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이 되신 예수님

조회 수 3088 추천 수 0 2012.07.11 02:26:36
요한복음 12:20-33(요한복음 12:24)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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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백성들은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인기가 최고의 절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행렬과 이 외침은 왕에게 드리는 영광과 찬양으로서 최고의 퍼레이드였습니다. 이때에 대개 사람들은 자기도취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순간에 한 알의 밀의 인생을 살고자 결단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 열매를 맺는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으로 영접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도다(20-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관광을 오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사람들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인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뵙고자 했습니다. 이는 빌립이 헬라식 이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립은 일찍이 헬라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이를 본 헬라인들은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철학적이고 신사적이고 사색적이며 논리적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헬라 사람들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들은 음란했습니다. 그래서 헬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유대교로 귀의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귀의했지만 형식과 율법적인 유대교에서도 참된 진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리라 생각하고 예수님을 뵙기를 청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헬라 사람들을 보시자마자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동문서답인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들에게 주신 가장 적합한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인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죽음이나 희생을 싫어하고, 느끼기를 원하지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남이 희생하고 죽기를 바랐지 자기가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손 안대고 코 풀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들은 쉽게 무엇을 얻고자 했습니다. 시험공부도 안 하고 A학점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그들은 공짜를 좋아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 중의 하나가 수고하지 않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심리 때문입니다. 땀과 희생과 노력 없이 돈을 번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졸부라고 합니다. 졸부는 천미자본주의 상징입니다. 졸부들은 땀과 수고 없이 돈을 벌었기 때문에 흥청망청 씁니다. 한국은 이들로 인해 더욱더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주식 투기, 부동산 투기, 각종 투기 모두가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심리에서 기인됩니다. 바다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권좌에 오르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 각종 로비를 펼칩니다. 사람들은 쉽게 학위를 따고, 쉽게 논문 실적을 올리기 위해 남의 논문을 표절합니다. 이런 심리는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기도 몇 마디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신합니다. 쉽게 영광을 얻고 쉽게 열매를 바라는 것은 무당 신앙의 일종입니다. 무당 신앙이 무엇입니까? 무당을 불러 굿을 한번 하고 나서 모든 생사화복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희생 없이는, 손해를 보지 않고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 ‘인자’란 성경에 90회 이상 나오는 데,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영광’이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는데 바로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장에 십자가를 지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십자가를 내일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까지는 이렇게 하고 내일부터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곧 십자가를 지고자 결단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지금 이 사건 속에서 십자가를 사랑해야 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곧 십자가는 현재 당장 나에게 이루어지는 ‘here and now to me’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는 것이 어떻게 영광이 됩니까?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적으로 보면 저주요, 고통이요, 수치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패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 편에서 보셨습니다. 이 때 십자가는 저주나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었습니다.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어리석고 무력한 것이 아니라 지혜이며 능력이었습니다. 조롱과 비웃음이 아니라 승리의 찬가였습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죽음을 파하시고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하늘에 오르시고 하늘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얻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2-24절을 보면 십자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지만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아멘.

바울은 처음에 율법의 눈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이단으로 단정하고 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달라졌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알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십자가는 쓸모없던 자가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미움을 사랑으로, 분열을 통합으로, 갈등을 화해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죤 뉴톤은 노예를 파는 선장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인신매매 두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의 도를 영접했을 때 변하여 생명을 살리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된 후에 너무나 그 은혜가 놀랍고 감격하여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다 같이 찬송가 405장을 부르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그 누구도, 그 어느 사상도 죤 뉴톤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새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십자가는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공의와 사랑을 조화시키시고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극치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유일한 구원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영원한 삶의 길을 제시하여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에게 삶의 목적과 삶의 뜻을 알게 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

역사 이래 희생이 없는 영광은 결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 없는 영광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아야 됩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모두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수고를 통해서 영광을 얻을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담에 고진감래라는 말을 잊지 마십시오.

둘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밀알의 진리를 비유로 십자가가 왜 영광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생명이란 신비하여서 무한한 번식과 생산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은 무한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밀알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첫째는 땅에 떨어져 묻혀야 됩니다. 씨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있지만 공중에서 저절로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떨어져 묻히고 밟혀야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고개를 쳐들고 위로 올라가고자 하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땅속에 들어가 묻혀야 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지내야 합니다. 죽어지내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말 많은 사람 치고 열매 맺는 사람 못 보았습니다. 땅에 묻히고 밟혀야 열매가 맺히는 것이지, 땅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올라오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열매를 맺기를 원하면 땅 속으로 들어가 묻히십시오.

