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강(마태복음 3:1-1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이스라엘은 신구약 중간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비전도 없었고 회개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이르자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사역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의 사명은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역사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류 구원 역사의 새 장을 여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그의 메시지와 그의 삶, 그리고 그의 사명을 배워서 주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역사 환경을 만들기를 기도합니다.

1.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마 3:1-2)

마태복음 3장 1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예수님께서 구속역사를 준비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 때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유대 광야는 바위와 돌이 많고 독사가 살고 있는 요단강 양편에 위치한 거친 광야를 지칭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광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져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환경과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광야와 같은 캠퍼스, 광야와 같은 직장, 광야 같은 나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는 사람들이 듣기 좋은 미사여구가 담긴 말씀을 부드럽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한 번 믿어 보세요. 믿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의 메시지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적인 부패, 사회의 구조적인 악, 경제 분배 문제, 민생치안, 물가고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말씀을 전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증상치료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못합니다. 결핵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몸에 열이 난다고 해열제만 주면 됩니까? 약이 독하지만 원인 치료를 위해 결핵 약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회개란 무슨 뜻입니까? 회개란 제도나 사람을 바꾸는, 단순히 form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회개란 단순히 죄를 인식하고 슬퍼하고 고백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회개란 헬라어로 ‘메타노이테(μετανοειτε)’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회개란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회개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란 자기중심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란 옛 생활에서 새 생활로의 변화, 복음을 위해 살겠다는 의지적 결단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여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하여야 할 이유는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란 메시아가 오셔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행복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던 데서 사단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 꽁꽁 묶어서 다스립니다.
인간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무기력합니다. 든것 없이 교만합니다. 두렵고 불안합니다. 절망하고 반항적입니다. 정욕에 시달려 미친개처럼 쏴 다닙니다.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불신과 회의에 빠집니다. 미움과 시기심으로 가득합니다.
요즘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천국이 없어 우거지상을 쓰고 다닙니다. 마음에 천국이 없어 원치 않게 처자식을 괴롭힙니다. 마음에 천국이 없어 낮은 자존감으로 자신을 학대합니다. 마음에 천국이 없어 육신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삽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온유와 사랑과 화평과 공의입니다. 그 때 우리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데서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운명주의와 열등감에 시달리던 데서 물찬제비처럼 힘찬 삶을 살게 됩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희망찬 삶을 살게 됩니다. 쾌락적이고 육신적인 삶을 살던 자가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미움과 시기심이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이 넘칩니다. 비전 없이 직장을 다니던 삶에서 직업+사명의 소명의식을 갖고 분명한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희망의 메시지, 생명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회귀성의 존재입니다. 인간은 고향을 사모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곡 중에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가 있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인간은 본향을 상실했기 때문에 유리방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여야 합니다.

2. 주의 길을 곧게 하라(마 3:3).

마태복음 3장 3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은 이러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사 40:3-4).
세례 요한은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선구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과 불신으로 메시아를 영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왕이나 대통령이 어느 지역을 방문하게 되면 사전에 미리 가서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만왕의 왕 메시아가 오셔서 일하실 수 있도록 역사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들을 낮게 하고, 굽은 것을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이 평지가 되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골짜기와 높은 산과 언덕과 고르지 않고 험한 곳은 우리 내면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골짜기는 패여 있습니다. 우리 내면은 운명의 골짜기, 패배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로 패여 있습니다. 그리고 미움과 불신과 증오로 내면이 패여 있습니다.
사람이 골짜기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기력하고 자기 자신을 자학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미움의 눈초리로 사람과 사회를 저주하고 냉소적입니다.
또 각종 산이 있습니다. 산의 특징은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 내면은 정도 차이일 뿐 교만합니다. 우리는 든 것 없이 교만합니다. 교만에는 겸손을 가장한 교만도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은근히 내세우고 남을 무시합니다. 언덕은 산에 비해 낮습니다. 언덕 같은 마음은 산과 늘 비교하여 비교의식으로 자기 불의에 잘 빠집니다.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 빠져 나는 해도 안 된다고 자신을 자학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은 험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내면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라고 했습니다(막 8:21-22).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소리’는 뜻과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름도 빛도 없이 메시야의 선구자로서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마태복음 말씀이 들려져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서 다스리도록 기도합니다.

