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 13강(말씀, 4:32-5:11, 요절 5:3)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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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 교회 성도들은 물질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졌습니까(32,34,35)?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33)? 바나바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36,37)?

2. 이런 가운데 어떤 사단의 역사가 있었습니까(5:1,2)? 그들은 왜 땅 판값을 다 바치는 것처럼 하면서 얼마를 감추었을까요?

3. 베드로는 그들이 범한 것이 어떤 죄임을 지적했습니까(3,4)?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어떻게 벌하셨습니까(5,6)? 삽비라는 어떻게 주의 성령을 시험하였으며, 어떤 징벌을 받았습니까(7-10)? 이 사건이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11)?

4. 성령을 속이는 거짓이 왜 그토록 심각한 죄가 됩니까? 거짓이 얼마나 큰 죄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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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곳에 사단의 역사 또한 집요하고 공세적입니다. 사단의 공격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사단이 교회를 박해하고 핍박합니다. 둘째는 사단이 교회를 도덕적으로 부패 시킵니다. 이는 고도의 사단의 전술입니다. 셋째는 교회의 사명인 말씀과 기도와 전도에 전무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 세 가지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단의 수법입니다. 특히 오늘날 사단은 교회를 도덕적으로 타락시켜서 교회를 무력화합니다. 요즈음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도덕적으로 그렇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믿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나을 수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보다 거짓말을 더 잘하고 컨닝을 더 하고, 회사 장부를 더 분식 회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사단이 믿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무력화시켜서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고도의 수법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교회에 핍박이 있었지만 사도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이에 굴하지 않고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사단은 제 2 수단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거짓을 심어 교회에 아름다운 교제와 사랑을 허물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을 드러내시고 교회를 지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거짓의 언어 대신에 내 입술에 진실한 언어, 정직한 언어, 거룩한 언어를 담고, 그리고 언어 속에 복음을 담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아름다운 초대 교회(4:32-37). 사도행전 2:32-37을 보면 성령님이 오셨을 때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4:32-37절에서는 성령 충만한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첫째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32). 32절을 보겠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성령 충만한 교회는 네 것 내 것이 없었습니다. 서로 함께 나누어 썼습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자, 배고픈 자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화두는 양극화 현상입니다. 모든 매스컴의 핫 이슈는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야단법석을 떱니다. 양극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영국은 16세기 산업혁명 이후에 급격한 빈부의 차로 인해 사회가 붕괴 위기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산업 혁명은 자본주의를 가져다주었는데, 자본주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인 소유욕을 자극하여 소유하는데 급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를 본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이론을 제공한 자본론을 썼습니다. 공산주의의 이론은 인간의 원초적인 소유욕을 제어하여 서로 나누어 갖자는 것입니다. 레닌과 스탈린은 이를 이용하여 러시아 혁명을 일으켜 인위적으로 강제적으로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나누어 주어 평균케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가난의 평균을 이루어 결국 공산주의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내 것, 네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것을 자기 소유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소유를 나눔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든 물질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기적인 욕망이 우리 자신을 지배하게 됩니다. 나눔보다는 소유가 앞서게 됩니다. 내가 번 돈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일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북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1958년부터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와 같은 속도로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자며 열심히 일하여 전쟁의 폐허를 디디고 일어서서 60년대 말에는 남한보다 더 잘 살았습니다. 저는 천리마 운동을 본 뜬 것이 새마을 운동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남북 간 경제가 급격한 차로 벌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천재지변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북한주민들이 열심히 천리마 운동을 하여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했지만 매년 해갈과 홍수로 모든 국토가 초토되었습니다. 제가 재작년 금강산을 갔었는데 수마로 인해 많은 농토가 하천으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내리고 햇볕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개념, 청지기 사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4가지 청지기 직분, 즉 생명의 청지기, 복음의 청지기, 물질의 청지기, 시간의 청지기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럴 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양극화 현상의 원인은 자원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대로 유통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유통이 되고 나누어 쓰기만 하면 양극화 현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아파트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규제를 해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의 주택 보급률은 2002년에 100.6%이고, 2003년에 101.2%입니다. 2005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더 높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세 파동이 일어나고 아파트값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이는 가진 사람들이 아파트를 몇 채씩을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서로 물건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소유의 즐거움보다 나눔에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소유에서 아름다움을 찾지만 사실 소유에서 오는 즐거움은 잠시입니다. 