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말고 낙심하지 말라(사7:1-14)

조회 수 2722 추천 수 0 2012.07.11 02:27:11
이사야서(7:1-14, 요절 7:4)

두려워말고 낙심하지 말라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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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거나 말씀하신 것은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입니다. 뻔히 이루어질 것 같은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인간의 지혜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바로의 군대로부터 구출해 낼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가르고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낼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바위를 쳐서 목마른 백성들에게 물을 마시게 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배고픈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를 공급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모든 일들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노예 백성들을 출애굽시킬 수 있었습니다. 목마르고 주린 백성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떡을 배부르게 먹게 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넘실대는 요단강을 갈라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너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철웅성 같은 여리고 성을 허물어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태양을 멈추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믿고 도전했습니다. 그 때 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백성들을 안전하게 정착시켰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들은 가방끈이 짧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5,000명을 먹일 수 없었고, 병자를 낫게 할 수도 없었고, 풍랑을 잠잠하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없었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이 이런 일들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을 때 한번에 3천명을 회개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각종 귀신을 내쫓고 병든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징조를 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삶에 위기가 닥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국가적으로 가장 위기의 때였습니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로서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하면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떨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의 삶에 어떤 환난과 핍박과 고난과 역경과 어떤 재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재난과 역경이 닥칠 때에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찾고 징조를 구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 말라(1-9)

1절을 보면 때는 남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전선을 펴서 남 유다 수도 예루살렘을 공략했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남 유다 왕 아하스는 유다의 12대 왕으로 20세에 왕위에 올라 20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B.C.735-715). 그는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몰록을 섬겼습니다. 그 외에 그는 산당을 짓고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왕하 16:1-4).

당시 국제 정세는 앗수르가 북방에서 신흥제국을 건설하여 세계를 제패하기 위하여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아람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을 맺고, 남 유다도 이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신흥제국인 앗수르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앉혀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괴뢰정권을 세우고자 했습니다(6).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게 되자 남 유다를 치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 예루살렘을 친다는 소식을 들은 남 유다왕 아하스와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혹이 다윗 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도다.” 삼림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게 되면 연쇄적으로 소리를 내며 모두 흔들립니다. 이처럼 왕이 전쟁의 공포에 불안하자 모든 백성들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공포와 불안에 떨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애굽과 앗수르로 이민을 떠나기 위해 예루살렘 공항이 초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하스 왕이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왕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태산이 무너져도 요동치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오히려 백성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지도자가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백성들과 똑같이 절망하고, 불안하여 두려워하면 지도자라 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백성들과는 뭔가 달라야 합니다. 가치관이 달라야 하고, 생각이 달라야 하고, 생각하는 자세가 달라야 합니다. 지도자는 위기의 순간에 백성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시고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때는 저물고 빈들이니 무리를 보내어 각기 무엇을 사 먹도록 하자”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당시 제자들의 형편과 주위의 상황을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형편을 넘어서서 불쌍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지도자는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서 책임감을 가지고 백성들을 도와야 합니다. 지도자는 믿음과 비전을 심어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포에 떨고 있는 아하스 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위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삼가며 종용하라.

우리가 살다보면 개인 개인에게 어려운 문제들이 있게 마련이고, 가정에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라 할지라도 구원 받은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또 사회와 국가에 재난과 위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요즈음 한반도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세계의 모든 이목이 한반도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강경하게 유엔 결의를 이끌어내어 북한을 폭격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미국이 동해 상공에서 핵실험 과정에서 분출된 방사능 물질을 탐지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에 위기를 불어넣어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 우리에게 삼가며 종용하라고 하십니다. 삼가며(take heed) 종용하라(be quit)는 것은 조용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군중심리에 이끌려 호들갑을 떨며 동네방네 다니며 떠들고 다닙니다. 부정적인 말과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를 깨려고 하는 자들이요 불행과 멸망을 좇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삼가며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인의식을 갖은 믿음의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혼인 잔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그때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의 순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는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말로 잔치집의 흥을 깨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혼인집에 기쁨을 샘솟게 했습니다. 누가 주인입니까? 종용히 삼가 기도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잔잔한 호수와 같이 평화와 안정과 기쁨과 자유가 있습니다.

