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 46 강(18:24-28, 19:1-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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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모든 영역의 기초가 됩니다. 힘은 사고 영역과 언어 영역, 그리고 구성 영역 등 다양한 영역과 더불어 이루어집니다. 이 힘의 작용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면 다른 모든 영역에도 증폭되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현상을 공명현상이라고 합니다.

힘은 물리적인 힘과 경제적인 힘, 그리고 영향력의 힘이 있습니다. 영향력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힘인 영력이 있습니다. 영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이 힘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힘은 대결에서 나타납니다. 힘이 있으면 힘이 아닌 것은 물러갑니다. 지난 수요일에 서울 시장 선거에서 20-40대의 투표의 힘은 한나라당을 침몰시켰습니다. 튀니지의 재스민의 힘 또한 중동의 민주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힘 앞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머리가 둘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는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능력 곧 power입니다.

말씀은 곧 능력이기 때문에 내 심령에 부딪히게 되면 때 거듭나 새 사람이 됩니다. 말씀은 곧 능력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아들이면 가치관이 변합니다. 슬픔이 변해 소망이 됩니다. 원수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이깁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요 1:1).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요 1:14). 예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입니다(요 14:6).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요 11:25). 예수님은 빛입니다(요 9:5).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막 2:5).

예수님이 계신 곳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혈루증 앓은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즉시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빠가 죽어 슬피 우는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셨습니다. 말씀은 믿는 자에게 영광으로 나타납니다.

본문은 바울의 에베소 개척사입니다. 바울이 전한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 두 해만에 에베소가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통해 그 비밀을 배워 배가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유능한 성경선생 아볼로(행 18:24-28)

사도행전 18장 24절을 보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로마 에베소와 더불어 3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유대인이 100만 명이 살았고, 50-60만권의 장서가 있는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주요한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히브리 종교와 헬라 철학, 그리고 로마 정치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세 가지가 공존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70 명이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이 있습니다. 이곳에 아볼로가 있었는데 그는 언변이 좋고 구약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을 통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세례 요한이 왔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까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습니다. 중생의 경험이 없었습니다. 서양 속담에 “학문이 없는 경험이 경험 없는 학문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해 박식해서 예수님의 관한 지식은 알았지만 거듭남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베소에서 담대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의 가르치는 것을 듣고 그가 구약 성경에 관해서는 박식한데 복음, 다시 말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 복음을 정확하게 풀어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학문이 깊은 성경 학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평신도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배울 정도로 겸손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인해 아볼로는 영적인 눈이 뜨여 예수님을 구주로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아볼로는 유능한 성경 선생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공중 앞에서 증언하니 유대인들의 그 누구도 그의 증거를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행 18:28).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의 눈이 뜨여 성경의 깊은 비밀을 알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둘째, 요한의 세례와 성령세례(행 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좀 이상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전). 그러자 그들은 성령의 존재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아볼로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던 때에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만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시 수리아와 아시아 지방에는 세례 요한파가 있어 예수님을 가르쳤지만 요한을 더 숭상하였습니다. 이 파는 금욕적이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러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관한 것만 들었지 예수님이 구주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금욕적이고 도덕적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참 기쁨이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도덕생활로 생각합니다. 남에게 해를 안 끼치고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도덕적인 죄만 죄로 여기고 영적인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이들의 특징은 죄사함이 없습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기 의가 강하고 얼굴이 굳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요한의 세례의 참 뜻과 성령 세례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 단계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후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성령세례입니다. 이 성령 세례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에게 주어집니다. 바울은 그들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행 19:5).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방언과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열 두 사람 쯤 되었습니다(행 19:7).

여기에서 말하는 방언은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이 아닙니다. 방언에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과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방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언어입니다. 반면에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입니다.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자 사도 바울의 메시지가 들렸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가 들리고 이해가 되니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언도 했습니다. 예언은 간증을 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나의 구주임을 간증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도덕생활이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육은 육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 3:3,5).

로마서 8장 5절을 보겠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성령을 좇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좇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삽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생각을 합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어떻게 하면 은혜롭게 살 수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이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물론 이들도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일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원보다 영적 소원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말씀과 기도로 힘과 지혜를 얻습니다. 이로 인해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과 평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우리가 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게 되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고전 12:3,31).

