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여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한 낯선 여자와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지만, 대화가 너무 진지하여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사마리아 여자가 갑자기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갔습니다. 우물에서 동네까지는 10 여리나 됩니다. 먼 길을 물 길으러 왔다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갔습니다. 여자는 목이 마를 때마다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물동이는 이 여자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갔습니다. 메시아를 만난 이 여자에게 더는 물동이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는 best를 취하기 위해 better를 버렸습니다. 버리려면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 하는 분명한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가치관은 무엇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가를 아는 분별력입니다. 동양에서 사람을 뽑을 때 네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습니다. ()은 몸가짐, ()은 논리 정연한 언어, ()는 필력, ()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합니다. 판단력은 지혜에서 옵니다. 지혜가 있을 때 무엇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최선의 것은 최선의 자리에 놓아야 하고, 차선의 것은 차선의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서 실패합니다. 최선의 자리에 놓아야 할 것을 차선의 것을 놓고, 차선의 자리에 최선을 놓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약해서 실패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긴급한 일이라고 해서 다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하고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성경학자 앤드류 보나의 생활원칙을 보면 첫째는 예수님께 먼저 말씀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둘째는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셋째는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떤 책도 읽지 않는다입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을 해야 아름다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범인과 비범한 사람이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있습니다. 아기와 자기에게 우선순위를 두면 아기와 자기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면 하나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다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첫 번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4:18~22; 1:16~20; 5:11). 그들은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 제자들은 고기를 잡는 그물보다 예수님이 더 가치가 있었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버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땅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농부와 값진 진주를 찾은 진주 장사의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13:44~46).

대부분 사람은 보화가 있으면 감춥니다. 특히 서양 사람들은 값비싼 귀금속은 몸에 지니지 않고 그 대신 imitation을 달고 다니다가 중요한 파티가 있을 때 진짜 보석을 몸에 지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짜 보석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에는 은행 제도가 잘 발달하지 않아 금은보화를 궤 속에 넣어 밭에다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밭에 감추었다가 죽으면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곡괭이로 땅을 파다가 무엇인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바위로 알았습니다. 그는 계속 땅을 파다가 큰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열어 보니 금은보화가 담긴 상자였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집으로 돌아와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극히 좋은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한 장사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값진 진주를 샀습니다. 그들이 보화와 진주를 발견했을 때, 그 어떤 것을 팔아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에서 천국의 보화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보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보화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이 가장 귀합니다. 성경 말씀은 그 어떤 보화보다 귀한 보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2:3).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과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기쁨이 있고,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찬송가 94)

둘째, 와서 보라

사마리아 여자는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4:29)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사마리아 여자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낯선 한 유대의 남자로 보았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예수님이 선지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냐?는 긍정을 강조하는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이 여자는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깊어졌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 한 그릇을 줄 수 없는 자기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런 여자가 몇 시간 만에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만나기 싫었던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멋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믿는 순간부터 과거의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소문도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싫었던 이웃이 반갑고, 미웠던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과 주변 환경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 변하니 주위가 다르게 보였고 사람이 달리 보였습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보입니까? 좋은 사람, 반가운 사람이 많이 보입니까? 아니면 나쁜 사람, 미운 사람이 많이 보입니까? 피해망상에 처해 있습니까? 아니면 도와준 사람이 많이 보입니까? 좋은 사람, 반가운 사람, 도와준 사람이 많이 보이면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피해망상에 찌든 사람, 미운 사람, 나쁜 사람이 많이 보이는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증언은 신학을 논하지 않았습니다. 세미나를 열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와서 보라(come and see)’는 단어는 요한복음에 세 번 나옵니다(1:39, 1:46, 4:29).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깨달음의 종교가 아니라 보고 경험하는 실제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주관적인 종교가 아니라 객관적인 종교입니다.

전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박식한 지식입니까? 뛰어난 말솜씨입니까? 좋은 인상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예수님께 대한 확신이 있으면 됩니다. 니고데모는 학식과 권세와 명예와 부를 소유한 그 시대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서 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는 공부를 많이 한 신학자도 아니었고 유명인사도 아니었습니다. 인기 스타도 아니었고 설득력을 가진 웅변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 여자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었습니다. 이는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에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전도란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2. 생명의 양식(4:31~34)

사마리아 사람들이 여인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께로 오는 사이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동네에서 구한 음식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준비해 온 음식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가기 전의 예수님의 모습은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쁨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없는 사이에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양식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는 일입니다(6:39~40; 19:10).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밤이 늦도록 니고데모와 대화하셨고, 뜨거운 햇살 아래 목마른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병든 영혼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죄로 말미암아 병든 영혼을 구원하는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19:30).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섬기셨는가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40:8)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주님의 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양식은 힘을 얻게 하고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요즘 먹방이 최고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사람이 육의 양식을 먹고 힘을 얻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시고, 힘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치고 피곤하셨지만 사마리아 여자의 영혼을 구원하심에서 힘과 영혼의 만족과 쉼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 자체가 양식이요 쉼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일과 쉬는 것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부담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영혼의 만족과 쉼을 얻는 비결입니다.