둘째로, 두려워 말며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전쟁의 공포로 바람에 삼림이 흔들리듯이 두려워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두려워말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북 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을 맺어 쳐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두렵고 낙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국은 북한 핵실험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진 사람들은 두렵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수십만 주의 주식을 가진 사람들과 수백억 원의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주식이 폭락하고, 부동산 값이 추락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자기중심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 남 유다를 치고자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불에 다 타버린 부지깽이는 연기만 요란할 뿐 화력이 없습니다. 물 한바가지만 부어버리면 순식간에 꺼져버립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람과 북 이스라엘은 불에 다 타서 물 한 바가지만 부어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1907년의 평양은 제 2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큼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성지로서, 주일이면 모든 가계가 문을 닫고 성경을 들고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교회로 향하였던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북한의 황해도 솔뫼 교회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일이면 평양 시민들은 성경 대신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록을 들고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로 향하고, 주체사상을 암송하기 위하여 인민대학습장을 찾습니다. 이런 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겠습니까? 이런 땅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리 없습니다. 매년 남한에는 대 풍작인데 북한은 매년 흉작입니다. 올해도 한반도에 태풍이 지나갔는데 남쪽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북쪽은 많은 피해를 입어 금년에도 흉작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금년 겨울과 내년 봄에 식량의 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고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을 가졌다 할지라도 불에 다 탄 연기 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적극적으로 섬기어야 할 호기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섬김을 통해서 통일한국을 앞당겨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려워 말라! 낙심치 말라!”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모세는 위기의 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홍해를 앞에 두고 장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홍해 앞에다 장막을 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숙영 방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장막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뒤에서는 바로가 특별 병거 육백 마리와 철갑으로 무장한 전 마병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애굽 군대가 노도와 같이 추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비무장 상태입니다. 앞에는 노도와 같이 흐르는 시퍼런 홍해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갈 수도 없었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동하여 모세를 원망하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어찌하여 애굽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이곳에서 죽게 합니까? 애굽에는 공동묘지가 없어서 이리로 데리고 와서 죽이려고 하십니까?”

우리는 원망하고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떠했습니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모세와 백성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은 보이는 애굽 군대와 홍해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실 구원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실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았습니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바로의 손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도와주시고 친히 해결하여 주실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두렵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이스라엘 12지파 두령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0 두령들은 키가 큰 장대한 아낙 자손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세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에 가보니 그곳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거하는 백성들은 강하고, 그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만 아니라 그 곳에 사는 백성들은 신장이 장대하고, 아낙 자손은 대장부로서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이 보였습니다(민13:27-33).” 이런 불신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절망에 빠져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반면 믿음의 거장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똑같은 두 눈으로 똑같은 상황을 보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르단 말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느냐? 자기중심의 눈으로 보느냐?” “믿음의 눈으로 보느냐? 불신의 눈으로 보느냐”에 있습니다. 10두령들은 자기중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불신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눈으로 보느냐는 180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7-9절을 보면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베가의 도모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볼 때 인류역사에서 각 나라의 흥망성쇠는 강대국이라고 반드시 흥하고 작은 나라라고 반드시 망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잠16:9). 결국 아람은 B.C. 732년에 망하고, 북이스라엘은 10년 뒤, B.C. 722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7).” 하나님을 믿는 것이 굳게 서는 것이요, 위기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입니다. 위기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둘째,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10-14)

10,1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아하스 왕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징조란(sign)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겉으로 보면 아주 겸손하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하였기 때문에 징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왕하16:7). 그의 눈에는 하나님이 무력하게 보였고, 강대국 앗수르는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의지하는 것이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격증을 의지하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을 의지하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의지하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물질을 의지하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때론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고 물질을 의지하고, 자기를 의지하고, 명예를 의지하고, 권세를 의지하고, 자기 미모를 의지하고, 자기 실력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그들이 의지했던 강대국에 의해 수염이 깎이고 머리털이 깎이기까지 수난을 당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의지하는 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하였습니다. 민족이 강대국을 의지하면 강대국에 의해 망하게 되고, 물질을 의지하면 물질로 망하게 되고, 자기를 의지하면 자기 자신으로 망하게 되고, 머리를 의지하면 머리로 망하게 되고, 재능을 의지하면 재능으로 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마땅히 징조를 구하지 않는 유다를 징계하고 외면하셔야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4).” 이 말씀은 장차 오실 메시야 탄생의 예언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보호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지금 아하스와 백성들은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독하고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 누가 옆에라도 있어 주면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의 보호자가 되시고 함께 하시겠다니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겠습니까?

인간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때로 외롭고 고독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고독하지 않습니다. 장래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이는 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건강이 필요할 때 건강을 구하면 건강을 주십니다.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를 구하면 위로를 주십니다. 물질이 필요할 때 물질을 구하면 물질을 주십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찬송가 412장을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치 말고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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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예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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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예배 - 오전 11:00

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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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플,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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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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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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