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3강왕되신예수님

조회 수 2624 추천 수 0 2012.07.14 06:41:38
메시지 제 3 강 (마태복음 2:1-11)

경배 받으실 왕 예수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2).


4월 중순에 접어들자 농부들의 일손도 바빠집니다. 이제 캠퍼스도 중간고사로 인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농가월령가 3월령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3월은 늦봄이나 청명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 온갖 꽃 피어 나고 새소리 갖가지라.”
세상에는 기쁜 소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대의 석학이었던 동방박사들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만난 동방박사들과 같이 벅찬 감격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1.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동방박사들(마 2:1-2,11)

만왕의 왕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시대 배경은 헤롯왕이 통치하는 시대였습니다(마 2:1전). 헤롯은 간교하고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약관 25세에 갈릴리의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에게 아부를 잘 해서 유대의 왕이 되어 무려 40년간 통치했습니다(주전37-주후4).
그는 의심이 많고 잔인하여 왕권을 찬탈할 가능성이 있는 정적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그는 심지어 아내와 아들들까지 죽였습니다. 이런 포악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만왕의 왕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페르샤에서 먼 4,000리길을 마다않고 과감하게 순례의 길을 나선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저자 마태는 이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라(Behold),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K.J.)”(마 2:1후). 동방에서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동방박사들을 페르사의 제사장 귀족 계급이요,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미래와 시대의 징조를 찾는 당대의 석학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오늘의 지식인들과 달리 지식을 삶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탐구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것은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메시아 구주를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 2:2).
경배란 영어로 worship, 예배 대상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의 첫자리에 예수님을 최고의 존엄과 가치로 모시어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첫 자리에 무엇을 두고 있습니까? 명예? 권세? 물질? 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존엄과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자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박사들은 메시야가 예루살렘 궁전에서 탄생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들레헴 시골 동네에서 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이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그들은 말구유에 누워있는 예수님을 보고 실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영적인 눈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의 얼굴로부터 비취는 참 빛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아기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한 구주이시오, 온 세상을 다스릴 만왕의 왕이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았습니다(사 9:6). 그들은 이 아기에게서 하나님의 겸손과 온유함과 거룩함과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정성껏 준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왕을 상징하고 변함없는 절대성을 상징합니다. 황금을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은 왕이시오, 그 분께 변함없이 충성하고 복종하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유향’은 대제사장되신 예수님께 드리는 예물로 순결과 기도의 표시입니다. ‘몰약’은 방부제 역할을 하는 향유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께 대한 헌신과 희생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변함없는 충성과 복종과 순결과 기도와 헌신과 희생을 드렸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예물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 드릴 보배합은 믿음과 사랑과 겸손입니다. 기도와 회개입니다. 그리고 정성을 드려 주님께 올려드리는 헌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진심이요 기도입니다. 우리가 모든 진심을 바쳐 아기 예수님께 보배합을 드릴 때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첫째, 그들은 영적인 소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소원이 있습니까? 지금 대학생들은 영적인 소원이 없습니다. 오직 내일의 취업을 위해 스팩을 쌓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었습니다.
민수기 24장 17절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박사들은 이 말씀을 기초로 끊임없이 별을 보는 생활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 문제에 얽매어 땅을 쳐다보고 살 때 그들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꽉 막힌 사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세계, 진리의 세계를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위를 생각하고 하늘을 우러러 별 보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드디어 메시아의 별을 찾았습니다.
둘째, 그들은 영원한 가치에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그들은 별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먼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진리의 별을 따르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잘 발달되지 않아 여행한다는 것은 위험과 모험을 각오해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또한 밤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내면에 파고드는 많은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어려움과 염려와 의심을 극복하고 진리의 별을 따르기로 결단했습니다. 이 결단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려면 결단이 필요로 합니다. 결단에는 희생과 아픔이 있지만 그 뒤에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모세는 나이 40이 되자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났습니다(행 7:23). 그러나 모세는 고민해야 하였습니다. 현재 모세는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히브리인으로 돌아간다면 이 모든 영광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모세는 여러 날 밤을 새며 그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에서 고민했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것인가, 아니면 노예백성인 동족 편에 서서 고난의 길을 갈 것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자기 뜻대로 살 것인가? 히브리 백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바로의 왕자로 살 것인가?
물론 바로의 왕자로 사는 것이 당시에는 축복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긍지와 그 영원한 가치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왕자의 영광을 버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결단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이 결단으로 그는 위대한 모세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없습니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를 바라보는 영적인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진리를 위해 자기를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결단에는 아픔이 따르지만 그에 따른 영광과 복은 비할 데 없습니다.