3. 예수님의 비전(4:35~42)

첫째, 제자들에게 비전을 심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함으로써 영적 힘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그후에는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바라보시고 비전에 불타셨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5)

곡식을 추수하는 데는 씨를 뿌린 후부터 추수하기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의 추수는 이와 다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씨를 뿌린 후 곧 추수할 때가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의 변화를 보시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과 민족의 감정 문제에 얽매여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또 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는 척박한 땅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그들은 먹고사는 현실 문제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먹는 것과 연관시켰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룩 이야기를 하신 것은 제자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 염려가 되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빵을 만드는 누룩으로 연결했습니다(8:15~16). 예수님은 먹는 현실 문제에 얽매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5)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실 문제에 얽매인 데서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영적 세계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눈을 떠서 넓고 넓은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1792년에 출간된 한 권의 책, “선교적 탐구가 유럽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선교적 탐구는 구두 수선공인 윌리엄 캐리가 쓴 책입니다. 책의 내용은 수달피 두 개를 얻기 위하여 장사하는 사람들도 온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위해 어떠한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럽 사람들의 눈을 열게 했고, 안목을 바꾸게 했고,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의식 세계를 바꾸게 했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실제로 가족 일곱 명을 데리고 영국에서 인도를 향하여 떠났습니다. 36천만 원의 돈을 지불하며 6개월의 긴 항해로 인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50년간 인도 해안 전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복음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 무렵에 중국 선교를 위한 허드슨 테일러가 혜성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는 우리가 해안 가에만 머물지 말고 깊은 내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은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 정신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인도와 중국에 복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람이 변하면 한 동네가 하나님의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켜야겠다고 결심한 어떤 수도사가 있었답니다. 그는 20대 때 나를 통해 전세계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세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30대에는, 나를 통해 이 나라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40대가 되어 기도의 제목을 나로 내가 사는 이 도시만이라도 바꾸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50대에 내가 산책하는 이 동네, 이 동네라도 나로 변화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또한 응답 되지 않았습니다. 60대가 되어 내가 속한 공동체, 내 가족들의 변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것마저 쉽지 않았습니다. 70대가 되어 주님, 나의 습관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변하자 놀랍게도, 내 가족 내 공동체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동리, 내 도시, 내 나라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변화가 하나님 나라 사역의 출발입니다.

둘째, 제자들을 동역자로 삼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현실 문제에 매여 있는 제자들에게 비젼을 심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는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4:36).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거두는 자는 열매를 거두기 때문에 기쁨이 있습니다.

반면에 뿌리는 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지만 자신이 거두지 못할 때 손해의식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뿌린 씨는 헛되지 않아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는 당장 열매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확신있게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4:37~38). 우리는 나 혼자 심고 다 거두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수많은 순교자와 말씀의 전파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이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열심히 씨를 뿌려야 합니다. 또한, 거두는 자는 내 노력으로 열매 맺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증언을 듣고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4:39). 예수님은 그들의 청에 응하셔서 이틀을 더 유하시며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자립적이고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4:42).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주이실 뿐만 아니라 배척받고 소외 받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주입니다. 예수님은 인종, 신분, 국적을 초월하여 세상 만민의 구주입니다.

4. 두 번째 표적(4:43~54)

이틀 후에 예수님은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고향 사람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 이르시자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표적을 기초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4:48, 2:23~24)

예수님이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자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왕의 신하는 권력을 가졌기에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죽어가는 아들에 대한 부성애가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는 34Km 되는 먼 길이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단숨에 달려와서 예수님에게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한시가 절박했으나 낙심하지 않고 다시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4:50)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에 기초한 믿음에서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표적에 기초한 믿음은 축복받고 병을 낫기 위해 믿습니다. 표적 신앙은 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말씀에 기초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때를 따라 과일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1:3).

그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내려갔습니다. 그는 내려가는 길에서 종들로부터 아이가 살았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인들에게 낫기 시작한 때를 묻고 바로 그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때인 줄 알고 그와 온 집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표적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말씀 한마디로 죽어가고 있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변하여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들어가서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의 변화를 보시고 세계는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임을 보셨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는 인류 변화의 기초가 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변화를 보시고 세계를 바라보십니다. 예수님은 one man vision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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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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