셋째, 두란노 서원의 역사(행 19:8-20)

사도행전 19장 8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은 늘 하는 식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습니다. ‘강론(spoke boldly)’이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공개 강의를 하였음을 말합니다. ‘권면하다(arguing persuasively)’로 설득시키려 다투며 증거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회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전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폭발적으로 복음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입니까?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리석과 같이 딱딱하고 버터 먹은 강아지 같이 빤질빤질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무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바울이 전하는 도를 비방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그들과 싸우지 않고 회당중심의 역사에서 두란노 서원의 대 전환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두란노 역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제자 양성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19장 9후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말씀을 전하면 항상 두 종류의 무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부류와 말씀을 듣고 반발하는 부류입니다. 그 전까지 바울은 말씀을 듣고 불순종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들을 열심을 다해 도왔습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더 반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상한 글을 띄워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을 회개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지치기만 했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불순종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에게서 떠나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제자 몇 사람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는 말씀을 사랑하는 몇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제자양성의 대전환이었습니다. 바울은 무리 중심에서 제자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제자는 배우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겸손합니다. 바울은 이들을 중심으로 성령의 그릇을 이루었습니다.

배우는 마음이 없는 이들과 싸우는 것은 마치 젖은 장작을 부시 돌로 태우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것은 힘을 소모할 뿐입니다. 불이 붙은 장작 즉 현재 소원을 가지고 말씀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제자 양성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들 심령에 불이 붙으면 이들 주변에 있는 젖은 장작들이 말라서 불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들이 미국과 유럽의 캠퍼스를 복음으로 불태우는 캠퍼스의 작은 불씨들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본래 헬라 철학자들이 모여서 수사학과 철학 등을 가르친 곳입니다. 바울은 이 서원을 낮잠 자는 siesta(11시-4시) 시간에 세를 내어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바울은 두란노서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이 년 동안 날마다 강론(discussion)했습니다. 그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국경일이든 명절이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말씀을 가지고 각 사람을 각기 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매일 온힘을 기울여 그들을 도왔습니다. 그는 삼 년 동안 눈물과 겸손과 인내로 각 사람을 가르치고 훈계했습니다(행 20:31).

그는 지식전달이 아닌 인격과 인격이 부딪히는 교육을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제자들과 깊은 신뢰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두란노 서원 역사는 한마디로 조용한 일대일의 제자 양성 역사입니다. 당장에는 눈에 띄게 변화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불꽃이 2년 후에 에베소를 집어 삼켰습니다.

바울의 사역의 원리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선택과 집중의 원리”입니다. “선택과 집중”은 연구관리(project management)를 할 때 많은 프로젝트 중에서 몇 가지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먼저 선택하여 그 선택된 몇 개의 프로젝트에 모든 예산과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 7차 교육 과정 또한 선택과 집중입니다.

바울의 선택과 집중은 성경에서 나온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25년간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무리들 가운데서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사도로 키우시기 위해서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집중적으로 투자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12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되어 사도들이 되었고, 세계 복음화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사랑하고 소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제자 양성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두란노 제자양성 역사는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행 19:10후). 이곳을 통해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등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계 1:11).

루마니아의 선교역사를 보면 철저한 제자 양성의 역사입니다. 김다윗 선교사는 루마니아 단 목자를 중심한 8명의 목자들과 매일 새벽 6시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기도 후에는 함께 영어 공부를 하고 모닝커피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기를 5년간 했습니다. 이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매일 했습니다. 이들의 내면이 복음으로 뜨거워지자 이를 견딜 수 없어 다른 형제, 자매들을 초청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김다윗 선교사가 처음부터 이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몇 백 명을 모아놓고 예배를 보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되는 듯 했지만 점점 복음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많아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리들을 중심한 역사에서 단 목자를 중심한 역사로 전환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셔서 바울의 앞치마나 손수건을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나가고 악귀도 물러갔습니다. 이를 본 스게와 제사장의 일곱 아들이 이를 따라 행하다가 마귀에게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 예수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마술책을 가지고 와서 모두 불태웠습니다. 불태운 책의 값을 계산하니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은 오만은 오늘날 약 15억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저자는 이 역사에 다음과 같이 주를 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에베소 지방은 마술과 마귀가 도시를 지배했습니다. 마술이 사람들의 영혼과 사상과 생각을 지배했습니다. 마술이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파되었을 때 말씀이 힘이 있고 흥왕하여 이를 모두 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어떤 세력도 파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마귀의 세력도 파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빌 2:16). 말씀은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웁니다.

오늘날에는 육신주의와 물질주의, 이기주의가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육신주의, 곧 쾌락주의는 거대한 문화를 형성하여 믿는 자들을 유혹합니다. 쾌락이 가정을 파괴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파괴시킵니다. 이런 세력은 성난 노도와 같이 우리를 삼킬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살아서 이런 사상과 세력을 파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롬 1:16). 말씀은 보이지 않게 조용히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치료하는 광선이 되어 분노로 패이고 굽어진 마음을 치료하여주십니다. 말씀은 능력이 있어 절망과 좌절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말씀은 역사의 원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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