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4:22-36

믿음과 의심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14:27).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위를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절망 중에 위를 바라보았을 때에 하늘의 수많은 별들 속에서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14:19).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7:55).

우리가 주위 환경을 보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두렵지 않습니다. 본문에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았을 때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순간 그가 풍랑 이는 바다를 봤을 때 빠져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주위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기도를 삶의 우선순위로 두신 예수님(14:22-23)

예수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를 보내신 후에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루를 출발하실 때 제일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루를 끝내시고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큰일을 앞두고 기도하시고 큰일을 행하신 후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하루를 출발하시고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습니다.

그 사람의 우선순위를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우선순위(priority)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 곳곳에서 삶의 우선순위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골몰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4).

지혜로운 사람은 최선의 것은 최선의 자리에 놓고 차선의 것은 차선의 자리에 놓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최선과 차선을 구분하지 못해 실패합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너무 약해서 실패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살다가 보면 긴급한 일을 만납니다. 그러나 긴급하다고 다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보다 더 중하고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존 번연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이 기도한 다음에는 그 기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기 전에는 그 만큼의 일도 할 수 없다(You can do more than pray after you have prayed, but you cannot do more than pray until you have prayed.)”

그리고 성경학자 엔드류 보나의 생활원칙은 이러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 먼저 말씀 드리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둘째는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셋째는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떤 책도 읽지 않는다.”

예수님이 33세의 짧은 생애에 하나님께서 맡겨두신 사명을 온전히 다 이루실 수 있었던 것은 기도에 최우선순위를 두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초요 기본입니다. 기도는 위대한 일을 준비하게 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위대한 일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큰일을 마친 후에는 흥분이 되어 기도하지 않기 쉽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게을리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너무 바빠 기도하지 못합니다(too busy to pray).”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한다(too busy not to pray).” 기도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을 보면 그는 늘 기도로 정무를 시작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랬을 때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기도를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루 삶이 기도로 시작하고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감사기도를 드리는 습관을 갖기를 바랍니다.

둘째,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14:24-27)

제자들은 큰 역사를 치룬 후 심신이 지쳐 있었습니다. 배가 육지에서 수리를 떠나자 바람이 불어 물결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거슬리자 노 젓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심한 풍랑과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배 안에 들어찬 물을 퍼내며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들은 혹시 배가 뒤집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메시아 왕국도 보지 못하고, 장관도 해보지 못하고, 이 밤에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실망과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별별 다 생각했습니다. 낮만 같아도 그 공포가 덜할 것입니다. , 그것도 새벽 4시경입니다. 이때에 119SOS를 쳐도 긴급 출동을 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자신들을 외면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 위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곧장 달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빵의 기적으로 인해 들떴던 마음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러셨는지? 아니면 물위를 걸으시고, 바다마저 복종시키시는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새벽 네 시 쯤에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14:25). 새벽 네 시에 호수를 건널 배가 있을 리가 없고, 또 역풍이 부니 배를 운행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난 줄로 알았습니다.

뱃사람들은 밤에 바다에 유령이 나타나면 배가 파선한다는 전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 제자들은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외쳤습니다. “유령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즉시 안심시켰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14:27).

우리말 성경에는 안심하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에는 “take courage”, ‘힘내라, 기운을 내라, 용기를 가져로 되어 있습니다. 두려움의 반대는 용기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을 들 때 누구를 막론하고 용기를 듭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상황 중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믿음의 용장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니는 헬라어로 에고 아이미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두려워합니까?

토끼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몹시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끼는 항상 자신이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고 합니다. 자기의 길을 벗어나면 죽는 줄로 생각합니다. 이를 안 사냥꾼은 그 길목에 덫을 놓아 토끼를 잡습니다.

사람도 토끼와 똑 같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 자기의 가치관, 자기의 행동 패턴을 결코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그 길이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고 행동을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생각이 굳어 배우려하지 않고, 배우지 않으니 성장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니 열매를 맺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합니다.