2. 소동하는 해롯 왕(마 2:3-8)

별을 따라오던 박사들은 긴 여행으로 너무 피곤하여 잠시 졸았는지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헤롯궁에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는지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마 2:3).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할 그들이 도리어 소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오랜 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왜 소동했을까요? 헤롯은 왕권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헤롯이 소동하자 정국이 불안하여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메시아를 맞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한 변화보다 그리스도가 없는 이대로의 현상유지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하려면 변화를 각오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옛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는 손해를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회개해야 합니다.
간교한 헤롯은 소동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서 탄생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미가서 5장 2절을 인용하여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머리로만 입으로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헤롯은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사실을 알자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습니다. 그리고 보내면서 자기도 경배할 터이니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함이었습니다. 헤롯은 거짓의 아비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습니다. 사단은 헤롯을 이용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지만 사단의 궤계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박사들이 꿈에 지시하심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마 2:12).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취하겠습니까? 평소에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헤롯과 유대인들과 같이 주님의 재림 시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게 됩니다. 그러나 준비가 된 사람들은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 아멘!” 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3. 크게 기뻐하는 동방박사들(마 2:9-10)

첫째, 기뻐하는 동방박사들

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에 문득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나타나서 마침내 아기가 계신 곳의 집에 멈추었습니다. 그들을 인도하던 별이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멈추자 그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10). 기뻐하다는 영어 성경에 ‘overjoyed’로 기쁨이 흘러 넘쳤다는 뜻입니다. 이 기쁨은 최상의 기쁨이요, 영혼의 참된 기쁨을 말합니다. 이 기쁨은 경배의 대상을 찾은 데서 오는 기쁨을 말합니다. 당시 지성인들은 근엄하고, 냉정하여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기쁨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살맛이 없다는 것은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쁨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기쁨을 찾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명품족임을 보이는데서 기쁨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명품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짝퉁이라도 들고 다니고자 하기 때문에 짝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데서 기쁨을 찾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게임에 몰두하여 기쁨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재산이 점점 불어나는 데서 기쁨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연봉이 오르는데서 기쁨을 찾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찍은 국회의원이 당선되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많은 의석을 찾은 데서 기쁨을 찾는 이도 있습니다.
‘기쁨’과 ‘재미’는 엄연히 다릅니다. ‘재미’는 찰라적이고 육감적입니다. 반면에 기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합니다. 다시 말해 기쁨은 경배의 대상, 예수님을 만나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 overjoyed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을 보면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를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공간이 채워지지 않을 때에 진정한 기쁨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별을 발견하여 자기 이름으로 별자리를 정할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각종 별자리를 발견하여 연구비를 받아가며 아무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진리의 왕 구세주를 만나기 전에는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고독한 여인이요, 소외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다섯 남편과 이혼한 상처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 살고 있는 여인도 참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그녀의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남자도 그녀의 경배의 대상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정오에 물 길러왔다가 경배의 대상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가 경배의 대상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물동이를 집어던지고 동네로 들어가 외쳤습니다. “여러분, 내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경배의 대상을 만나야 합니다. 경배의 대상 예수님을 만날 때 나의 영혼은 기뻐 춤추게 됩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 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찬송가 285장).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였는지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 눈이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7-148).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새벽이 빨리 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빨리 일어나서 말씀에서 나오는 향기, 말씀에서 나오는 꿀맛을 향유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 그는 심오한 영적 세계를 알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둘째, 별을 따르는 동방박사들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먼 동방에서 예루살렘에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별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에 멈췄을 때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이란 별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의 별은 성령과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오늘날은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사상과 그릇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미혹하는 영들이 많습니다.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물질주의는 쾌락주의를 낳습니다. 쾌락주의는 인간을 못쓰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단들이 우리를 미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며, 힘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또한 성경말씀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등불이 되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시 119:105).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딤후 3:15). 말씀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와 힘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견고하게 하여 주십니다.

4.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마 2:6)

첫째, 왕 되신 예수님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마 2:6전). ‘다스린다’란 왕을 말합니다. ‘왕’이란 곧 메시야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만백성으로부터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모든 악하고 추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생명과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머리를 파하시고 영원히 다스리기 위해 오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둘째, 목자 되신 예수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6후). 이 말씀은 내 백성을 목양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목양,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진 말입니까? 시편 23편을 보면 목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요한복음 10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목양이란 말보다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우리를 목양하십니다.
예수님은 때를 따라 생명의 말씀으로 목양하십니다. 쓸모없는 자를 끝까지 사랑으로 목양하십니다. 예수님은 병든 내면을 강건하도록 목양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목양하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목양을 받은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머리통을 파하시고 영원히 다스리기 위해 오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양들을 위해 희생하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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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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