3. 낙타털 옷을 입고(마 3:4)

사명을 감당하는 세례 요한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마태복음 3장 4절을 보겠습니다. “이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오늘날의 낙타 털옷은 Camel tex로 고급 옷입니다. 메뚜기와 석청은 자연식품으로 값비싼 음식입니다.
그러나 당시 낙타 털옷은 가공되지 아니한 것으로 광야에서 이불을 삼아 입는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메뚜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모습은 마치 엘리야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세례 요한의 생활은 아주 단순하고 검소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성전에서 마음껏 먹으며 좋은 가운을 입고 좋은 환경 속에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검소하게 시대와 구별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금욕적인 삶이 아니라 사명을 중심으로 한 삶입니다.
생활인은 생활을 중심으로 살지만, 사명인은 사명을 중심으로 삽니다. 세례요한은 약대털옷 대신 비단옷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메뚜기 대신 부드러운 음식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말씀을 붙들고 있는 그대로 충성했습니다.
그는 사명을 첫째로 여겼습니다. 생활인들은 먹고 입고 사는 것을 첫째로 여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살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명인은 사명을 중심으로 삽니다. 하나님 나라가 목적이 됩니다.
바로 그의 능력은 그의 단순한 생활에서 나왔습니다. 말만 잘하고 생활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고통분담을 말하면서 자신은 땅 투기하고 부정을 합니다. 맥꽈리를 통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쥐어짭니다. 그 말이 감동을 주려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생활이 곧 산 메시지입니다.

4.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 3:5-10)

세례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를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부담스럽다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마 3:5-6).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미사여구가 담긴 아름다운 말보다 단순하지만 회개의 복음, 사죄의 복음입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정치, 경제 문제가 시급한 것 같지만 죄 문제의 해결이 더 시급하고 우선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회개의 복음이요 사죄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운 말보다 내면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여야 합니다. 회개의 복음, 죄 사함의 복음은 사람들의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백성들이 요한에게로 나아오자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요한에게로 나아왔습니다. 왜 나왔을까요? 그들이 나온 것은 요한복음 1장 19-25절을 볼 때 세례 요한을 조사하기 위해 온 것 같습니다. 아니면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볼 때에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위해 온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온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죽을 지경에 이르면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러나 좀 살만 하면 예수님을 멀리합니다. 마치 사사기대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위선적이고 세속적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들이 나오자 사정없이 책망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종교지도자들로서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독사는 겉모양이 아름답고 유연합니다. 그러나 속에는 생명을 죽이는 무서운 독을 품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아름다운 가운을 입고 의롭고 경건한 척 하지만 실상은 백성들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악영향을 끼쳤습니다(마 23:13,15).
지도자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영적인 지도자의 행동은 양들의 생명을 좌우할 만큼 지대한 영향이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이중 생활할 때 자신도 모르게 양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마태복음 3장 8-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세례 요한은 책망만 하지 않고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들이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헛된 자부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그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요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배만 내밀고 폼만 잡는 헛된 자부심과 허세만 부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목자나 선교사와 같은 외적인 타이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혈통, 인간 조건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돌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오직 생활의 열매입니다. 열매를 보고 평가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나무는 속일 수 있지만 열매는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 그루 포도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좋은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만일 포도나무가 때가 되어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국에는 찍혀 불쏘시개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생명과 말씀과 사명 등 모든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정욕의 노예가 되어 밤거리를 헤매던 사람이 회개했다면 그런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기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회개했으면 실제적으로 주고 섬기는 생활을 하여야 됩니다. 틈만 있으면 눕던 사람이 회개했으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깨어 있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말로만 회개했다고 100번, 1000번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말보다 실생활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유대인들은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생각 때문에 심령이 꽉 막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몇 년 신앙 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나는 과거에 뭣을 했다는 인간 조건을 자랑하다가 열매를 맺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숨어 있는 헛된 교만과 근거 없는 프라이드를 회개하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필연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마태복음 3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심판의 임박함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심판이 어디에 있느냐 큰 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심판이 멀리 있는 줄 알고 자행자지합니다.
그러나 심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는 길은 진실한 회개와 믿음, 그리고 기도생활과 전도입니다.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 내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외적으로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마 3:11-12)

첫째,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백성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혹 그리스도가 아닌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눅 3:15). 이쯤 되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백성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메시야가 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을 메시아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인기가 절정에 올라갈 때 자신을 낮추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비하면 예수님의 신을 들기도 감당할 수 없는 비천한 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물세례를 주는 자에 불과하며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죄를 소멸하는 성령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증거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심판과 구원의 열쇠를 가지신 심판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심판 주로서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12). 요한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분수를 넘지 않는 위대한 사명인이었습니다. 그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존귀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으로부터 예수님을 주목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했습니다(요 3:30).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그의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여자가 난 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눅 7:28).
시대가 힘들고 어렵고 복잡할수록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죄를 자복하고 복음을 영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직업에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세례 요한과 같이 주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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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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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