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6강 큰 빛되신 예수님

조회 수 3208 추천 수 0 2012.11.23 02:31:10
2012년 마태복음(4:12-17) 

큰 빛 되신 예수님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6).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예수님은 빛이시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예수님은 길이시다’ 등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말씀합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핵심적으로 가장 잘 나타낸 말씀은 ‘예수님은 빛이시다’입니다. 
마태 저자는 예수님을 큰 빛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6).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참 빛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세례 요한과 마태가 ‘큰 빛’, ‘참 빛’이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세상에는 ‘작은 빛’과 ‘거짓 빛’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면 별빛과 달빛이 그 효력을 발할 수 없는 것처럼 큰 빛 예수님이 오심으로 작은 빛들은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거짓 빛들은 참 빛 예수님 앞에서 그 정체가 다 드러납니다. 본문을 통해 큰 빛 예수님을 만나 생명과 구원과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때를 따라 행하시는 예수님(마 4:12-14)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잡힘을 듣고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막 4:12).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히게 된 것은 헤롯 왕이 이복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자 그의 부도덕성을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석방을 위해 힘쓰셔야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물러 가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가 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마 4:14). 
예수님은 사회 현상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때가 있습니다(전 3:1).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갈 4:4).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에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을 보면 비로소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동안 능력이 없이 계시다가 그제야 비로소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뜻과 때보다 하나님의 뜻과 때를 따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당신의 뜻을 관철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말씀을 먼저 앞세우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물러가심은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의 메시야로 오셨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실 때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큰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걸쳐 거목이 됩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준비 없이 성급하게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고 매사 성공할 수 있습니다.

2.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마 4:15-16)

마태복음 4장 15-16절을 보겠습니다.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태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시고, 애굽으로 피신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시고, 그리고 가버나움으로 옮겨 공생애를 시작하신 모두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본문은 이사야서 9장 1-2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과 갈릴리는 흑암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의 최북단입니다. 그래서 이민족의 침입을 많이 받아 늘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민족이 혼혈화되었고, 종교와 문화가 이방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순수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유대인들은 갈릴리 지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땅은 밟지도 않았습니다. 유대는 그 쪽 사람들을 관리로 등용하지도 않았고, 개발도 하지 않아 빈부 격차가 심했습니다. 그들은 소외당하고 많은 무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한이 많았습니다.
성경은 그 지방을 ‘이방의 갈릴리’라 했습니다. ‘이방의 갈릴리’란 하나님이 없는 사회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방 세계는 한 마디로 우상이 난무합니다. 우상이 난무하는 사회는 육신적이고 쾌락적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보이는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 그들의 삶은 마치 흑암에 앉아 있는 백성과 같습니다. 흑암의 반대는 빛이 없는 세상입니다. 빛이 없는 흑암의 세계를 성경에서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어두운 곳에 살다 보면 어두움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죄와 어두움에 익숙한 사람은 빛을 받을 때 두려움이 생겨 빛으로 나오기를 싫어합니다. 또 모든 것을 감추려고 합니다.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제일 먼저 무화과나무 아래 숨었습니다. 이는 자기 자신의 죄악 된 모습이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빛으로 나오기를 싫어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 ‘죽음 안에 있는 존재’, ‘어두움에 속한 존재’라고 합니다. 
어두움에 속한 존재는 늘 초조와 불안으로 지냅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해 방황합니다. 자신의 밝은 자화상을 갖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위대함도 보지 못하고, 남의 위대함도 보지 못합니다. 젊음의 높은 기상과 기백이 없습니다. 늘 자신을 자학하고 부모와 가정과 사회를 원망하는 데 다 소진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세력에 지배당합니다. 죽음의 세력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입니다. 주로 ‘무’와 ‘허’자가 지배합니다. 무의미, 무기력, 무능력, 무표정, 무취미, 허무, 허탈, 허망 등은 죽음의 요소들입니다. 요즘 2040세대가 무와 허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무와 허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희망과 비전이 없습니다. 삶의 의욕이 없고 초조하며 불안한 삶을 삽니다. 
사람이 초조하고 불안하면 이를 잊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요즘 한국에 술 소비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취객이 늘어나 경찰은 취객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허무하게 되면 ‘한 번 죽으면 그만인 데...’라는 깊은 회의로 육신의 쾌락을 탐닉하게 됩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이 지옥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장차 지옥에 가게 될 뿐 아니라 현재 이미 지옥에 가 있는 고통을 맛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이는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 이후 남북이 분단되자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들을 멸시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 북이스라엘의 최북단인 단 지방과 남단의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금송아지를 숭배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 북이스라엘은 폭군들이 나타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아합 왕 시대에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아합 왕은 이방 여인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숭배하고 바알 선지학교를 세워 바알 선지자들을 키웠습니다. 
그 후 북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상에게 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 지방은 음란과 쾌락과 부정과 불법이 판을 쳤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강대국들의 말발굽 아래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없이 살고자하는 교만한 그들을 철저하게 낮추어 겸손하게 하였고, 고통 중에 메시아를 갈망하게 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들을 높이시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관광단지를 만들어 그들을 높이셨습니까? 하나님이 경제를 부흥시켜 그들을 높이셨습니까? 하나님은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지만 갈릴리에서 복음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서 가룟 유다를 빼 놓고 모두 갈릴리 출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을 받았기 때문에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을 받게 되면 모두 영화롭게 됩니다. 어느 캠퍼스든 제사장 캠퍼스가 되어 많은 주의 종들이 나오면 그 캠퍼스는 영화롭게 됩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왜 명문 대학이 되었습니까? 요한 웨슬리나 찰스 웨슬리, 그리고 케임브리지 세븐이 나왔기 때문에 유명한 대학이 된 것입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첫째, 큰 빛 예수님은 구원의 빛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창 1:3)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의 성품, 영광의 광채입니다. 이 빛은 원초적인 생명의 빛입니다. 이 빛에 의해 생명이 창조되었습니다. 이 빛은 영광의 빛, 예수님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을 보면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빛은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빛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이한 빛은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십니다. 
기이한 예수님의 빛은 치료의 광선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예수님께서 큰 빛으로 오심으로 어두움이 물러가고 사망 권세가 물러갔습니다. 절망과 무기력이 물러갔습니다. 대신에 희망과 비전과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이 시대를 바라보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희망과 비전이 생깁니다. 죄로부터 구원이 임합니다. 죽음에서 생명이 임합니다. 심판에서 영생이 임합니다. 큰 빛 예수님은 구원의 빛입니다.