로버트 그린의 “50번째 법칙(The 50th Law)”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제한된 행동범위로 한정 짓는 일종의 감옥이다. 두려움을 떨쳐 낼수록 더 많은 힘을 얻고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포는 수많은 형태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면 두려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두려움은 단절에서 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왔습니다. 어떤 상황과 상황의 단절, 관계와 관계의 단절, 그 단절의 다음에 어떤 것이 올지 모르는 느낌이 공포와 두려움의 실체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것이 왜 두려운가요? 그와 헤어진 후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죽음 앞에 두려워합니까? 이는 사람들이 죽음의 후에 어떤 것이 올지, 그 후에 전혀 정보가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안심할 수 있습니까? 두려움은 원초적인 감정의 상태입니다. 공포는 전염병과 같아서 한 사람이 공포에 떠는 순간에 창궐을 게 됩니다. 두려움을 우리의 의지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이 두려움과 저항하게 되면 할수록 더 두렵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는 법칙은 단 하나, “나니곧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딤후 1:7).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지를 주관하시는 권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나를 보호하여 주시는 방패가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바울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보내주신 사랑을 알고 이렇게 찬양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2-37).

셋째,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는 예수님(14:28-36)

예수님이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자 성질 급한 베드로는 주님께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14:28).

주님은 베드로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오라”(14:29). 베드로는 파도가 치는 흉흉한 바다를 보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았을 때 바다를 뚜벅 뚜벅 걸어 예수님께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순간 파도가 치는 시퍼런 바다를 보았을 때에 두려워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외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14:30).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구원하신 후 그의 불신을 책망하셨습니다(14:31). 의심은 두려움을 생산하고 세상 조류에 휩쓸리게 합니다. 반면에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을 때 캄캄한 중에도 담대히 전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귀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현실은 현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현실은 현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부정은 부정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절망은 절망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현실은 미래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불신은 불신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절망은 희망으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정은 긍정으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불신은 믿음으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용기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을 바라보면 두렵습니다. 나의 처지를 보면 매사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러나 나니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면 불가능하게 보이고 두렵게 느끼던 것들이 가능성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그 상황을 뛰어넘어서 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역사 속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거성들은 모두가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본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패배로 몰아 좌절시키고 힘을 빼버립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막강한 민족들이 견고한 성읍에서 진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가? 불신과 두려움, 원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때 갈렙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3:30).

물론 거기에는 키가 장대와 같은 힘센 거인들이 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보다 훨씬 강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했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힘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강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시다. 그러니 올라가서 취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어서 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14). 그때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오도 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애굽군대의 추격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들의 이와 턱이 떨리는 소리 또한 커져만 갔습니다. 그들은 심히 두려워 요동했습니다. 그들은 습관을 좇아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14:11-12). 그들의 원망과 두려움은 시퍼런 홍해와 추격하는 군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중에도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

모세와 백성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백성과 갈렙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상황을 바라보느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현실을 바라보면 현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골리앗을 보았을 때 골리앗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습니다(삼상 17:31-49).

믿음이란 절망적이고 한계상황 앞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역사를 잠잠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때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싸우시고 일하십니다. 다윗은 이것을 깨닫고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62:1,2).”

이처럼 우리가 어떤 눈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미국의 어느 구두 회사에서 아프리카에 구두를 팔기 위해 시장 조사 팀을 보냈습니다. 한 팀이 보고하기를 시장성 전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는 아무도 구두를 신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두가 팔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팀의 보고는 시장성 무한대였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도 구두를 신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구두를 팔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관주의 자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긍정주의 자들은 어떤 가능성의 가지고 무한대를 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4:13). 바울 안에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주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강력한 힘과 능력이 그 속에 고동치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한 게 아니라 바울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순식간에 그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자 사방에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었습니다.

유대인 속담에 앞도 막히고 뒤도 막혔거든 위를 바라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땅을 보고, 세상을 보고, 나를 보고, 가정을 보고, 이웃을 보고 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그리스도를 뵙고 나서 나를 보고, 가정을 보고, 직장을 보고, 캠퍼스를 보고, 이웃을 보아야 합니다. 그 순간에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그 순간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 순간 기쁨과 찬송과 감사가 나옵니다.

바울은 위를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3:1-2). 위를 보면서 올라가면 끝가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밑을 보는 순간 두려워 추라합니다. 밑에서 아무리 받혀줘도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잡아주면 끝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위에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십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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