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13-28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를 소홀히 하면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합니다. 이 원칙은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신앙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그 후의 모든 신앙생활이 허사가 됩니다. 신앙의 기초 중에 기초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 기초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초석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기본은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요즈음 기본에 충실히 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는 신앙의 기본인 주님이 나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고백하라는 말입니다. 신앙고백이 없는 열심은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본문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제자의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인격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영생과 구원의 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1. 베드로의 신앙고백(16:13-20)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셨습니다. 이 지방은 헬몬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헬라와 로마 양대 시대에 걸쳐 많은 신전이 지어졌습니다. 특히 이곳은 이름이 말해주듯이 로마 황제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염소인 판신을 섬기는 판신전이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6:15). 이 질문은 지적인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을 묻는 질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인격을 아는 것이 영생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17:3). 다시 말해 예수님을 아는 바른 지식, 바른 신앙은 구원과 심판, 영생과 영벌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 신전이 많은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오셔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께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이러했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례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6:14).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이때까지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견해를 다 들으신 후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그리스도란 약속된 메시아, 곧 구원자란 뜻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그 본체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 황제 가이사나 판신이 주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신앙고백은 신앙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신앙고백은 구원의 기초요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이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는 구주와 죄인,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됩니다. 또한 이 신앙고백을 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베드로가 이런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

바울은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 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1:17). 지혜와 계시의 영은 겸손한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11:27).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데 그 교회는 내 교회’, 곧 예수님의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교회란 헬라어로 으로부터(에크)와 부르다(칼레오)의 합성어로서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교회를 세우십니다.

음부의 권세란 죽음의 권세, 사망의 권세,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2:14)를 뜻합니다. 이 말씀은 사단은 처음부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막으려고 공격하지만 결코 마귀가 교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같이 신앙고백을 한 자에게 천국 열쇠를 주십니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6:19). 이 말씀은 복음 전하는 자의 권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복음 전하는 자들을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복음 전하는 자가 복음을 전하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는 생사여탈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하는 이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만큼 특권이 있는 반면 책임 또한 큽니다. 예수님은 아직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복음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16:20).

2. 예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시는가(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16:21). 이 말씀은 고난의 메시아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언의 성취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을 통해 주의 주가 되시고 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을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는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라메네(Lamennais)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유혹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거칠고 강렬한 육체적인 욕망, 둘째,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교만, 셋째, 격렬하고 불순한 이기심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라고 했습니다. 나란 존재는 거룩함과는 너무나 먼 존재입니다. 나란 존재는 추하고, 정욕과 자기 자랑과 교만과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의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죄 문제입니다. 죄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합니다. 죄는 더럽고 추한 죄의 세력에 지배받도록 합니다. 죄의 세력은 너무 강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이 죄의 늪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미워하면서도 원하지 않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즐기고, 강렬한 육체적 욕망, 높이고자 하는 교만, 격렬하고 불순한 이기심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로부터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죄의 대가는 곧 죽음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9:22)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양이나 염소 등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는 장차 올 그리스도의 속죄를 위한 예표로 그 효과는 일시적이요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 양을 잡아 피 흘림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독생자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하심으로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당하실 수난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하나님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꼭 예수님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신가, 다른 것도 그리스도, 구원자가 될 수 있지 않는가? 반응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이외에도 그리스도, 구원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목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판신이 자신들의 구원자로 생각했습니다. 농경을 하는 사람들은 바알이 자신들의 구원자로 생각했습니다. 농경과 목양이 잘 되면 함께 어울려 진탕 사육제를 벌였는데 이때 등장하는 것이 쾌락의 신 비너스입니다. 그리고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 로마 황제를 구원자로 생각했습니다.

요즘도 이전과 동일합니다. 요즘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맘몬, 돈과 권세, 그리고 쾌락입니다. 사람들은 돈이면 다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결코 인생의 목표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권세가 인생의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권불십년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권 때 잘 나가던 원세훈씨가 기소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를 살 수는 있지만 단잠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돈의 한계입니다. 권세와 쾌락은 순간적인 기쁨을 줄지는 모르지만 영원한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인 의, 이웃과의 화평,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희락을 줍니다(14:17).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요즘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사회에 만연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절대입니다.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상이 교회에 들어와 복음을 상대화시켰습니다. 상대적인 데에는 힘이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 저것보다는 복음이 좀 낫다는 상대적인 생각, 이 종교도 좋고 저 종교도 좋다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의 절대성과 유일성에 구원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요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곳에 구원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자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3.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16:22-28)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깜짝 놀라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16:22). 그러자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돌이켜 보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16:23).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 속에 사단의 유혹이 들어 있음을 아시고 단호하게 이를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하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좀 더 쉽게, 좀 더 편하게, 고난 받지 않고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사단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자기 부인은 내 생각과 주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에 주님의 뜻과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뜻을 앞세우고 자기 생각을 앞세웁니다. 자기 고집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자기 뜻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고, 자기 고집보다 주님의 생각과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사명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사명의 십자가는 곧 소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소명의식이 없으면 동물에 불과합니다. 사람과 동물과의 차이는 소명이 있는가 없는가입니다. 소명의식은 사람을 사람답게 합니다. 소명의식은 인간을 역동적으로 살도록 합니다. 소명의식은 영광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소명의식은 우리를 결코 타락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명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사명은 희생의 양에 비례합니다. 사명에는 반드시 고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때 영광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명의 십자가를 져야 할 이유는 목숨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16:25-26).

사람들은 자기 생명에 대해 애착심이 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안 죽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다 죽습니다. 우리는 결국 죽게 될 생명을 가지고 살고자 발버둥치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단 한번 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을 내게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명을 한 알의 밀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사는 자는 결국 자기 생명을 잃고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고귀한 목숨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면 자기 생명이 보존되고, 그 과정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심판주요 영광의 주로서 그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에 오십니다(16:27).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합니다. 그 때 모든 악한 자들을 멸하시고 세상의 모든 불의를 제하십니다. 또한 진리를 좇아 의롭게 산 이들에게 상주시고, 욕심을 좇아 자행자지한 자들에게는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이들은 마음에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16:28).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생명의 구주요 참 경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가 이 시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끝까지 좇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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