사람이 움켜지고자 하는 만큼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언제나 기쁘고 아름답습니다. 나눔의 생활이 소유의 생활보다 언제나 즐겁습니다. 오늘의 양극화 현상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나눔의 공동체가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가, 주님이 말씀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영접하고, 가진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 자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는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그래도 미국이 건강한 것은 나눔을 즐거이 하고, volunteer정신과 donation이 하나의 상식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필요에 따라 분배했습니다. 35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라.” 자본주의 이론은 능력에 따라 분배하고, 공산주의는 필요에 따라 분배합니다. 많이 벌건 적게 벌건 똑같이 분배합니다. 이 이론은 멋있게 보이지만 열심히 일을 하지 않도록 합니다. 제가 10년 전에 중국에 갔는데 점심시간이 무려 3시간이고, 러시아 사람들 또한 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일을 해도 받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원리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맑스 베버는 자본주의는 기독교의 원리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이 열심히 일하고 내핍생활을 하여 돈을 벌어 저축하고, 그 저축한 돈을 자본에 투자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8장을 보면 있는 자가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궁핍한 자를 보충해 주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줌으로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초대 성도들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에서 출발했습니까? 33절을 보겠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이런 생활의 기초는 부활신앙이었습니다. 부활신앙이 있을 때 모든 소유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활신앙을 소유했을 때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두고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이 하늘에 있을 때 땅의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 서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기심과 물질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형제에 대한 사랑이 가득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꾸리고 인색하고 이기적이고 물질에 얽매이는 것은 소망이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부활의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얻었습니다. 은혜는 어떤 신세를 졌을 때에 느끼는 고마움을 뜻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으면 結草報恩하겠다고 합니다. 즉 죽어서라도 받은바 신세를 갚겠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조건 없이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남을 도울 수 있게 합니다. 관대한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기쁨의 샘물이 흐르게 합니다. 소망과 구원을 넘치게 합니다. 36,37절을 보면 헌신적으로 물질을 드린 사람 가운데 구브로 태생으로 레위족인 요셉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란 권위자 즉, 권면과 위로를 잘하는 위로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둘째, 교회 내부의 사단의 역사(5:1-11). 이런 가운데 내적으로 사단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구약의 아간 사건과 대비합니다. 아간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정복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주 큰 승리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 벽두에 일어났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신약 교회가 시작할 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은 모두 속이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물의 얼마를 감추었고, 아간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의 금덩이를 감추었습니다. 감추다는 자기 몫을 떼어놓다, 자기 몫을 챙기다는 뜻입니다. 아간은 거룩한 전쟁을 하면서도 자기 것을 숨겨놓았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이면서까지 자기 것을 챙겼습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그가 왜 그렇게 밭을 팔아 헌금하고자 했을까요? 바나바가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아래 놓았을 때에 그는 교회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는 이를 보고 자기도 존경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밭을 팔아서 절반을 감추고 절반은 헌금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제2의 바나바가 나타났다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삽비라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는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언뜻 생각하면 그가 무슨 큰 죄를 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십일조를 드려도 되는데 그는 절반이나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절반을 드리고 다 드렸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몇 년 전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섹스 스캔들에 온통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핫 이슈는 섹스 스캔들이 아니라 그가 위증을 했느냐, 거짓말을 했느냐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섹스 사건 같은 것은 커다란 범죄로 여기지만 일상적인 거짓말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거짓, 진실하지 않은 것을 큰 죄로 여깁니다. 하버드대의 교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서울대 교훈과도 일치하는데 VERITAS, 이것은 라틴어로 진리, 진실입니다.

