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라(마7:1-6)

조회 수 4680 추천 수 0 2012.11.23 02:35:14
제임스 맥도날드는 ‘축복받는 삶을 위한 5가지 습관’에서 비방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비방은 어떤 사람에 관해 부정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대개 비방하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고 아끼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비방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알지 못하는 맹점을 갖고 있습니다. 공기가 우리 주위에 있지만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비방을 삼가야 합니다. 비방 속에는 시기와 질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악평하는 언어를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악평은 좋은 것을 좋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점을 좋게 여기기보다 나쁘게 여기는 좋지 못한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싫어하면 무조건 악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남을 악평하는 사람은 자신까지도 악평합니다. 

또 하나는 원망하는 언어를 삼가라고 했습니다. 비방과 원망과 악평은 결국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남을 비판하고 악평하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마 7:1-2). 

마태복음 7장 1절을 보겠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비판’이란 말은 헬라어로 크리네테(κρίνετε)로, 이는 부정과거로 일회적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최종 심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재판관이 결정적이고 후회할 수 없는, 전혀 틀리지 않은, 완벽한, 그리고 마지막인 최후의 판단과 형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요즘 군사독재 시절에 판결했던 판결들이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1991년 5월 8일에 당시 전국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씨가 분신자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남긴 유서를 강기훈씨가 써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기훈씨가 법원에서 3년 6개월 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의 재심에서 혐의 없음으로 최종 판결이 났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면 완전무결해야 합니다. 특히 법관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비춰서 어떤 외압과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벗어버리고 판결하여야 합니다. 자기 기준을 떠나서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드러난 현상만이 아닌 그 동기도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남을 볼 수 있습니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판은 완전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하신 하나님도 인간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1-11절을 보면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개 끌듯이 끌고 와서 군중 가운데 내동댕이치며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여자에게 돈을 던져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그들은 이 여인을 정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여인이 간음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 죄 없으시고 완전하신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마땅히 정죄하여야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죄인들끼리 그녀를 비판하고 정죄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양심에 찔려 돌을 놓고 모두 슬금슬금 뒷걸음질하여 빠져나갔습니다(요 8:9). 그들은 자기 자신의 거울로 비춰볼 때에 의인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하나님의 거울인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보니 자신들도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여인과 같은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에 자기 스스로 의인인 양 생각할 수 있지만 똑같은 동일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남을 판단합니다. “저 친구 안 돼, 저 친구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상대방을 정죄하고 돌을 던지고 소망을 끊어버립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에는 자기 자신이 의인이 된 것처럼 기분 좋고 스트레스가 풀릴지 모르지만 그 순간 인간 상호간에 신뢰와 사랑의 관계성이 깨집니다. 

독일의 사화학자 마틴 부버는 ‘나와 너와의 만남’이란 책에서 현대인들의 최대 위기는 엇갈림, 관계의 위기라고 했습니다. 왜 인간관계가 엇갈리고 관계 위기일까요? 이는 무분별한 비판과 비판의 태도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되면 그 사람도 안 듣는 데서 나를 비판합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한다는 것은 결국 드러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7장 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남을 비판하는 사람, 남을 정죄하는 사람, 은근히 자기 의를 자랑하는 사람, 자기 자신의 추함과 악을 숨기는 사람은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습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 자신의 두 손가락은 상대방을 향하지만 세 손가락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약점보다 장점을 보기 좋아하고, 남을 흉보기보다 남을 칭찬하기 좋아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설령 그 사람이 비판받을만한 짓을 하였다 할지라도 비판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정죄와 비판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제자들은 수준 높은 산상보훈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말씀의 잣대로 남을 비판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향한 말씀,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 자기에게 적용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남의 약점을 드러내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상대방을 비방합니다. 자기의 불의를 의로 바꾸고자 전자우편(e-mai), 휴대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등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이런 사람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해 둔감한 사람입니다.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강아지가 겨 묻은 강아지를 보고 나무란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속담에 “가랑잎이 솔잎 보고 바스락거린다”고 하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가랑잎과 솔잎 중에 어느 쪽이 더 요란합니까? 자기 허물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의 허물을 탓합니다. 이는 남의 허물을 말하여 자기의 허물을 덮으려는 심리적인 동기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의 허물을 잘 보는 사람은 자기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조선왕조 야사에 이성계가 무학 대사를 처음 보는 순간 하도 못 생겨서 “당신의 상이 꼭 돼지상 같구려” 했습니다. 얼마나 기분 나쁜 소리입니까? 그러나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부처님 상이군요” 했습니다. 이성계는 “아니 나는 당신에게 돼지 상이라 했는데 어찌 당신은 나를 부처 같다고 하는가?” 물었습니다. 