둘째, 큰 빛 예수님은 참 빛입니다. 

참 빛의 속성은 어두움을 밝히고 생명과 소망을 주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하고 완전해야 합니다. 보편성과 유일성과 영원성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본질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면의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모양이 각기 다르듯이 우리 인생 문제도 사람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그런 인생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 되셔서 각 심령에 인격적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비추십니다. 예수님은 그림자가 조금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어두움의 근원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참 빛 예수님을 만나면 어두움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고 빛 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이 있는 반면에 거짓 빛이 있습니다. 요즘 가짜 빛이 많습니다. 물질과 쾌락은 참 빛을 가장한 거짓 빛입니다. 물질과 쾌락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구원이 있다고 호도하는 이단의 거짓 빛이 있습니다. 
2012년 6월 1일자 국민일보에 교회와 사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의 문제점을 일면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들의 집단에 들어온 144,000명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호도합니다. 여러분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고작 144,000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겠습니까? 그들은 거짓 중의 거짓 빛입니다. 이런 빛은 불나방입니다. 이단은 반드시 사라집니다. 이단은 20-30년을 넘기지 못하는 거짓 빛입니다. 큰 빛 예수님만이 참 빛입니다.

셋째, 큰 빛을 만난 사람들은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모세는 노예 백성으로 사는 동족을 볼 때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이 분노는 극기야 살인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미디안으로 망명생활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미디안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모든 희망을 상실하고 깊은 운명과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 때 실의와 좌절에서 영광의 광채가 빛나는 삶으로 변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데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만났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행 9:3). 그에게 부활의 영광스러운 생명의 빛이 임했을 때 그의 살기등등한 눈초리와 분노의 마음이 치료되어 은혜와 긍휼이 충만하고 밝고 빛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거지가 나옵니다. 그는 한 없이 운명적이었으며, 슬픔 자체였으며,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를 지배하던 운명과 슬픔이 사라지고 밝은 자화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전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 생명의 빛, 소망의 빛, 능력의 빛, 구원의 빛이 우리를 비추면 우리의 어두운 얼굴, 우리의 어두운 마음, 우리의 어두운 눈동자가 해맑은 얼굴, 절대 긍정의 마음, 그리고 맑고 밝은 마음의 창으로 변합니다. 죄와 죽음이 주는 모든 권세로부터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어 밝고 빛난 삶을 살게 됩니다. 불안과 초조가 물러가고 상처 받은 마음이 치료가 되고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정을 통하는 눈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매혹적인 삶에서 스마트하고 매력적인 삶으로 변화됩니다. 기쁨과 영광과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 큰 빛, 참 빛 되신 예수님의 영광의 빛이 저와 여러분에게 더욱 더 강렬하게 비추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회개를 전파하시는 예수님(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이르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흑암에서 큰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께로 나오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법을 바꾸고, 삶의 스타일을 바꾸고,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애통하고 죄를 분해하는 아픔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첫째, 욕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약 1:15).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권세에 대한 욕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와 권세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 욕자가 붙는 것이 문제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욕’을 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욕으로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말라기서 3장 7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은 십일조를 도둑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면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포함합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금융 실명제가 효과를 거둘 수 없고,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리면 금융 물질 문제가 투명하게 됩니다. 부정하고 도적한 돈을 가지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쾌락과 유행을 따라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돈이 모아집니다. 돈이 모아지니 저축하게 됩니다. 따라서 물질의 십일조는 삶이 투명하게 되고 부자기 되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는 근면하고 청렴한 크리스천들에게서 나타났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물질의 십일조 뿐만 아니라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하루 24시간 중의 2시간 40분은 주님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젊은 시절에 SNS 등에 시간 보내고 연애하고 술 마시는데 흥청망청하게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공하게 됩니다.

둘째, 온전히 믿지 않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온전히 믿지 않는 것은 전혀 믿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물은 0도나 99도나 물입니다. 아무리 데워도 100도가 되지 않으면 물에 불과합니다. 100도가 되어야 끓고 끓어야 액체가 기체로 변합니다. 온전히 100% 믿을 때에 중생의 체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믿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만 믿음이라도 온전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99%의 믿음에서 1%를 올려 100% 주님을 신뢰하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1%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1%의 불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믿는다고 하면서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 귀신도 예수님을 누구신지 잘 압니다. 그러나 귀신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알고도 행함이 없는 믿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욕을 회개하고 1%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을 회개할 때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영토가 아니라 통치를 뜻합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래 지금까지 마귀가 세상을 통치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에는 살인, 폭력, 행음, 시기, 미움, 질투, 간음, 분쟁, 거짓, 술수, 강포 등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불안하고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이 통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평화와 겸손과 공의로 통치하십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 공의 왕, 겸손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을 때에 어두운 자화상에서 밝은 자화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방황과 어두움에서 벗어나 역동적이며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의를 행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희망의 빛, 구원의 빛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생명과 은혜, 그리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기쁨과 생명이 약동하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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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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