성경은 거짓말을 큰 범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중에 아홉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요한복음 14:6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거짓이 없는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9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라고 했습니다. 미쁘다는 진실하다, 성실하다는 뜻입니다. 시편 5:4,6절을 보면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거짓말 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잠언 20:10을 보면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저울추와 말을 속이는 부정직한 상업윤리, 분식회계 등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진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 마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44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느니라.” 우리가 발명의 아버지 하면 에디슨, 교향악의 아버지 하면 하이든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뭐라고요? 성경은 사단을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순간 사탄의 지배 아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진실합니다. 반면에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면 그 입에서 거짓을 말하고, 그의 삶에서 거짓을 행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훼방하게 됩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도 베드로는 그가 이렇게 한 것이 그 마음에 사단이 가득하여 이런 일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지배를 받아 거짓을 말하고, 거짓을 행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땅은 자기 땅이기 때문에 팔아도 되고 안 팔아도 됩니다. 땅을 판돈 또한 자기 것이기 때문에 그 판돈을 드릴 수도 있고 안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마 그도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팔아서 헌금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판값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그러자 탐욕이 생겼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런 그를 향하여 ‘네 임의로 할 수 없더냐’ 꾸짖었습니다. 그는 사도 베드로를 향하여 거짓말을 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진리의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을 거스렸습니다.

삽비라는 어떠했습니까? 7,8절을 보겠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정직할 수 있었다면 그런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3절을 보면 남편이 주도적으로 했습니다. 그 때 아내가 좀 정신을 차리고 남편이 거짓을 도모할 때 ‘여보, 그게 무슨 소리요. 어떻게 하나님을 속일 수 있어요? 안 바치면 그만이지 시험을 당할 것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좀 정직합시다’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남편을 만류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부부가 찰떡궁합이 되어 그만 거짓에 동역을 했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동역자입니다. 그런데 그 부부는 죄를 짓는데 동역을 했습니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정직하였으면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 터인데 결국 그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어찌하여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라는 이 한마디에 그들은 엎드러져 혼이 나가 죽었습니다(5,6,9,10).

11절을 보겠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교회의 영적 권위, 하나님의 권위가 나타났습니다. 경건을 찾게 되었습니다. 치유만이 표적이 아니라 심판도 표적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직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회개할 기회를 주었을 때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을 끌면 되지 않습니다. 3절에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그런데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라’고 오리발 내밀었습니다. 그가 변명과 거짓말 대신에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회개합니다’하면 되었을 터인데, 그런데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삽비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3시간 후에 삽비라가 왔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8a)” 그런데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8b).” 그는 얼굴 표정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이것뿐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녀 또한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 또한 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령을 속이지 말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개하는 것이 성령을 속이지 않는 것이고, 성령을 소멸치 않는 것입니다. 거짓을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거짓말을 회개하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보혈로 죄 씻음 받아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이 지배하던 삶에서 벗어나 내 입술 속의 진실의 단어, 새로운 언어를 담아야 합니다. 미움의 언어 대신에 사랑의 언어를, 이웃을 중상모략하고 파헤치던 죽음의 언어 대신에 내 입술에 사랑의 언어, 생명의 언어, 창조의 언어, 진실한 언어, 정직한 언어, 거룩한 언어 속에 복음을 담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할 때에 거짓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찬양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는 주의 눈물로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이 남게 하소서......♫

주님,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만이라도 정직해야 하는데 정직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제 거짓을 포기하고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저의 입술에 거짓보다는 정직한 언어를 사용하여, 사랑의 단어를 사용하여, 거룩한 언어를 사용하여, 진실한 언어를 사용하여 그 언어들이 향기의 언어가 되어 나의 존재가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속에 거룩한 언어를 담아서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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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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