그 때 이런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누구나 자기 얼굴 생긴 대로 남의 얼굴을 봅니다.” 즉 당신의 얼굴이 돼지 같으니 내가 돼지 같이 보이고, 나의 얼굴이 부처 같으니 당신의 얼굴이 부처 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의 허물이 많이 보이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허물이 자꾸 내 귀에 들리면 이것 또한 내게 문제가 있습니다. 파리가 왜 꾑니까? 더러운 곳에 파리가 꾑니다. 내가 깨끗하면 결단코 남의 허물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비판하고 남의 약점이 들려온다는 것은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를 비판하고자 할 때 정면으로 비판하지 말라. 그것은 남에게 창피를 주는 것이다. 또 사람이 안보는 데서 남을 비판하는 것은 더 나쁘다. 그가 말하는 것을 모른척하라. 더 중요한 것은 아예 비판하는 사람을 보지 말라. 허물이 될 이야기는 듣지도 말고, 비판해야 할 이야기는 기억도 하지 말라. 그리고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하라. 이것이 제일 아름다운 것이다.” 

2. 먼저 네 눈 속에 티를 빼라(마 7:3-5). 

예수님은 남을 비판할 수 없는 이유를 풍자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3-4절을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 티와 같다면 자신의 결점은 들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하지만 남의 허물과 실수는 잘 봅니다. 그래서 상한 심정을 가지고 쪽집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어찌하든지 남의 눈의 티를 빼려고 애를 씁니다. 사실 눈의 티를 뺀다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침착성과 섬세함과 인내심과 애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눈의 티를 빼다가 티를 빼는 것이 아니라 눈을 빼어 봉사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남의 눈의 티를 빼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5절을 보겠습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지 않고 남의 눈의 티를 빼려고 하면 외식하는 자가 됩니다. 외식주의자의 특징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내면의 변화가 없고 형식만 있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없고 모양만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떤 형식과 외식의 틀 안에 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자기에게서 찾으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만 다른 데서 찾고자 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확대됩니다. 자아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찾습니다. 반면에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서, 외부에게서 찾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아파하고 기도하고 회개합니다. 반면에 미숙한 사람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우리는 먼저 편견의 들보, 그릇된 가치관의 들보, 그릇된 이즘과 사상의 들보, 쾌락의 들보, 불신과 시기심의 들보, 미움의 들보, 자기 이기심의 들보, 안일의 들보를 빼고 남의 티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에 대하여서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서는 관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덕목은 젖은 눈, 꿇는 무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젖은 눈은 자기 죄를 아파하고 회개하는 삶이요, 꿇는 무릎은 말씀 앞에 복종하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남을 흉보고 정죄하기보다 남을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칭찬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행복학(happiology)의 원리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칭찬하면 행복 지수는 지금의 행복지수보다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는 성도를 칭찬하고, 성도는 목사를 칭찬하고, 가정에서는 부부가 서로 칭찬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칭찬하고, 친구들끼리 서로 칭찬하고, 직장 동료들끼리 칭찬하고, 상사와 부하가 서로 칭찬하면 그 가정과 사회와 직장과 교회는 물댄 동산이 됩니다.

3. 분별력을 가져라(마 7:6).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무 것도 분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좁은 문과 넓은 문,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해 건전한 비판을 해야 합니다. 성직자와 학자와 언론은 건전한 비판을 해야 합니다. 

병든 것은 병들었다고 건전한 비판을 해야 합니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남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기에 힘쓰다 보면 무분별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형제의 죄도 받아들이고, 세속주의도 받아들이고, 이단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이렇게 될 때 무질서와 혼돈이 생기고 사단의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영적인 분별력을 갖도록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거룩한 것’ 과 ‘진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개는 당시에 썩은 고기를 먹는 부정한 짐승이요, 돼지는 율법에 금지된 부정한 짐승이었습니다. 개는 음란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음란한 사람을 일컬어 개들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개는 질서가 없고 싸움의 상징으로 봅니다. 그래서 질서가 없으면 ‘개판 5분전’ 이라고 합니다.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반복하여 죄를 짓는 사람을 일컬어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돼지는 먹고 놀기만 하고 더러운 곳에서 사는 동물의 대표입니다. 이처럼 돼지나 개는 더러움과 부정의 상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도덕하여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영접하지 않습니다.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고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진주와 같이 거룩하고 보배로운 말씀을 주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말씀을 주면 마치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발로 짓밟아 버리고, 도리어 진주를 준 사람을 먹지 못하는 진주를 준다고 달려들어 물어뜯습니다. 돼지에게는 진주가 아니라 구정물을 주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을 보면 예수님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복음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의 한 여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복음을 이방 여자에게 전할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 

여인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며 예수님께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네 믿음이 참으로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양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존경받고 섬김 받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남을 약점을 비판하기보다 그 약점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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