둘째는 죽어야 합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반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His part and our part). 대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며 믿음이 좋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뭣이 잘 안되면 다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땅에 떨어지는 즉시 열매를 맺고자 하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나를 알아달라고 합니다. 당장 보상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떤 식물도 땅에 떨어지는 즉시 열매를 맺는 것은 없습니다.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한 알의 씨에는 씨의 3대 요소인 배와 배젖, 껍질이 있습니다. 이 배가 99% 죽어서도 안 되고 완전히 죽어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를 보호하고 있는 껍질이 완전히 분해되어야 합니다. 자기 분해와 자기희생 없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는 생명의 원리요, 생명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밀알이 땅에 묻히고 밟혀 자기가 모두 분해될 때 고통이 따릅니다. 자기가 깨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밀알이 자기가 분해되고 죽는 아픔을 이기고 인내할 때에 싹이 나고 자라며 줄기가 생깁니다. 밀 알의 한 알에서 줄기가 4,5개가 나옵니다. 그리고 4개월 후면 한 줄기에서 약 100-125개 정도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렇다면 한 알에서 약 500개의 밀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를 종자로 계속 심는다고 가정할 때에 1년 후에 25만개의 밀알이 생깁니다. 2년 후면 1억2천5백만 개의 밀알이 생깁니다. 이를 10년 동안 계속 심는다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게 됩니다. 이처럼 한 알의 밀알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땅에 떨어져 묻히고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게 됩니다. 이는 참새 한 마리의 한 끼 먹이로도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창세전부터 영원한 영광을 누리며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상아와 같이 아름다운 곳에서 영화와 존귀로 옷을 입으시고,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존심 하나 깨지 못하여 괴로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실 때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영광과 존귀를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과 병든 사람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천대 받던 세리 마태를 3년 반 동안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천한 사마리아 여인을 섬기시고, 쓸모없는 38년 된 중풍병자를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더러운 문둥병자를 어루만져 주심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지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들고 죄로 인해 고통 하는 죄인들을 섬기시다가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시키심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가십시오. 그 길을 따라 가는 곳에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 360장을 부르겠습니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겠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드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겠네♬

셋째,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리라(25)

예수님은 이제 밀알의 진리를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25절을 읽겠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미워한다는 것은 자학이나 자기 학대나 염세적인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말로 자기를 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우선순위는 가치관을 말합니다. 자기를 먼저 사랑하면 자기중심적인 사랑, 자기애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면 이타적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현재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현재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미래적인 생명을 잃게 됩니다. 현재 자기를 사랑하다가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내일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기보다는 오늘 놀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현재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보십시오. 건강도 상하고, 정신 건강도 망칩니다. 자고 싶다고 24시간 다 자 보십시오. 놀고 싶다고 매일 놀아 보십시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자고 싶은 것 다 자보십시오. 그런 사람은 자기 명에 죽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수고와 오늘의 죽음은 미래를 윤택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고, 값지게 합니다.

위대한 삶을 사시기를 원합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애를 버리십시오. 소를 버리고 대를 선택하십시오.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선택하십시오. 이기적인 사랑에서 이타적인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왜 슈바이처가 위대합니까? 왜 나이팅겔이 위대합니까? 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았고, 소를 버리고 대를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나만을 위한 사랑, 자기애는 파멸에 이릅니다. 반면에 자기를 미워하고 그리스도를 위하고 진리를 위하고 남을 위하는 삶에는 열매가 있고, 차원 높은 영적인 생명과 윤택함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27).” 예수님도 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고통 하셨습니다. 죽음은 누구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천당은 좋지만 천당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천당이 좋기는 좋지만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이 죽으면 천당을 가서 좋다고들 하지만 막상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슬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부활, 영광, 영생을 아셨지만 죽음 앞에서는 고통 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본질적인 의미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본래의 사명을 붙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붙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28). 이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받으셔서 그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세상 임금이 쫓겨나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29-33).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밀알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희생하고 헌신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셨고 많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배워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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